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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노트, 이거 다 쓰는 거야?

쉰 살의 성장일기

by 그레이스웬디

내 책상에는 간이책꽂이가 3개 있다. 이 책꽂이 중간에는 문구류를 두었고 양 사이드에는 노트가 꽂혀있다. 책꽂이인데 책이라고는 필사하는 책 두어 권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죄다 노트들이다.

무슨 노트가 이렇게 많나 하겠지만, 노트마다 쓰임이 다르다.

독서노트는 고전문학을 기록하는 하브루타노트와 목차독서법으로 기록하는 노트가 있고, 필사노트, 영어공부하는 노트, 독서모임 기록용 노트, 아이에게 쓰는 편지노트, 아이 육아를 기록하는 3년형 다이어리, 그리고 내가 매일 쓰는 두꺼운 저널링노트, 주제별로 큐레이션 하는 문장노트 작은 것이 7개, 큰 것이 4-5개. 자주 들춰보는 다 쓴 독서기록노트..... 글쓰기 하는 노트, 독서와 함께 매일 쓰는 막노트.....

가만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이 많은 노트를 정말 다 쓴 단말인가? 하고.


나의 하루는 기록으로 시작해서 기록으로 끝나는데, 가끔 책상에 앉아 읽을 책을 쌓아두고도 종종 책이 아닌 노트로 손이 갈 때가 태반이다. 무엇을 자꾸 기록하고 싶어서, 남겨두고 싶어서 이러는지도 이젠 모르겠다.

기록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기록이라는 행위 그 자체보다 기록해 둔 것을 들춰보는 것이다.

나는 자주 다시 본다. 처음엔 궁금해서 지난 기록을 들춰보다가 이제는 뿌듯해서 더 자주 들춰본다.

그렇게 보다 보면 언제 어느 때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이 목표였는지 등등 점검하기 좋다. 잊었던 목표라든지, 하다가 말았던 일들이라든지, 보면서 반성도 하고 다시 해 볼 생각도 한다.


처음의 기록은 단순한 독서기록이었다. 아마 그 이전의 기록은 초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였으리라. 여전히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일기가 식상하다. 특별할 일도 없고, 좋은 일보단 주로 속상하거나 화나거나 아무에게도 못할 하소연을 일기장에 하는 것이니 그 내용이 두 번 보고 싶은 것들은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일기 말고 골고루 섞어서 나만의 일기를 쓴다. 피자에 토핑을 자유롭게 얹듯 오늘은 감정일기를 썼다가, 다른 날은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대해 썼다가, 대화기록, 칭찬기록, 구체적인 내 미래 그리기, 상상일기, 욕쟁이의 하루 등등 쓰고 싶은 것을 쓰는데 이게 훨씬 재미있다.


기록을 하는 이유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어서이다. 나의 하루를 단순히 기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미래까지 그려보는 것이다. 그런 기록을 하면 평범한 일상이 유의미해진다.

책 읽으면 독서 기록,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구상 기록,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싶으면 편지를 쓰고, 아이의 기록할만한 일들은 육아일기에 쓴다.

독서모임이나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에 써먹을 요량으로 읽는 책에서 동일한 주제의 문장을 수집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 노트에 써진 모든 문장과 책과 작가가 단번에 생각나진 않을지라도 시간이 쌓일수록 제법 연결 지어 노트 속의 문장들을 쏙쏙 빼먹게 된다.


나의 모든 기록은 한 번에 뭔가를 해볼 요량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쌓는 것이다. 차곡차곡 티클이 태산이 된다는 말처럼 짧은 기록 하나도 계속 쌓아 태산만큼 높아지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내가 가져갈 수 있다.


나는 책상에 앉을 때마다 어떤 노트든 먼저 노트를 편다.

그리고 뭐라도 적는다. 그런 다음 해야 할 일을 한다.

이제 이것은 습관이 되어 기록하지 않으면, 그 일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생각난 김에 노트들을 또 펼쳐본다. 뒤에 몇 장이 남은 채로 새 노트를 꺼낸 흔적도 있다. 이제 이런 노트는 자리를 비워줘야겠다.

뭔가를 기록한다는 건 어쩐지 나를 새로 만드는 것 같아서 즐겁다.

쉰 살의 성장일기랄까. 내가 내 아이의 육아일기를 쌓듯, 셀프성장일기로 나를 키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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