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N극과 S극

팔자 센 범띠 가시내

넌 잘 살 거야.

by 그레이스웬디

세 번 결혼하는 여자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에선 한 남자와 두 번 결혼을 하니 세 번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정말 세 번 , 세 명의 남자와 결혼을 한 내 친구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결혼은 아마 나만 알고 있을 것이다. 모두 그녀가 두 번 결혼했다고 알고 있다.

이 글을 그녀가 볼지 안 볼지는 몰라도 보면 펑펑 울 것이다. 그래도 나는 쓴다. 그러라고 쓴다.


옛날부터 범띠 가시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남아선호 사상이 깔려있는 우리 민족에게 남성처럼 활발하게 성취욕이 있는 호랑이띠의 여자는 팔자가 세다고, 그저 조신하게 남편 바라지나 하고 애나 키우며 사는 게 여자로서의 인생이 평탄하고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범띠 가시내들은 평범한 여자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장군감이라고도 하고, 리더가 될 상이기도 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될만한 성격과 본성이 있다. 그래서 옛날보단 요즘 세상이 범띠 가시내들에겐 물이다. 물 만난 고기처럼, 그렇게 팔딱팔딱 뛸 수 있는 세상이다.

그 이면에는 범띠 가시내의 저주처럼 팔자가 센 여인들이 있다. 왜 팔자가 센 걸까?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돌아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하자니 상황이 안 도와줘서? 범띠지만 스스로가 그 기운을 못 이겨서? 글쎄.. 알 수 없다.


나만 봐도 팔자가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옛날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더더욱 그렇다. 38세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것 자체가 팔자가 센 것이 된다.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말아먹으면 내 기운이 세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어른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편견이란 무섭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범띠라는 이유만으로 뒤집어쓸 것은 아니니까.



내 친구 그녀는 남자복이 없었다. 물론 남자복이 없는 것도 팔자가 세서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치면 세상 모든 범띠 가시내들은 다들 팔자가 세서 멀쩡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겠나 싶다.

아무튼 그녀의 첫 남편은 우리 동창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별명이 탱크였다. 덩치도 컸고 머리는 항상 쇼트커트에 생긴 것도 그리 예쁘진 않아서 멀리서 보면 남자아이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고등학교 동창생과 졸업을 하자마자 살림을 차렸을 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늘 타향살이를 했던지라 그녀를 다시 만난건 그녀의 두 딸들이 5살?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탱크답지 못하게 이쁘장한 남편을 만나 두 딸이 무척이나 예뻤던 기억이 났는데,.. 그 후로 나는 그녀와 더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혼자 집을 나와 허름한 방을 하나 빌려 살고 있다고 했다.

이혼을 하겠다고 했다. 첫 남편과 10년을 살았던 때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었으니 10년을 살았어도 지질한 남편의 학창 시절이 언제나 오버랩되었을 테였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은 이혼을 하기도 전에 혼자 나와 살면서 채팅으로 만난 남자였다.

그녀는 그곳으로 갔다. 그 남자에게로. 나는 확인하러 그녀를 찾아갔다. 그리고 두 번째 남편도 만나보았다. 사는 건 딱해 보이진 않았으나 남자가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친구를 응원했다. 두 번째 결혼은 네가 찾던 행복이길 바란다면서.. 그리고 그녀는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낳았다.


멀리 살게 된 그녀와 자주 만나진 못했어도 자주 통화를 했다. 어떤 날은 2일에 한번씩. 그녀는 아기를 키우며 운동에 빠졌다고 했다. 무슨 운동이냐 했더니 매일 2-3시간씩 걷는다는 것이었다. 유모차를 밀면서..

걷기를 매일같이 하는 게 좋은 건 알겠다만 3시간씩 걷는 건 지나치다 생각했다.

그랬는데 한 번씩은 일주일 이상 전화가 연결이 안 되곤 했었다. 한 참이 지나 연락이 와선 전화기가 망가졌다. 시댁 행사로 시댁에 가있었다, 감기에 걸려서 아팠다 등등의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나도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결국 참지 못한 그녀는 이실직고를 했는데, 일주일 동안 연락이 안 되던 그런 때는 항상 병원에 입원을 해 있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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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무슨 일이야? 큰 병이니?"

"아니, 나 사실은 남편한테 맞고 살아... 술만 먹으면 때리는데.. 눈 핏줄 터지는 건 예사고..."

"뭐라고? 진짜야?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어! 아 열받아, 기다려 내가 갈 테니까."

그리고는 충청도 제천까지 운전을 해서 갔다.

아들 이유식을 먹이는 눈두덩이가 시퍼렇다.

"이건 그냥 넘어갈 일도 아니지만 넌 이대로 못 살아. 당장 짐 싸."

내가 뭐라고 그녀의 인생에 이렇게까지 끼어드나... 싶었지만 자고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고, 도박하고, 바람피우고, 술 처먹고 때리는 놈은 절대 제버릇 못 고친다고...

당연히 그녀는 나를 말렸다. 그 남편이라는 놈이 온다고 감자탕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친년, 네가 더 미친년이야 그 인간보다."

그 범띠 가시내 승질 다 어디 가고 한다는 말이 " 애기 아빠잖아. 나 얘는 잘 키우고 싶어. 난 이미 두 딸을 버렸잖아."

아.... 억장이 무너졌다.

술 먹고 때리는 이유를 듣자 하니 밥상때문이란다. 같은 반찬이 두 번 올라오면 상을 엎어버린단다. 이런 개또라이가 또 있겠나 싶어 내가 온 김에 그 새끼 낯짝에다 한 마디는 하고 가야겠다며 퇴근할 까지 기다렸다. 아주 사람 좋은 얼굴로 , 내가 언제? 하는 얼굴로 기어들어왔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요리를 언제 배웠는지 음식을 기가 막히게 하는 여자다. 못하는 음식이 없고 그 맛은 일품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식당을 하겠다는 그녀다. 그런 그녀가 밥상을 차려주는데 맛없다고 상을 뒤엎는 놈은 백퍼 미친놈 아니면 또라인거지.

저녁상에 앉았는데 술을 찾는 그녀의 남편. 우리 둘은 그가 한잔 두 잔 술을 마실 때마다 바짝 긴장을 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화장실로 그녀를 불러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내가 온 김에 결정해. 지금 저 새끼를 엎어버리고 애 데리고 나랑 같이 가."

"아니야, 내가 감당할 수 있어, 빨리 가서 밥이나 좀 더 먹어. 왜 안 먹니"

"야 이년아, 내가 지금 밥 먹으러 왔냐? 너 저 인간이 술 한잔 넘길때마다 숨도 못 쉬는데 어떻게 살겠다고 그래"

결국 나는 그녀를 위해 그 미친놈에게 한 마디 욕은커녕 잘 부탁한다고.. 이런 뭣 같은 말만 지껄이다 왔다.


두 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은 끝내 남자에게 뺏기고 또 펑펑 울면서 그렇게 그 집을 나왔지만, 지금 그녀는 세 번째 남자를 만나 딸 하나를 아주 잘 키우고 있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식당은 아니지만 김밥집을 열어 장사가 잘 되고 있다고 했다.

팔자 센 범띠 가시내야. 너는 앞으로 더더더 잘 될 거야.

비록 세명의 아이들에겐 나쁜 엄마가 되었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 너의 센 팔자를 탓하는 수밖에.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아픔을 마주 보기를 바란다. 그때 왜 그렇게 걸었었는지 이해가 된다. 그녀는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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