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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Nov 09. 2022

나는 방앗간 사장 언니였다.

생각나는 참새들이 있네

2010년. 내 사업자등록증 개업 날짜이다.

나는 옷가게를 열었다. 2010년. 경기는 성황이었고 나는 임신을 하기 전까지 4년 동안 돈을 많이 벌었다.


늘 그래 왔듯이 아침잠이 많은 나는 아침 일찍 시작하는 일들은 전부 피하고 싶었다.

전문직인 내 자격증으로 먹고살기는 싫었다.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하니까.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무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원래 하던 것을 하려니 이 지역에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옷가게를 하기로 했다. 꼬꼬마 시절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망했던 옷가게. 그것도 경험이라고 해보았던 깜냥으로 다시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옷을 워낙 좋아했고, 한 때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기도 했던지라 옷 감각도 좋았다.

하다못해 나만 옷을 잘 입는 수준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코디도 잘해주었다.

그냥 옷을 보거나 사람을 보면 짝꿍이 저절로 맞춰지는 듯했다.


장사를 하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 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위치 선정과 시장 조사.

어느 동네에서 할까를 고민하며 시장 조사를 하다 보니 운이 좋게도 내가 살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떤 플레이스가 형성이 되어 있었다. 먹자골목이었다.

가보았더니 이 동네는 참 신기하다. 소위 말하는 원룸촌 먹자골목이다. 원룸 건물들이 동네 하나를 이루는데 그 동네에서 메인블럭을 따라 술집과 옷가게들이 주욱~~~ 또는 다닥다닥 붙어있다.

메인 골목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룸촌 사이사이 골목마다 술집이 있었고 옷가게들과 미용실들과 네일숍 등등 없는 게 없는 동네였다. 나는 그런 동네를 그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

원룸촌이야 많이 보았지만 밤이 되면 화려하고 활발한 먹자골목에 그렇게 많은 옷가게가 형성된 동네는 처음이었다.

무슨 먹자골목에 옷가게가 이렇게 많아, 미용실도 그렇게 많아도 되나 싶을 만큼 두 집 걸러 하나씩.

참 이상한 동네다 생각하며 몇 번이나 그 동네를 갔다. 옷가게들을 둘러보기 위해서.


평균적으로 옷가게는 10시쯤이면 오픈을 하니 11시쯤에 갔는데 갈 때마다 문 연 옷가게가 없었다.

뭐지? 이렇게 많은 옷가게가 어째서 한 군데도 문을 안 열었나..

알아보니 모두들 오후에 문을 열고 늦게까지  영업을 한다. 완전 딱 내 스타일이었다.

이건 기회다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아침에 문을 안 열어도 되고 늦게까지라봐야 11시까지 장사를 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땡큐였다.


동네 사람들에 대해 시장조사를 했다.

이유는 이러했다. 광주에서 제일 큰 유흥가이자 번화가가 있다. 바로 상무지구다. 거기서 가장 가까운 곳이 이 동네였고 원룸촌이 형성이 된 것은 그 상무지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동네에서 생활을 하고 가까운 상무지구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먹자골목도 자연스레 형성이 된 것인데, 옷가게와 미용실은 왜 그렇게 많은고 했더니, 소위 직업여성과 직업 남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상무지구는 젊은이들의 번화가이기도 했지만 유흥 쪽이 더 많이 형성되어 있다. 룸살롱, 노래방, 호스트바 등등.


그래!! 여기다!!

나는 바로 가게를 얻었다. 메인 골목에 가게를 얻고 싶었지만, 빈 가게가 하나도 없었다. 비싸기도 했지만, 빈 가게가 나올 리가 없는, 말 그대로 메인 골목이다.

어쩔 수 없이 메인 골목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가게를 얻었고 장사를 시작했다.

이 동네에는 터줏대감 같은 수선집이 딱 하나 있다. 옷가게가 그렇게 많은데 수선집이 하나라는 건, 엇가게 사이에선 그 이모가 대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모에게 잘 보이면 다른 가게들보다 내 옷을 먼저 챙겨줄 수 있다.

문 연다고 바로 장사가 잘 되면 뭐가 문제랴. 처음 2달 정도는 드문드문 손님이 올 뿐이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가게 위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한 번 수선집을 가곤 했는데 (어쩌다 한 번 옷이 팔렸으니까 ) 이모는 단박에 신입을 알아보신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 어디서 해?"

"저기 00(다른 가게 이름) 옆에요. 이제 두 달 다 돼가요. ㅎㅎ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이모"


나중에 이모에게 들은 얘기지만, 이모는 그때 내가 참 예뻤다고 했다.

"서울에서 왔능가 어찐가 말투도 딱 이뿌장허니, 얼굴도 이뿌고 쪼매난것이 싹싹하기도 하재."

이모는 이렇게 말했다.

점점 이모와 많이 친해지면서 나는 대놓고 "이모 중앙라인에 가게 나오면 나한테 바로 좀 알려줘요. 나 내려오고 싶어 죽겠어. 저긴(내 가게 위치 ) 사람들이 별로 안 다녀 ㅡㅜ"


그렇게 2달 후쯤 이모는 나에게 긴급 비밀을 알려주었다.

이모네 가게는 메인 골목에 있었고, 이모 바로 앞 작은 사거리 골목 중앙에 떡 하니 어울리지 않는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는데, 거기가 곧 빌 것이라고.

오 마이 갓!! 메인 골목 중에서도 딱 중간자리였다!!.

그렇게 나는 메인 골목에 입성했다!!! 인테리어에 온 정성을 쏟아부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나는 매일매일 이모에게 몇 벌씩이나 옷 수선을 맡기게 되었다.



내 가게는 오픈 발이 제대로 먹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칙칙한 비디오 대여점이 없어지고 화사하고 예쁜 옷가게가 생겼는 데다가 어디서 오고 가도 내 가게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장사를 잘하는 편이다. 나랑 맞다. 사람들을 대하는 성격도 좋다고 한다. 밤에 출근하는 손님들 성향에 내가 딱 맞았다.

대부분 나보다 어린 손님들이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도 그렇게 많았다. 나는 신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잘 몰랐던 밤세계.


한 번 오면 모두 단골이 되었다. 나는 처음에 일반 옷과 홀복을 5:5 비율로 물건을 해오다가 점점 일반 옷 3, 홀복 7의 비율로 바꾸었다. 손님들이 따로 주문하는 스타일들도 모두 해다 주었다. 고객맞춤서비스!!

그녀들은 화통하고, 가격을 깎아달라고 하는 스타일들이 아니다. 그냥 아줌마 옷 파는 집이랑은 완전 비교불가의 스케일과 매너들이 있다.

나는 옷에서 액세서리, 가방들까지 영역을 넓혀갔고, 하루하루가 신나고 재밌는 날들이었다.

출근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수다를 떨기 위해 가게로 오는 손님들도 하나 둘 늘어갔다.

우린 가게에서 같이 점심을 시켜먹기도 했다. 손님들을 위해서 가게 안쪽으로 붙어있는 방과 주방까지 인테리어를 해서 응접실로 만들길 너무 잘했다. 처음부터 그 공간은 그녀들의 흡연장소였고, 소파에서 자는 장소였고, 밥을 먹는 장소로 만들었던 것이다.


진상 손님 얘기, 가슴 수술한 얘기, 남자 친구 얘기,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한다.

그러다가 자기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 가정 얘기하는 그녀도 있었고, 가벼운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가 학교를 때려치우고 눌러앉은 꼬꼬마에게 나는 단골 옷가게 사장 언니가 아니라 친언니 같은 마음으로 조언들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내 옷가게는 방앗간이 되었고, 짹짹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소개해주는 그녀들도 많았고, 의리 빼면 시체인 그녀들은 그 의리로 나를 지켜주었다.

받기만 했을 리 없는 나는 한 번씩 미치면 통 크게 쏘기도 했고, 알바비를 몽땅 날린 어린 그녀에겐 쭉 밥을 사주기도 했다.


그녀들을 처음 상대할 생각엔 두려움이 조금 있었다. 편견이랄까. 왠지 무서운 느낌.

하지만 사람이다. 오히려 더 매너 있고 마음 여린 그냥 사람이다. 나는 그녀들의 옷을 입혀주기도, 벗겨주기도 하면서 그냥 나도 사람으로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사장 말고 사람.

그런 진심이 통해서였겠지. 내가 4년 동안 매달 꼬박꼬박 순수익 천만 원 이상씩 벌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그리운 한 때가 바로 그 때다.

동대문 새벽시장에 물건을 자주 하러 가야 했으므로 몸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가장 열정 넘치고 신나고 즐겁게 일이란 걸 했다.

그때 나의 무서운 체력과 점점 늘어가는 센스와 배짱들을 생각하니, 정말로 즐기는 사람은 못 이긴다는 말 백번 공감된다. 경험을 해보았으니 내 말이 맞다.


또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또 할 수 있을 때는 나는 다른 걸 하고 싶다.

내가 하려는 다른 일도 그때처럼 미친 듯이 즐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40이 넘었어도 미니스커트 입던 시절


돈 만지는 게 꽤나 재밌었던 나의 방앗간과 참새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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