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아십니까
호텔 나이트클럽 문화는 90년대가 르네상스시대였다
타워호텔 나이트클럽, 하얏트 호텔 카프리스, 뉴월드호텔 단코, 힐탑 호텔 벨파레, 그린 그래스 호텔 감비노, 힐튼 호텔 파라오, 선샤인 호텔 보스, 리버 사이드 호텔 물 나이트클럽. 리베라 호텔 클럽 아이.
그중 단연 최고는 엘루이 호텔 (구 에메랄드 호텔) 줄리아나 서울이었다.
90년대 강남은 오렌지 족과 야타족의 메카였고 호텔 나이트클럽이 청춘들의 총체였다. 우리의 주 무대였던 신천에는 야타족들이 택시만큼이나 많았다.
멋진 컨버터블이 내 앞에 서는 순간은 주변 여자들의 부러운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며, 일단 탄다.
뽐내고 싶은 20대였으니까. 난 운 좋게도 한 번도 차만 번지르르한 애들은 못만났다. 뭐 나름 외모도 인성도 괜찮았단 뜻이다. 절대 오래 갈 인연은 아니었지만.
9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것이다. 그 때의 밤 문화를. 그리고 호텔 나이트를 한 두 번쯤은 모두 가보았을 것이다. 반면 나는 말 그대로 죽순이였다. 거의 매주마다 갔던 기억이 있다.
처음엔 정말 환장해서 갔고, 점차 시들할 때는 의무적으로 갔다. 내가 가기 싫다고 빠져버리면 우리 멤버의 합이 뭔가 불균형스러워서 내가 가기 싫은 날도 친구가 가고 싶으면 가는 거였다.
청춘은 언제나 외로워서 몸부림쳤다. 뽐내고 싶고, 드러내고 싶고, 예쁘다 예쁘다하면 정말 예쁘고 싶고, 다양한 성격의 이성은 호기심 천국이고, 얻을 것도 없는 그곳에 자꾸 환장하는 건 우리들의 청춘이 그렇게 외로웠던 것 같다.
모든 호텔 나이트를 순회하다 못해 여름 시즌에는 부산 호텔 나이트도 점령하러 다녔다. 나이트클럽은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오아시스라는 클럽도 있었던 것 같은데? ㅎㅎㅎ)
우리는 나이트클럽에서 무엇을 점령했을까?
내 친구들 그러니까 클럽 멤버들은 모두 예뻤다. 나랑 친한 친구는 학교 동창이고 단짝이었다. 다른 2명의 친구는 내 단짝 친구의 사회 친구였다. (내 친구는 대학을 가지 않았으므로 이미 사회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 4명은 죽이 잘 맞았고, 취향이 같았고 심지어 성격도 서로 다 비슷했다.
좋아하는 것이 같았고, 예뻐 보이는 것도 같았다. 보는 눈이 다 똑같았다. 그러니 우리 4명이라면 무적이었다.
뭘 해도 쿵작이 잘 맞았으니 그 당시 얼마나 즐거운 나날들의 청춘인가.
우리는 토요일만 되면 일찍부터 만났다.
자취를 하는 친구 집에 모여 하루 종일 먹고 놀며 저녁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타임이 다가온다. 슬슬 준비를 해볼까?~~
우리는 모두 차례차례 한 친구의 손을 기다린다. 그 친구가 머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고데기로 돌돌 말아 풍성한 컬을 만들어준다. 난 걔가 미용을 배운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한 친구는 기다리기 싫다고 혼자 미용실을 가서 웨이브 세팅을 하고 온다.
"저 년은 또 지랄이야. 맨날 지 혼자 가서 머리 해오고, 그럼 우린 뭐가 되냐? 하여간 못 말리는 년이야"
입이 걸쭉한 내 친구는 그렇게 비아냥대곤 했지만 그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뭐 하루 이틀일인가.
머리를 다 말았으면 이제 내 차례다. 한 명씩 내 손에서 더 예쁜 얼굴로 태어난다. 난 메이크업 담당이다.
미술을 했던 가락이 있어서였는지 아무튼 나는 당시 유행에 1도 뒤지지 않는, 완벽한 화장으로 내 친구들을 더 빛나게 해 주었다. 사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예쁜 친구들인데..
그리고 옷을 입는다. 계집애들 넷이서 속옷 차림으로 이 옷, 저 옷으로 너에게 이게 예쁘다, 이건 별로다, 치마를 좀 더 이렇게 해봐, 하는 식의 조언들을 하며 옷을 챙겨준다.
그리고 완벽하게 세팅이 끝난 우리는 택시를 탄다.
"아저씨, 줄리아나요~"
이 한마디면 다 된다. 그 당시에 줄리아나를 모르면 간첩이니까.
우린 그렇게 항상 신천에서 택시를 타고 청담동으로 간다.
내가 매주 호텔 나이트를 갈 수 있었던 건, 이미 사회인이었던 친구 3명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주로 용돈을 다 털었고, 언제나 친구들이 더 많은 돈을 쓸 수밖에 없었다.
입구에서 우리는 철이 오빠를 찾는다. ㅋㅋㅋ 아 지금 생각하니 너무 웃긴다. 입구에서 출입을 못하는 여자애들을 뒤로하고 들어가는 그 당당함이란.
줄리아나는 스타일이 좋고 예쁘고 돈이 있어 보여야 퇴짜를 안 맞는 곳이다.
우리의 철이 오빠는 덩치가 커다랗고 얼굴이 참 못생겼었다. 우리가 그 웨이터를 지정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 없어 보이는 얼굴에 비해 목소리가 성우 뺨쳐서였다. 그 부조화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아무튼 그 웨이터 오빠는 매너도 좋았다. 두번째로 갔을 때 우리에게 서비스를 푸짐하게 주었고, 반대로 우린 팁을 넉넉하게 주었다. 역시 밤 문화에는 팁이 중요하다. 팁을 몇 번 준 후부터는 모든 것이 편해지고 달라졌다.
테이블 위치가 달라졌고, 부킹 횟수가 달라지며, 부킹 룸의 레벨이 달라졌다.
줄리아나에는 연예인들과 유학파들이 많았다. 부킹을 마지못해 끌려가면 가는 곳마다 헤네시와 J&B로 세팅되어 있곤 했다. 연예인들과도 많이 놀았다. (아무리 옛날이라도 공인이니 시크릿으로). 연예인 룸에 부킹을 가는 건 웨이터의 권한이다. 자고로 웨이터를 잘 선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선택은 매우 탁월했다.
부킹에 성공한 날에는 나이트클럽을 나와 2차로 포차를 가곤 했다.
그렇게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인연들과 내 친구들은 제법 럭셔리한 데이트들을 했고, 난 아쉽게도 마음에 드는 놈이 한 명도 안 생겼었다. 같이 유학 가자고 나불대던 멍청한 놈들 뿐이었다. 유학이 뭐 별거라고 ㅋㅋㅋㅋ
내가 나이트클럽에서 온 밤을 휘젓고 있을 때 아기를 낳아 키우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금 아이를 다 키웠고, 난 이제 꼬맹이를 키우고 있다.
그들은 곧 자유시대를 맞이했고, 난 달리는 체력을 붙잡고 갇혀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하지만 난 그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 그들이 지금 자유로우면 무엇하는가, 줄리아나는 없는데 ^^
가끔 tv에서 연예인들이 그 시절 줄리아나를 얘기할 때 정말 공감하고 몰입하곤 했는데..
나의 가장 화려했던 그때 그 시절 줄리아나를 떠올리니 참 오랜만에 가슴이 콩당콩당 한다.
그때의 그 음악소리가 내 가슴속에 쿵쿵 울려 퍼진다.
진짜 재밌었는데! 진짜 신났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