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끝자락에서
시간은 갈수록 점점 더 빨리 흐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벌써 4월도 끝자락이라니.
5월도 금방 지나갈 테고, 그러면 2025년도 휘리릭 가버리겠지.
시간이 참 안 간다라는 생각이 들던 때가 있었나 싶다.
시간은 유독 나에게만 빠르게 적용되는 것 같은데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이루고 싶은 성과도 그득그득한데, 생각대로 진척이 없으니 그저 시간 탓만 할 수밖에.
<인생의 의미>라는 책을 읽었다. 노르웨이의 사회인류학자인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의 인문학 책이다.
여기서 그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삶을 되돌려보며 깨달은 삶의 의미에 대해 7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관계, 결핍, 꿈, 느린 시간, 순간, 균형, 실 끊기.
내 시간은 참으로 빠른데 에릭센은 느린 시간을 가지라고 한다. 빨리 가는 시간을 어떻게 느리게 할 수 있을까.
책을 보며 알게 된 사실이라면, 조급함을 없애고 비록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일지라도 시간 없음에 대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개 '시간이 없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라고 느끼는 경우는, 그 시간을 매우 알차게 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릭센의 말대로라면 그렇게까지 매 시간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리라는 집념으로 살면 안 되는 것이다. 때로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느긋함을 즐기고, 주어진 시간을 풀로 쓰는 방식에 대하여 무엇을 하며 쓸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뒤엎을 필요가 있다.
내가 시간의 빠름을 느끼는 건 주어진 오전 시간 4시간 동안 포스팅과 릴스와 카드뉴스와 토픽을 발행해야 한다는 임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4시간 동안 오로지 그 일들에만 매달린다. 그렇게 땀을 쏟으며 운동 한 판 한 것처럼 온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나면 여유와 휴식 1분도 없이 오롯이 4시간을 다 써버린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며 '아.. 벌써 오전시간이 다 갔다니... 하며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 거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오전 내내 1분의 여유를 못 누렸다는 아쉬움 때문이지 않을까?
점심을 먹으며 오후 시간을 생각하고 계획한다. 오전에 일을 다 마쳤으니 오후에는 또 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해야 한다. 마치 의무처럼. 즐기는 것이 하나도 없이. 독서와 글쓰기는 내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인데 내가 부여한 시간 안에 그 일들을 집어넣으니 의무가 되어버린다.
그러다가 아이가 오면 아이를 케어하고 틈틈이 집안일을 하고, 또 그러다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7시부터는 나의 시간은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니 나에게 시간이 얼마나 휘리릭 지나가는 것인가.
에릭센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인간은 본능적으로 일과 쉼의 균형이 필요한 것인데, 나는 그런 균형이 없으니 그저 매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내 몸은 잠깐의 여유와 쉼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을 누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못내 아쉬움에 지나간 시간이 그저 빨랐을 뿐이고, 열심히 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쓰지 못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루에 1시간. 나를 위해 휴식의 시간을 매일 투두플랜에 적지만 언제나 실행하지 못해 X를 긋는다.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 건 욕심이 많아서이거나 과도한 열정 탓이리라.
열정적으로 사는 건 매우 중요하고 칭찬받아 마땅하나 균형이 깨진 채로 사는 건 잘 사는 것도 뭣도 아닌 그저 혹사하는 삶이다.
에릭센이 말한 느린 시간. 요즘처럼 급변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의식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느린 시간이다.
1년의 1/3을 쓴 현재까지 나에게 느린 시간이란 없었다.
여전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쌓여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빠르게 지나가는 이 시간을 끄트머리라도 잡아 속도를 늦추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하나쯤 안 하면 어때, 조금 미루면 어때. 10개 중에 2개 못했다고 세상이 끝날 리가 없음을. 스스로 완벽해지기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망상이며 쓸데없는 시간 낭비인지를 그렇게 인문학책을 읽어대면서도 깨우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