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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휘 Nov 07. 2022

나의 벤츠를 팔았다.

행복의 가치 기준이 바뀌었다.

만약 스스로 행복한 삶을 만들지 않는다면 행복을 누릴 권리가 없다.
-버나드 쇼


나의 행복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라는 말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게 40 중반에서였다.

그전까지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분명한 경제력이었다. 아무리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이해하려 해도, 아무리 봐도 돈이 전부인 세상이었다. 막말로 돈 없으면 효도도 못하는 세상인데 어찌 돈이 행복이 아닌가.

돈이란 것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양에 대해 생각해볼 때, 돈을 좇아 행복을 만들려 하는 것이 잘못되었던 것 같다.

20대에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지를 탐구하고 경험하며 보낸 시절이다. 30대에는 그런 직업으로 선택한 일에 뼈를 갈아가며 일만 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돈은 많이 벌었냐. 그렇다.


여기에서 '많이'의 기준은 사람들마다 다 다를 것이다. 나의 기준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높다. 그건 내가 정한 기준이라기보다 내 팔자에 의하여 스스로 정해진 것이었다.

사주를 보러 갔을 때 점성가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했다. 남들보다 통이 크다고. 예를 들어 다른 이들이 백만 원에 벌벌 떤다면 너에게 백만 원은 그 가치가 훨씬 떨어지는 양이라고.

난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말 그렇거든. 나는 스케일이 꽤나 크다. 그래서 좀스러운 것을 견디지 못한다.


돈을 얼마를 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나는 버는 족족 쓰기 바빴다. 미래를 위한 투자 같은 것도 없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쓰고 살았다. 아낌없이 쓰되 나만을 위해 쓰진 않았다. 만용을 부렸다. 내 가족들에게 쓰는 것 외에는 모두가 만용이었다.

나는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꼈고, 그걸 즐겼다. 정말 행복했다. 그게 내가 정한 행복의 가치였다.


국산차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늘 내 차는 벤츠였다. 페라리도, 포르쉐도 다 좋지만 그래도 벤츠가 좋았다.

신형으로 모델만 바뀔 뿐 회사를 바꿔본 적이 없다. 깔끔한 삼각별 엠블럼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차도 좋지만 난 삼각별이 벤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물질만능주의를 보여주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차란 좋은 집보다 우선순위인 경우가 많다. 집은 들고 다닐 수 없지만, 차는 그냥 나와 한 몸이니까.

차는 능력이 되어야 유지를 할 수 있다. 그건 분명하다. 보여주기 위해 능력에 맞지 않는 차를 타면 그 차를 오래 탈 수가 없다. 좋은 차일수록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건 사실이므로. 그러니까 나는 벤츠를 탈 능력이 있었다. 항상.


언젠가부터 벤츠가 국민차가 되었다. 나는 그것도 싫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오는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으면서, 지나가는 차들을 보았다. 4대 중에 한대는 벤츠더라. 줄줄이 벤츠가 6대가 지나가는 것도 보았다. 중간에 다른 회사의 차가 한 대도 없이 벤츠만.

국민들이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인가 보지? 어쩜 이렇게들 벤츠를 선호하시나.

10년 전만 해도 벤츠 타는 젊은 여성은 정말 흔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정말 흔하다. 시리즈를 업그레이드해야 차별화가 될 뿐이다. 하긴 10년이면 강산만 바뀌겠나. 나라도 생길 판이다.


차가 주는 만족감은 크다. 차를 보고 사람을 대우하기도 한다. 난 그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벤츠에서 벤틀리로 바꿔야 대우를 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재미없다. 그리고 벤틀리는 진짜 진짜 너무 비싸다!

코로나 팬데믹 때부터 나의 벤츠는 차고에서 나올 줄 몰랐다. 오죽하면 남편이 일부러 한 번씩 꺼내어 몰고 나갈 정도로.

아이가 학교를 가기 전에는 그래도 제법 차를 끌고 나갈 일이 많았다. 그런데 걸어서 10분이면 가는 학교를 다니게 된 후로 내 차를 타고 다닐 일이 없어졌다. 주말엔 남편 차를 타고 다 함께 나가니까.

내가 직장이라도 다닌다면 출퇴근용으로도 쓰겠지만, 하다못해 백화점도 걸어갈 거리에 있다.

도대체 차를 탈 일이 없어졌다. 그래도 나는 꼭 가지고 있어야 했다.

1년에 한 번을 타더라도 내 차는 벤츠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벤츠가 뭐라고. 이젠 정말 국민차가 되었는데.


나는 최근 들어 내 삶에서 빼기를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옷방 가득 안 입는 옷들을 나눔 하고, 헌 옷 수거에 주고 중고로 팔기도 하면서 비운 지 2년 되었다. 소형가전도 안 쓰는 것들 천지였다. 티포트도 몇 개, 커피 메이커도 몇 개, 1구 인덕션도 몇 개, 에어프라이어도 2-3개, 등등...

왜일까? 신상이 나오면 샀으니까. 몇 번 쓰지도 않고 더 예쁘고 더 좋은 게 나오면  사고, 또 사고했으니까. 그렇게 쌓인 물건들이 정말 엄청났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처분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었다.

비움을 실천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책에서 말하던 그런 가벼운 마음. 홀가분하고 욕심을 덜어낸 기분. 그런 걸 느끼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진짜였다.너무 좋았다.

그때부터는 비우는 맛에 재미가 들렸다고 할 정도이다. 워낙에도 남 주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주 신이 났다.

그렇게 2년 동안 비우기를 했더니 다시 사는 일도 재미가 없어지고, 돈의 가치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비우고 또 비우면서도 끝내 품고 있던 벤츠를 지난달에 팔았다.

남편은 정말 놀라워했다. 물론 생각하고 또 하고 결심하고 큰 마음먹고, 아니야 아니야 하다가 다시 또 그래그래 하면서 차키를 남편 손에 쥐어주고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나가라고 했다.

오후에 차고에 내려가서 보니 텅 비어 있는 그 자리가 어쩐지 식구 하나 어디 보낸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나와 6년을 함께 했는데…


그리고는 며칠 동안 아이 등굣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신호등 그 자리에 서서 여전히 지나가는 벤츠들을 보며 생각했다. 괜히 팔았나. 후회하기도 했다가 아냐 다음에 차가 필요하면 그때 벤츠는 사지 말자 했다가, 미련 남은 눈으로 또 다른 벤츠를 흘깃거리기도 했다.


내 손으로 직접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갈아치우는데 불행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태 그것이 행복이라고 느꼈던 것들이 사실은 행복이 아니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 마다 행복의 가치는 다르지만, 물질적인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빈 손으로 온 인생,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도 이젠 백분 이해가 되고,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버나드 쇼의 말도 이젠 당연히 안다.


매일이 기적이라는 말, 그 기적 같은 매일 속에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한 내가 여기 있다. 숨 쉴 수 있고, 사랑하는 이들이 있고, 매일 즐겁게 할 일들이 있고, 예쁘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볼 수 있고, 낙엽을 밟으며 걸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매일 주어진 하루가 있고.

이 모든 것이 감사할 일이고 행복한 일인 것이다.

벤츠보다 더 귀한 것들을 알아냈으니 나는 더 행복할 것이다.

이젠 안쓰는 명품가방들을 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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