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김보성
본색을 드러내다는 말은 뭔가 감추고 있던 내 본디 모습을 나타내거나 보여주는 것인데, 대체로 좋은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나쁜 모습이나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내보이는 건데 나는 어떤 경우에 본색이 드러나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가 본색을 드러나는 어떤 특정한 일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성격상 나를 감추거나 숨기고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보이는 매 순간이 모두 나의 본색이다.
더군다나 드러낸다는 것이 와닿지가 않는다. 감추고 있어야 드러낼 것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타인에 대한 내 마음의 정도에 따라 본색을 드러내는 양이나 깊이에 차이를 둔다.
하지만 마음의 정도가 별 볼 일 없는 정도라면 본색을 드러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딱 그 정도의 관계에서 드러낼 본색이 무엇이 있겠는가 말이다.
본색이 드러나는 경우는 관계의 깊이가 깊을 때인데, 깊은 관계에서 본색을 감춘다는 것도 어쩐지 모순 아닌가. 글쎄, 내 생각은 그렇고 나는 원래 그런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다.
나도 모르는 본색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본색을 드러낸다는 뜻은 나도 충분히 그 본색을 알고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에게 본색이 드러나는 어떤 상황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본색을 드러낸다는 것은 예를 들어, 타인과의 관계에서 음흉하거나 뭐 야망이든 사랑이든 전혀 예상하지 못할 어떤 목적이 있다면 이게 본색이겠지. 그걸 감추고 관계를 유지하다가 필요에 의해서, 아니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그 품고 있던 마음이 드러날 때 본색을 드러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처럼 숨김이 없는 성격이면 본색을 드러내다는 표현 자체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아니면 반대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 마음을 감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그 마음을 드러낸다. 이럴 때 본색을 드러낸다고 말을 하는가?
좋은 마음을 숨기고 사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 마음이 드러났다고해서 본색이 드러났다고는 하지 않는다.
뭐 남녀 사이에서 애정이 알게 모르게 흐를 때나 짝사랑을 할 때는 이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는 어떤 때에 내 본색이 드러나는지 찾지 못했다.
드러낼 본색이 없다. 아니 감추고 사는 본색이 없다.
나는 너무 직설적이고 직관적이라서 싫고 좋음이 얼굴에 다 표가 난다. 뭘 잘 숨기고 살지를 못한다. 그게 단점인 경우라도 그대로 드러내 놓고 만다. 숨기려 했어도 이미 상대방에게 다 들키고 만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중성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타인들이 봤을 때 나의 외모로 본 첫인상과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는 나의 본색이 다르다는 말은 자주 들었다. 생긴 건 까칠해 보이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결국 지 자랑?)
그게 내가 그렇게 생기고 싶어 그런 것도 아니고 내 얼굴에다 내 본색을 써붙이고 다닐 수도 없으니, 첫인상으로 판단한 사람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 내가 본색을 숨긴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내가 숨기고 사는 어떤 본색을 굳이 찾으라고 한다면 그건 의리 정도?
의리가 있다는 것을 매번 드러낼 순 없으니까. 의리를 확인하는 순간은 어떤 일이 터졌을 때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이니까.
그렇다. 나는 의리는 숨기고 산다. 하지만 타인들은 언제나 알게 된다.
그 의리본색이 드러날 때는 상대방에게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나타나게 된다.
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나 기쁠 때보다 힘들거나 슬플 때 함께 하기를 좋아한다.
그게 아마도 의리가 아닐까.
난 그 의리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매우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여자 김보성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그게 내 숨겨놓은 본색이라면 본색이다.
한 줄 요약 : 나는 여자 김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