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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이는 바람

자유에 대한 욕망

by 그레이스웬디

구름은 바람이 있어야 움직인다.

세상 모든 것은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원동력이라고도 하고 동기부여라고도 한다.

구름이 하늘에 멈추어 있다고 상상해보라. 어떨까? 그렇게 멈추어버린 구름은 비를 품을 수도 없고, 딱딱하게 굳은 채로 소멸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저 고인물일 뿐이다.

내가 구름이라면 나를 움직이는 바람은 무엇일까?


흘러가는 구름과 마찬가지로 생명체는 움직여야 살 수 있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나의 아이 때문에 산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정말 옛날 어른들 말마따나 죽지 못해 살 정도는 아니지만,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하고 싶은 게 생기기나 했을까? 하며 되돌아보곤 한다.

아이가 없었던 때는 나를 돌아보기보다는 돈 버느라 정신없었을 때였는데, 그렇게 돈만 벌면서 갖고 싶은 물건이나 사재끼면서, 부동산이나 늘려갔겠지.


아이와 함께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게 맞다. 그건 확실한데 어느 순간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나를 발견한다.

가끔은 며칠이고 처박혀서 글만 쓰고 싶을 때도 있는데, 주어진 시간 외엔 들어앉아 글만 쓸 수는 없는 현실이다.


어김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오고 (오늘은 데리러 와달라, 오늘은 피아노를 먼저 가고 싶다, 오늘은 태권도 끝나고 놀이터에서 놀다 가면 안 되냐....), 어김없이 식사 준비를 해야 하고, 어김없이 가르쳐야 한다.

아이가 없었다면 그 시간들이 오롯한 내 시간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는 혼자 있고 싶기도 한 듯하고.


육아도 각자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는 다르다. 모두들 나의 아들을 보면서 '저런 아이라면 열 명도 키우겠다'고 하는데, 그대들이 열 명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아이를 나는 고작 한 명 케어하는데도 힘들다. 힘든건 힘든거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전업주부로서의 나의 시간이 너무 부러울 테다. 오전 9시부터 저녁 5시까지면 하루 종일이나 매한가지니까. 그런데 나는 욕심인 걸까? 그 긴 시간들이 나에겐 전혀 길지가 않다. 부족하다.

누군가에게는 한두 시간만이라도 자유시간이 생기면 좋으련만 하는 꿈이 있을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하루 8시간도 부족해서 며칠이 필요하기도 한다. 나처럼.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너에게 며칠의 시간이 오로지 너의 것으로 생기면 넌 뭐할 건데?

글쓰기? 노우~넌 아직 하루 한두 시간도 중독처럼 쓰고 있질 않아, 글쓰기를 하다가 멈추어지는 게 너무 싫을 정도로 몰입한 적도 없잖아.

그럼 뭐? 책 읽고 필사하기? 그것도 노우~그건 지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충분해. 그럼 도대체 나는 왜 며칠이라도 혼자 있고 싶은 걸까?

독박 육아에 지쳐서? 그건 인정. 독박 육아도 인정, 지친 것도 인정. 하지만 지졌다가도 다시 힘이 나게 하는 '나에게 향하는 그 바람'은 뭐니? 그래,아이다.

아이가 주는 행복과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기에 나의 아이는 나의 바람이 된다.하지만 아이가 부는 바람이 태백산맥이라면, 그 너머에 부는 바람이 또 있다.

더 큰 바람. 히말라야에서 부는 바람.

그건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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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이게 하는 바람은 자유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나는 움직인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육아에 집중하고, 아이를 잘 키워놓아야 내가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며칠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은 곧, 자유시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 시간은 꼭 무얼 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다. 자유. 말 그대로 자유롭게, 글 쓰고 싶으면 쓰고,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그 정도의 자유는 지금의 하루 8시간 동안에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지 못한다. 그렇게 금방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휴식일뿐이다.


나는 신경 쓰이는 것들을 모두 처리해두고 자유롭고 싶다. 가고 싶은 곳들을 실컷 여행하고, 아무데서나 글을 쓸 수 있는 글 중독에 빠지기 위해서 지금은 자유를 누릴 수 없다. 나는 아직 글 중독자가 못되었으므로 중독으로 가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육아맘으로서 모든 우주가 아이를 통한다. 그 와중에 이나마 나를 챙기는 건 스스로에게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육아라는 것이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닐 테지만, 나는 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아이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육아는 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나의 자유를 잠시 묻어두고, 히말라야 바람이 부는 그때가 올 때까지 아이에게 집중해야 한다.


자유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냥 얻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고,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 시간적 자유, 마음의 자유.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게 자유롭게 생을 살다가 자유롭게 스러지고 싶다. 평화롭게. 곱게.

언젠가 점쟁이가 그랬는데. 노년이 아주 곱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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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그러니까 자유를 위해 나는 지금 육아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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