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N극과 S극

어쩌다벤저스를 보면서

내 조카가 생각났다

by 그레이스웬디
이겨내! 이겨내!!

스포츠를 잘 모른다. 그래서인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스포츠는 당연 야구였다.

나의 20대에 가장 열정을 쏟으며 멋쟁이 LG를 외치러 잠실구장을 들락거렸던 그때를 빼면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잊을 수 없는 스포츠가 2002년 월드컵이다. 진짜 대단했었지.

4강이라는 한국 축구 역사의 신기록을 세우던 그때,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축구가 처음으로 재밌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 주역들은 지금까지 각종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뭉쳐야찬다'인데, 2002년에도 나는 대한민국대표팀 전체를 응원했지 그중 특별히 어느 한 사람의 팬 인적은 없었다.


축구인들이 예능에 진출할 때만 해도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끝까지 스포츠맨으로 살아주면 좋으련만 , 유명세가 있다 싶음 죄다 화면으로 등장하니 정체성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안정환 님은 볼매다. 나이가 들면서 더 매력이 발산되는 것 같다. 그래서 테리우스 시절에도 좋아하지는 않았던 그가 푸근한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해졌다.


그런 이유로 요즘 다시 보기로 뭉찬시즌 2를 1회부터 틈나는 대로 보고 있는데(시즌1도 못 봤다), 진짜 너무 재미있다.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도 너무 매력 있지만, 대한민국 각 스포츠계의 레전드들만 모아서 축구를 하는 모습이 감동도 있고, 울컥함도 있고, 멋짐은 말할 것도 없고. 해서 요즘 그 어느 드라마나 영화보다 재미있게 야금야금 보고 있다.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피지컬이 대단한 선수들을 보면서 '그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하는 극한 운동이 얼마나 힘들까. 진짜 대단하다. 충분히 박수 받아도 된다', 이런 생각에서부터 작은 실수도 서로 감싸주고, 골인을 하면 다 같이 필드를 뛰며 기뻐하는 팀웤과 힘들면 '이겨내! 이겨내!' 소리쳐주는 동료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한바탕 '같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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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북 U15' 팀이 나왔을 때 나는 내 조카를 생각했다. U15에 들어간 애들은 국가대표가 될 확률이 매우 크다고 한다. 내 조카는 인천에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축구를 했다.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서 시작했고, 양발을 쓰는 미드필더로 감코진들에게 칭찬을 받는 아이였다. 그러나 유소년 대회에서는 이렇다 할 득점이 없었다. 우린 그때 알았어야 했지만 부모들은 헛된 희망을 좋아한다. 그게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결국 고등학교는 안정환 감독의 모교로 스카우트가 되어 서울로 가게 되었다. 그때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을 했다. 고2 후반기가 되자 느닷없이 조카는 '축구를 그만두겠다'라고 선포를 했다. 동생네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뿐인 내 조카 인생에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기가 겁이 나서 나는 불난 집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다. 축구만 하고 살았고, 축구 선수가 꿈이고 목표였던 아이가 이제 와서!!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그 애매한 고2에!! 축구를 안 하면 무얼 한단 말인가!!


내가 조용히 이야기를 해보았다. 자기 부모보다 나에게 더 얘길 잘하는 아이였다.

"갑자기 왜 그만두려고. 무슨 일 있었니?"

"아니, 고모. 아무리 생각해도 축구는 답이 없어."

"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우린 다 알아. 우리가 국대는커녕 대학에 스카우트가 된다 해도 먹고살 길이 안 생긴다는 걸."

"그걸 너네가 어떻게 알아..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고모는 몰라서 그래, 끝까지 하는 놈들이 바보야. 어차피 될 애들은 진즉에 되게 돼있어. 감독 눈에 들어와도 그 레벨이 다 달라."

"감독님도 코치님도 너 잘한다고 하던데..?"

"나 정도 잘하는 애들은 천지야. 난 국대가 되려고 했는데 국대 길은 중학교 때 이미 나눠져. 그걸 몰랐을 뿐이지."


헉! 그런 거야...? 조카의 말을 들으면서 이해도 가고, 그게 현실이겠지,,, 열심히 한다고 국대가 된다면 뭐가 걱정일까... 그래 네가 어디서 들었는지 어쩜 네 말이 맞을 수도 있어... 이런 생각만 빙빙 돌았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몇 번이나 조카를 붙잡았음에도 결국 조카는 축구를 그만두었다. 졸업장은 있어야 하니 고3 때 1년은 출석만 하다시피 등교를 해선 종일 잠만 자다 왔다고 한다.


내 조카는 축구부 특채로 그 학교에 갔기 때문에 축구부를 나오면 학교도 전학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어떤 학교에서도 운동을 하다 그만둔 학생의 전학을 반기지 않는다고 했다. 축구를 그만두었더니 전학 갈 학교도 스스로 찾아야 했다. 내 동생은 한대 맞고 끝났다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주먹이 훅 들어와 명치를 갈긴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조카를 잘 보았던 감독님 덕분에 전학은 안 가도 되게 되었다. 그저 사고만 치지 말고 졸업할 때까지 착실히 학교를 다니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참 감사한 감독님이라 생각한다.



뭉찬을 보면서 그 전북 U15팀을 보면서 저 팀에 들어갔다면 내 조카는 지금쯤 손흥민과 같이 달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U15의 아이들은 확실히 그럴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안정환도 이 동국도 바로 눈앞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레슬링 국가대표 김현우 선수의 명언이 생각났다.

나보다 더 땀을 흘린 선수가 있다면,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

내 조카는 국대가 될 만큼, U15팀에 합류할 만큼 땀을 흘리지 않았거나, 소질이 없었거나.

어쨌든 나는 조카의 다른 꿈을 응원한다. 그때 축구를 그만둔 것이 어쩌면 조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고 확신한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거니까. 나는 그저 조카의 젊은 날을 응원한다. 지금은 군바리지만 전역하면 무엇이든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길 바라면서..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네 인생에서 축구를 한 시절이 더 많은데,, 조기축구라도 들어가서 함께하는 그 무엇에 대한 희열은 포기하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뭉찬2의 어쩌다 벤저스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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