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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Nov 15. 2022

월동준비

김장김치와 뱅쇼면 끝

겨울맞이를 해야 할 시즌이 왔다.

11월. 고등학교 2학년 때던가. 여태껏 살아오는 동안 11월 내 생일날 그렇게 펑펑 눈이 왔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선물 받은, 아주 커다랗고 나만한 곰인형을 친구들과 돌아가며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로 점점 11월은 겨울에 속하지 않았다.

언제나 내 생일 때면 '겨울 아이'를 불러주던 그 아이가 생각나는데.. 이제 11월에 태어난 아이는 겨울 아이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겨울 아이이고 싶다.


젊은 날의 나에게 있어 월동준비란 대개 남자 친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개 젊은 남녀들은 새로운 애정전선이 월동준비가 아니었나 싶다.

늘 월동 준비에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친구들끼리 모여 왜 여기엔 남자가 없냐며 ㅎㅎ술을 거나하게 마셨던 월동준비에 패배한 우리들이었는데..


지금 나의 겨울맞이는 딱 두 개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겨울 내내 이것들만 있으면, 제법 겨울잠 자러 집에 콕 박히는 동물들처럼 지낼 수 있다.

바로 김장 김치와 뱅쇼다.


뱅쇼

프랑스어로 vin (뱅) 이란 와인을 뜻하고, chaud (쇼) 란 따뜻한 이라는 뜻으로 '따뜻한 와인'을 말한다.

우리나라 쌍화차 같은 개념으로 감기약으로도 마신다던 유럽 사람들은 독일과 그 인접 지역에선 '글뤼바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 때부터 향신료를 참가한 끓인 와인은 약용으로 먹었다고 한다. 

영국에선 크리스마스 대표 음료이기도 하고.


나는 뜨거운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겨울에 먹는 따뜻한 사케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생각만 해도 알코올이 그냥 훅 들어올 것만 같아서 못 먹겠다.

뱅쇼는 와인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데다 끓이는 정도에 따라 내 맘대로 알코올을 날릴 수가 있어서 두려울 땐 양껏 끓여버림 된다.

처음엔 와인을 끓인다는 게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 여러 번 만들기를 해보았었다. 알코올을 너무 날려버리니 그냥 따뜻한 차 마시는 기분이라 그것도 좋았지만, 그래도 와인의 알코올을 다 날려버리기엔 아깝다.

적당한 도수로 따뜻하게 마시는 뱅쇼는 정말 최고다. 몸이 뜨끈해지면서 살짝 알콜도수를 느낄 정도면 스르르 잠들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시나몬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뱅쇼를 만드는 방법

레드 와인 한 병에 꿀을 두 스푼 정도 넣고 끓인다. 레몬 하나, 사과 하나, 오렌지 하나, 등등 과일을 얇게 슬라이스 해서 넣는다. 뱅쇼에는 시트러스 계열 과일들이 어울린다.

그리고 정향이나 팔각 3-4개, 시나몬 스틱 작은 걸로 2개 정도 넣고 아주 약불에 고와준다는 느낌으로 3-40분을 끓이면 된다. 100도로 물 끓이듯이 팔팔 끓이는 것이 아님 주의!!


이렇게 끓여 와인 한 병이 반 병이 될 정도의 양, 대충 350ml로 만들면, 나는 딱 두 번 마실 수 있는 양이된다 ㅎㅎㅎㅎ어떤 날은 고대로 다 마셔버리기도 하지만.

감기 기운 있을 땐 쌍화탕 노노.

뱅쇼다!



두 번째 월동준비는 단연 김장김치다.

매년 하지는 않지만 한 일 년 김치를 사 먹고 나면 그 해엔 꼭 김장을 해야지 한다.

나는 전라도에 살지만 전라도 김치는 젓갈이 많이 들어가 못 먹고, 울 엄마 김치처럼 시원한 서울식 김치만 먹는다. 하지만 묵은지는 꼭 전라도 묵은지만 먹는다. 진심 맛있다.

작년엔 엄마에게 전수받은 대로 했는데 엄마 김치 맛이 안 나서 억지로 겨우 먹었었다.

색깔이 고운건 악착스럽게 고추를 옥상에 말려 직접 방앗간으로 가져가 빻은 고운 태양초 고춧가루를 엄마가 보내주기 때문이다. 엄마는 참 수고스러운 걸 좋아하나 싶다가도 나도 똑같아진다. 정성과 수고가 들어간 건 티가 나도 나고, 뭔가가 달라도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나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친한 동생이랑 둘이 열심히 김장을 마치고, 수육을 삶아 막걸리를 한 잔 했었는데.

올해는 엄마가 내 것까지 김장을 다 하셨다. 오늘 택배가 올 텐데..

지난 주말 내가 김장하러 올라가겠다고 해서 엄마가 배추를 주문해두었는데, 우리 아들이 독감이 걸리는 바람에 엄마 혼자 고생을 해야만 했다. 미안하고 걱정되는 내 마음이 무색하게 엄마는 뚝딱 다 하셨다고 전화가 왔다.

김장을 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내가 해보지 않았을 적에는 주는 대로 야금야금 잘도 받아먹었었는데, 해보니 이게 쉽게 받아먹을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엄마에게 달라는 말도 못 하겠던데 ㅎㅎ

하지만 엄마들은 당신의 수고스러움 정도는 자식들 앞에서 언제나 잊어버린다.


이렇게 겨울맞이는 끝이 났다. 감사하게도 수고를 하지 않고도 월동준비가 된 것이 사실 너무 신난다.

올 겨울도 맛있는 김치로 식구들 든든한 밥상을 열심히 차릴 것이며, 그런 나를 위해 자주자주 뱅쇼를 만들어 먹을 것이다.

나를 즐겁게 해 주는 것들이 있으니 내 마음의 겨울맞이도 든든하게 끝이 난 것 같다.

이제 말 그대로 겨울을 맞이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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