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술을 좋아하지?

나에게 술이란 친구다

by 그레이스웬디

브런치를 시작하는 글도 술이었는데, 내 인생에서 술은 빠질 수가 없다.

술은 내 친구니까.


공식은 이렇다 친구+나+술= 세 친구

친구랑 둘이 마시면 셋이 되고, 친구 두 명이랑 마시면 넷이 되는 공식. 술은 내 친구다.


이제는 같이 마실 친구들이 점점 줄어 없어질 판이다. 모두 애 키우느라 바쁘고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들이 하나같이 나와 너무 많은 나이차가 있으며 , 내 또래 술을 좋아하는 인연은 참 만나기가 쉽지 않다. 건강상의 이유로 금주를 하거나 나이가 들면서 체질이 바뀌어 금주하거나 아님 원래 못 마셨거나….. 다들 왜 그런 거지? 왜 이 좋은 술을 안마시냐규!!


술 좋아하는 마음 잘 맞는 친구를 만들고 싶은데 그게 참 마음대로 안되더라. 너무 어린 사람들이랑 술을 마시기는 겁이 나기도 하고.

술은 비슷한 또래끼리 마셔야 제대로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아주 편안하게 마시려면 마음이 맞든, 나이가 맞든 뭐가 맞긴 맞아야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신경 안 쓰이는 혼술을 즐겨한다.

주말엔 남편과 늘 같이 마시곤 하지만 남편이 시간이 나지 않으면 기다릴 것도 없이 혼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하진 않는다. 젊은 시절엔 기분 나쁠 때 술을 더 많이 찾았다.

왜 그랬을까. 술을 마신다고 달라지는 건 코딱지만큼도 없었는데. 알면서도 기분이 나쁘면 술을 마신 것 같다. 그러면 뒤끝은 항상 별로였지. 싸우거나 울거나 토하거나. 그래서 기분은 더 나빠졌고.


이제는 기분이 좋을 때 술을 찾는다. 혹은 그냥 밍밍할 때나.

기분이 나쁜 날엔 술을 안 먹는다.

맛이 없다. 혼술이라서 그럴까? 기분 나쁠 때의 혼술은 잘 안 들어가기도 한다.

그럴 땐 술도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할 땐 술을 마신다. 기분이 나쁜 것과 우울한 건 분명 차이가 있다.

우울할 땐 기꺼이 내 친구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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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차려놓은 술상에 앉아 술잔에 술을 따르면 잔에 담긴 술이 나를 바라본다.

“괜찮아, 내가 위로해 줄게”

그리고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알싸한 향과 위장으로 향하는 뜨끈한 기운은 곧 나에게 말을 건네 온다.

“어때? 한결 나은 것 같니?”

그래, 한결 나아. 이래서 내가 너를 못 끊지.


어느 정도 노곤 노곤해질 때까지 마시는 걸 좋아한다.

술을 마시면 용기가 생긴다. 좌절했다가 다시 일어설 용기.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용기. 두렵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

술이라는 친구는 언제나 나에게 용기를 준다.

내가 기분이 좋을 땐 지화자 좋구나~ 하며 덩달아 신나 한다. 그래서 나를 더욱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술도 역시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좋은 친구가 되기도, 나쁜 친구가 되기도 한다.

누가 나쁜 친구와 함께 하고 싶을까. 술을 나에게 좋은 친구로 만들려면, 내 마음이 좋을 때 만나야 한다.


알코올이라는 성분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술이라는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 하면 그 자리는 더 흥겹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게 해 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잔칫상에 술이 빠지면 섭섭하지”이다.

기쁨을 술과 함께 나누는 정서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의 민족성이다.

나는 오리지널 한국인이 맞다.

흥에 취하고 술에 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 보면 말이다.


따로 술자리를 준비하지 않아도, 술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마실 수 있다. 하루에 두세 번 밥을 먹을 때 반주로 얼마든지.

하지만 너무 자주 만나서 할 얘기가 없는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보고 싶어도 잠시 거리를 둬야 한다. 기다렸다가 만나는 그 반가움을 위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구지만, 더 큰 즐거움을 위해 참을 줄도 안다.

목마름을 견디다 마시는 물이 훨씬 더 맛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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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요즘 즐겨보는 '슈룹'이라는 드라마에서 "계영배"가 나왔다.

계영배란 7할 이상의 술을 채우면 밑으로 모두 흘러내리도록 만든 술잔이다.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다.

과욕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만든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잔이다.

아~ 술잔에 이토록 멋진 뜻이 담겨 있다니. 난 완전 반해버렸다.

향락과 쾌락만을 위한 술이 아닌 선비의 품격처럼 술이란 친구도 선비처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젊은 날 그렇게 소주를 마셔봤어도 왜 술잔에 7부를 따라야 하는 게 주도인지를 몰랐던가.

이게 바로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이 되어간다는 증거일까. 알려줘도 귓등으로 들었을 것들을 이제는 찾아가며 배운다.

그러니 술 한잔에도 배움이 있다.

곱게 잘 마시면 술이란 참 좋은 친구임에는 틀림없다.

인생의 맛과 멋을 느낄 수도 있고, 마음을 나눌 수도 있고, 지루한 일상에 한 점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술이 좋다.

왜냐하면 술은 참 설레는 친구니까.

하지만 욕심을 낸다면 이 친구는 분명 나를 개로 만들 수도 있다. 아주 무서운 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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