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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휘 Nov 02. 2022

꽃을 든 여자

내가 왜 꽃을 샀냐면

국가 암 검진 항목에 유방암과 자궁암, 위 내시경 검사가 필수인 나이가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대상자 확인을 하고도 연말까지 미루고 미룬다.

병원엔 "괜찮다"라는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가야 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는데, 나는 세상에서 병원이 제일 무섭다.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태껏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은 출산 때뿐이었다. 가족 중에 큰 병으로 오랜 간호를 해 본 적도 없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우린 대체로 모두 다 건강한 편인가 보다.

그럼에도 나는 어쩐지 병원 진료가 가장 무섭다. 그냥 병원이 싫다. 가기는 더더욱 싫다.!


9월부터 문자가 오기 시작한다. 독촉 문자다. 잊지 말라고 아주 집요하게 알려준다. 국가 검진하라고.

줄기차게 오는 문자와 톡 알림이 "어이구~~ 너 징그럽다" 소리가 나올 만큼 주기가 빨라졌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지난주에 유방암 검사를 하러 갔다.


모유수유할 때부터 다니던 유방외과는 나 역시 소문을 듣고 가게 된 거지만, 여자 선생님이신데 정말 편하고 친절했다. 그곳에 전화를 해서 암 검진 예약을 하려니 내년 4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단다. 역시... 그럴만해라고 생각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열심히 맘 카페에 조언을 구했다.


맘카페에서 추천해준 곳은 택시에 붙여진 광고로도, 백화점 갈때마다 자주 보기도 했던 곳이었다.

우리 집에서 걸어가도 되는 거리엔 유스퀘어도 있고, 신세계 백화점도 있고,  그 동네는 메디컬거리라고 불릴만한 유명 병원들이 줄지어 있다. 그곳에 그 유명한 유방외과가 있었다.

방송 출연도 자주 하시는 원장님은 유방암 전문의 중에 꽤 실력자이신가 보다. 서울에서 전원도 많이 온다고 하고, 유방암 초기 발견을 귀신같이 하신다고 한다.


국가 암 검진에 포함된 유방암 검사는 엑스레이를 찍는 것이 전부이고, 그것만으로는 암의 유무를 알 수 없다고 해서 초음파 검사를 예약했다. 그리고 오늘 초음파를 보러 갔다.

1차로 초음파 보는 간호사가 먼저 봤고, 그 결과지를 보고 원장님이 다시 보신다고 했다. ' 그냥 다른 병원처럼 원장님이 첨부터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지난주에 처음 내원했을 때 원장님 실력만 빼면 다시는 안 오고 싶은 병원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이 별로였다!!

아무튼 병원 시스템이 나는 불만인 상태였기에 잘 모르겠으면서도 그냥 다 베베 꼬여있었다.

1차로 초음파를 보고  대기실에서 대기하다가 다시 들어갔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아까 초음파를 보던 자세 그대로 두 팔은 머리 위로 올리고 가운을 젖혀 가슴팍을 다 드러낸 채로 누워있게 했다.

"곧 원장님이 오실 거예요." 기다렸다. 다시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앞에 환자 진료가 조금 늦어진다고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라며 가운을 여며도 좋다고 했다.

베베꼬인 내 입장에선 내 가슴을 풀어헤쳤다 여몄다 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불쾌하다.


원장님이 초음파를 아주 꼼꼼히 보신다. 매우 불편하다. 하악.. 가슴은 왜 두 짝인고...

'이렇게 꼼꼼히 보는데 초기 발견을 못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고?'  별 못돼먹은 생각까지 들 만큼 여성들에게는 유방이든 자궁이든 남에게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왼쪽에 아주 작은 혹이 하나 보이네요. 혹 모양이 납작해야 정상인데 이건 조금 동글하니 초음파만 봐서는 알 수 없고 적외선 체열 검사를 해봐야겠어요."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린다. 2년 전에 내가 다니던 유방외과에서의 검진은 이렇게 시간을 잡아먹지도 않았고, 원장님 입에서 다른 검사를 해보자는 말을 못 들었었는데, 이번엔 머가 자꾸 할 게 많아지는 거지?

겁이 나기 시작한다. 일단 의사가 해야 한다는데 전 안 할래요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원장님이 초음파실에서 나가고 뒷정리를 하는 간호사에게 매우 소심하게 물어본다.

"이런 경우가 흔한가요...?

"어떤 경우요?"

"초음파 보고 적외선 보자고 말씀하시는 경우요."

"네, 흔한 일이고 초음파와 적외선을 병행해야 조금 더 정확히 암 유무를 파악할 수 있어요."

한결 낫다.


적외선 체열 검사는 사람을 정말 초라하게 만들더군.

웃통을 홀라당 벗고 두 팔을 올려 머리 뒤로 손깍지를 끼고 쪼꼬만 한 카메라 렌즈를 향해 정면 , 좌우 45도 각도로 몇 번이나 움직여야 했다.

마치... 영화에서 본 수감되기 전 사진 찍는 모습이랄까.

그러다가 촬영을 할 땐 체온을 낮춰야 하므로 바로 앞에서 선풍기를  틀어댄다. 정말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다.



적외선 검사로 본 내 상체는 파랑파랑 했다. 빨간색이 하나도 없었다.

참.. 사람 몸은 이렇게도 보이는구나..

친절한 원장님은 내 초음파 비용 12만 원과 적외선 비용 7만 원을 걱정하는지 미안해하는지, 아까운지.

아무튼 초음파 비용을 보험 처리해주셨다. 혹이 처음 발견됐으므로 의사 소견으로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19만 원이 들어가야 하는데 10만 원만 냈으니 9만 원 벌었다.

야호~~~ "괜찮다"라는 말과 함께 9만 원을 벌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폴짝폴짝 새신을 신은 아이처럼 뛰어 백화점으로 갔다.

점심을 사고, 와인을 사고, 꽃들이 보이는데 그 앞에 발길이 멈추었다.

세상에 꽃 사는 돈이 제일 아까운 내가 꽃을 사는데 4만 원을 썼다.


알 수 없는 인생. 며칠 전에 유방암으로 떠난 그녀가 생각이 나서 또 미안했다.

나는 괜찮대... 너는 왜 안 괜찮았니... 처음부터 네가 병원을 잘못 간 건 아니니? 하면서 정말 쓰잘 때기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괜찮다"는 말. 의사에게 들어도, 나 스스로에게 해도, 다른 누군가에게 들어도 세상에서 제일 멋진 말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나 하며 마음 졸였던 일주일. 한낱 병 때문에 두려워하고 울고 웃어야 하는 인간이라는 미물에 대해 생각했다. 더더욱 감사하며 나를 아끼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차가운 공기도, 눈부신 하늘도 오늘은 정말 다 좋다!

괜찮아.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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