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는 나의 10년 후

미래 시각화

by 그레이스웬디

몽테뉴는 말한다. 미래를 생각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고.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는 몽테뉴로선 지당한 말씀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말했다. 미래만 보고 달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라고.

카르페디엠 [ carpe diem ] 오늘을 즐겨라.
한 동일 교수님은 <라틴어 수업>에서 카르페 디엠은 내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고 그 시간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라는 속삭임이라고 하셨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읽는 책마다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과거에 연연하지도 말고 오직 오늘만 생각하라고 한다.

그런 와중에 자기 계발서들을 보면 반드시 미래를 그려보라고 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중 하나가 미래를 시각화하는 것이라고.

이 두 가지의 상반되는 이치를 생각해보면 역시 오늘만 생각하라는 철학자의 말들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고,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방법들은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는 철학에 깊이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고 따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겠으므로(이왕이면 깔롱지게 ), 자기 계발서에서 알려주는 팁이라면 팁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미래를 그려보면 나의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고, 그 비전을 실현하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우리 뇌는 생생하게 시각화한 경험과 실제 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 시각화는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야 한다. 내가 소망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보고, 듣고, 느끼고, 만져도 보고, 맛도 보고 냄새도 맡아보라고 한다. 내가 떠올린 비전이 생생할수록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나는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하게 되는 원리다.

그렇게 시각화를 한 후에는 그 미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과제를 정확히 수행해나가는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1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하는 거라서 당연히 픽션이다.

나는 주방에서 분주하다. 로열 코펜하겐을 다 꺼내놓고 테이블 세팅을 한다. 나는 우아하면서도 편안한 웜톤의 원피스를 입고 내가 좋아하는 체리가 그려진 하얀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음식은 준비가 되었다. 이제 플레이팅만 하면 된다. 곧 그들이 올 것이다.


'딩동' 내 사랑하는 아들. 나의 피터팬은 18살이 되었고, 캘리포니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내내 함께 했던 나는 지난달에 먼저 들어왔다. 이제는 혼자서도 잘 있을 수 있을 만한 시간이 흘렀으니까.

피터팬은 훤칠한 키에 깔끔한 옷차림으로 환하게 웃으며 들어와 나를 안는다. 남편은 연신 신이 나 있다.

피터팬이 자기 방으로 올라간다. 잠시 후에 함께 식사를 할 것이다.

'딩동' 나의 친구들. 오래전부터 글 모임을 하는 친구들이다. 오늘은 식사를 함께 하고 글쓰기에 대한 모임을 우리 집에서 갖기로 한 날이다. 마침 피터팬이 온 날이랑 겹친 것이 나는 더 기쁘고 좋다.


나의 친구 3명과 우리 식구 3명이 식탁에 앉는다. 오늘 메뉴는 뵈프부르기뇽과 샐러드 파스타, 그리고 해산물 요리이다. 피터팬이 좋아하는 랍스터를 특별히 주문했다. 랍스터에 와인이 빠지면 안 되니까? 가볍게 와인도 한잔씩 곁들인다. 친구들 취향대로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모두를 준비했다. 난 언제나 그렇듯이 레드와인을 마신다. 떫떠름한 탄닌이 혀 끝을 감싼다. 이 와중에 남편은 소주를 마시고 싶어 한다. 피터팬이 조용히 소주잔과 소주를 꺼내 아빠 앞에 놔드린다. 우린 그 모습에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햇살이 화창하고 바람이 선선한 가을 오후. 모두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와인을 이어서 마시지만, H는 술을 못해서 허브티를 마시며 밀린 수다를 떤다. 나의 루프탑에는 온수 자쿠지가 있다. 쌀쌀해지는 바람을 맞으며 반신욕 하는 게 너무 좋아서 집을 지을 때 잊지 않고 챙긴 공간이다. 나와 Y는 자쿠지 안으로 들어간다. 옥상 한쪽 그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10살된 구월이를 C가 깨운다.

( 이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을 언제나 그린다.지금 상당히 심취함.)

1층 정원을 두고 루프탑으로 올라온 이유는 앞 뒤로 뻥 뚫려있는 우리 집으로, 바닷바람이 통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바람을 맞기에 이만한 계절이 없다. 더구나 자쿠지 안에서라면. 아~~ 나는 바닷가에 산다.


3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완성한 나의 첫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바빠질 뻔했지만, 나는 모든 일정에 응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책이 사람들 손에 들려있는 것이면 족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맛있게 음식을 나누어 먹고 , 자연 바람을 맞으며 사는 이야기로 시작해 글과 책 이야기로 끝나는 이런 만남이 나는 더 소중하다. 나는 꼭 책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응하고 싶은 일정이 하나 있긴 한데, 글쓰기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떠들어 대충 글쓰기를 알리고 싶진 않다. 족집게 과외처럼, 꼭 글을 쓰고 싶은 사람 몇 명을 추려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런 프로젝트는 한 번 진행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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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모임을 마치고 손님들을 배웅했다. 피터팬과 나는 산책을 한다.

피터팬은 엄마가 가고 난 후 한 달이 너무 힘들었다고, 자기는 적응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두려웠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제임스와 엘리 아줌마가 언제나 진한 우정으로 피터팬을 챙겨주었다고 한다.

나도 캘리에서 만난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웃을 때 잇몸까지 다 보이는 제시카와 주근깨만 없으면 오드리 헵번 뺨치는 마리와 잔디 깎는 것에 집착을 하는 리키까지. 그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피터팬에게 말하면서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이곳이 천국 같다. 하늘에는 양떼구름이, 지저귀는 새소리와 알록달록하게 물든 나무들, 인공적으로 만들어둔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까지 이 모든 게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매일 새벽 두 번째 소설을 쓰고 있다. 바쁠 것이 없으므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글쓰기를 계속한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책을 낼 것이다. 내일은 피터팬과 천사의 집에 가기로 했다. 지난달에야 내가 귀국을 했으니 몇 년째 후원금만 보냈을 뿐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많이 컸겠구나, 모두들.


늘 그리던 나의 미래상이다. 유치한 듯 하지만 절실하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내가 건강해서 친구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수 있기를, 내가 원하는 대로 꼭 소설을 완성할 수 있기를, 나의 계획대로 우리가 캘리포니아에 갈 수 있기를, 어려운 아이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닷가에서 살 수 있기를,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안다. 이 모든 것에는 남편의 사업이 여전히 잘 돼야 하는 전제가 깔려있으므로 ㅎㅎ

이 얼마나 큰 소원인가!! 10년 후면 내 나이 곧 60일 텐데.... 저렇게 차분하게 살기를 원한다.


상상이지만 기분 완전 좋다!!
이래서 시각화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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