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제주 한 달 살기
제주 한 달 살기 붐은 내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불었다.
그래서 나도 결심했지. 내 아들이 7살이 되는 해에, 입학이란 걸 하기 전에 기념으로 꼭 제주 한 달 살기를 가겠다고....
그렇게 내 아들은 일곱 살이 되었다. 일곱 살이 되자마자 제주도 숙소를 알아보았다. 한 달 살기 숙소는 며칠의 여행과는 아주 다르니까 더 신중해야 했고, 더 꼼꼼히 봐야 했으므로 숙소를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 요량으로 연초부터 알아본 것이다.
숙소의 좋고 나쁨을 떠나 한 달 살기 숙소로 웬만하다 싶으면 6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는 소릴 들었다.
그렇게 제주에 사는 친한 동생의 도움으로 드디어!! 마음에 드는 숙소를 발견했다.
당장에 예약을 하려 하니 내가 마음에 드는 집은 8월 중순이나 돼야 예약 가능하단다.
"아~~ 저는 그래도 6월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했더니 6월에도 집은 있으나 내가 본 집보다 작은 원룸형이었다.
한 달이나 살 건데 불편함은 못 참지... 차라리 가는 날을 딜레이 하더라도 내 맘에 드는 숙소를 선택하는 건 당연하지.. 나는 생각했다.
한 달 동안 우리 집
제주에 가서도 요가와 명상은 빼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며 요가매트는 아들 담당으로 하고 바리바리 짐을 싸서 출발했다. 한 달 동안 필요한 짐은 제주집으로 미리 택배를 몇 박스나 보냈건만 이날 공항에서 짐 보내는데 6만 원이나 더 나왔다는 사실... 무슨 짐이 줄여도 줄여도 이 모양이었던가...
집을 구할 때 홈페이지에서 이 중앙 수영장과 개인 자쿠지를 봤는데 어찌 다른 숙소가 눈에 들어올까...
내가 선택한 집은 한 때는 고급 주택단지로 꽤나 유명했던 곳이었다. 지금은 한 달 살기 숙소로 바뀌었다고 한다. 빌리지라 집은 모두 독채였고, 1층과 2층으로 각각 한 달씩 빌려주기도 한다. 우리처럼 인원이 2명이라면 1층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집들보다 비용은 몇 배 더 들었지만, 지금 다시 간다 해도 나는 이 집으로 갈 것이다.
빌리지 자체가 관리가 너무 잘 되어 있다. 관리 직원도 어마하게 많았고, 중앙 수영장은 매일 새벽마다 깨끗이 청소를 하고 물을 새로 받아 더할 나위 없었다. 집에서도 조금만 불편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관리인이 출동해서 불편함을 즉각 해소시켜준다. C/S가 끝내줬던 곳이다.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했던 테라스와 자쿠지. 늦여름이라 태풍도 오기 전이었고, 분명 비가 자주 올 것이라는 예상에 비 오는 날 따뜻한 온수 자쿠지에서 아들과 놀 생각을 하니 정말 포기가 안됐던 요소. 내 예상대로 우린 한 달 내내 비 오는 날이면 비를 맞으며 테라스 자쿠지에서 놀았다.
제주에서의 한 달
제주에서만큼은 자연과 함께 살다 오고 싶어서 내 차를 안 가져갔었다. 숙소가 워낙 프라이빗한 곳이어서 도착을 하고 나니 도저히 차가 없인 숙소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엔 편의점만 달랑 하나였고 마트나 생필품을 로켓 배송으로 시키기도 했지만 제주라서 그런지 로켓 되는 게 한정적이었다.
어디 구경이라도 갈라치면 콜택시를 탔어야 하니 차라리 렌트를 하는 게 낫지 싶어 렌트를 했다.
그렇게 열심히 걷다 오리라 먹었던 마음은 그냥 없던 일이 돼버린 채 렌트를 하자마자 우린 3박 4일 관광 온 여행객처럼 오만 데를 쏘다녔다.
숙소가 서귀포 표선이었는데 서귀포는 다 돌아본 듯하다. 애월도 가끔 나갔고, 제주시도 나갔다.
그렇게 치면 웬만한 유명지는 다 간듯하다. 한 달만에 안 가본 곳이 없으니 얼마나 바삐 돌아다녔을까.
그 와중에 나는 명소도 명소지만 맛집을 우선순위로 두고 다녔다. 타지에서 먹는 재미가 최고지!!
아들은 한 달 내내 매일이 신났고, 외출하고 돌아와서도 꼬박꼬박 중앙 수영장에서 놀면서 숙소비 뽕을 뽑았다. 오름도 7살과 갈 수 있는 곳을 여러 군데 다녔고 비가 많이 오면 우비를 입고 일부러 비를 맞으러 나갔다.
이 핑크 우비는 정말 내가 제주 갈 때 가져갔던 중 가장 효자템이었다. 우비도 기가 막힌 걸 골랐지 ㅎㅎㅎ
비바람이 쳐도 발만 젖을 뿐 완벽 보호된다. 저 우비를 입고 비자림도 가고 무지개 해안도로도 가고, 제주 허브동산도 가고 ㅎㅎㅎ
집으로 돌아와선 자쿠지에서 놀고.. 이런 신선놀음이 또 어디 있을까..
햇살 쨍쨍한 날엔 어김없이 바다로 나갔다.
가까운 표선 해수욕장에서부터 멀리 있는 코난 비치까지. 돌고래를 보겠다고 돌고래 찾아 삼만리도 했다. 닭머르 해변과 대정읍, 김녕해안도로 등등 스팟을 찾아다녔지만 결국은 보지 못했다. 대정읍 쪽이 젤 유명하던데 몇 시간을 기다려도.. 왜 우리에겐 보이지 않았던 거니..
돌고래를 못 본 아쉬움을 빛의 벙커에서 풀기도 하고, 함덕의 예쁜 비치와 월정리의 햄버거로 풀기도 했다.
제주에서도 나는 매일 새벽 기상을 하며 필사를 했고, 틈틈이 요가와 명상을 했으며, 물놀이를 할 땐 파라솔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내 아들은 표선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으로 매일매일 책을 보았고, 잠자리 독서로 가져간 원서와 세이펜으로 영어를 쭉 공부했다.
낮동안은 한량으로 살았어도 매일 할 일을 빼지 않고 했던 우리 둘에게 칭찬을 하고 싶다.
해외여행도 많았지만 내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이 제주에서의 한 달인 까닭은 아마도 아들과 오롯이 함께한 한 달이었기 때문이겠지. 힘들었지만 중도 포기하지 않고 씩씩하게 오름을 오르던 모습. 바다에서 공을 세 번이나 잃어버렸다고 더 이상 사달라고 조르지 않던 모습. 좋아하는 돈가스집이 생겨서 사장님이 단골 대우해주니 세상 뿌듯해하던 모습. 엄마랑 걷는 게 제일 좋다고 재잘재잘 대던 그 일곱 살의 모습들이 불과 일 년 전이지만 그립다.
요즘 유난히 제주도 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때의 기억이 물론 좋아서였겠지만, 그래도 학교에 갔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남편은 내년에 세 달 살기를 보내주기로 우리에게 약속을 했고, 내 아들은 내년을 벌써 손꼽아 기다린다.
"넌 제주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난 우리 집에서 비 오는 날~따뜻한 물 받아놓고, 비 맞으면서 엄마랑 물놀이한 게 젤루 좋았어"
그 많은 추억들 다 어디 가고 겨우 집에서 논 게 젤 기억나냐? 하려다가, 그래 어쩌면 그걸 알기 위해 우리가 여러 곳을 다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입을 다문다.
언제나 좋은 제주.
가끔 여기가 답답해지면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너무 많지만, 또 이렇게 묵묵히 지내다가 만나게 되는 제주는 그래서 더 환상적인 것 같다.
기다려~ 다음엔 세 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