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의 변명
내 인생을 돌아보면 언제나 기억하는 그곳엔 술이 있었다. 철없던 20대에는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서 맥주를 마시는 게 로망이었고 대학에 가자마자 과미팅보다 먼저 했던 게 잔디밭에서 술 먹기였다.
해냈다.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기분이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되었을 때 우연히 본 인기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혼자 포장마차에 가서 소주 한 병을 아주 맛있고 깔끔하게 마시고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세상에 어쩜 저렇게 멋있는 거지? 포장마차에서 혼자 마시는 술이 전혀 빈티 나지 않있다. 그래서 나도 해보았다.
그때가 90년 후반이었으니 요즘처럼 혼술 혼밥이 절대 유행하지도 당당하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혼자 , 그것도 젊은 여자가 포장마차에 가서 소주를 먹고 나오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해냈다. 들어갈 때 쭈뼛쭈뼛, 주문할 때 “소주 한병이요 “ 이 말을 내뱉기까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그게 다였다. 그 후엔 술이 해결해주니까. 창피함도 민망힘도 타인의 시선도 모두…
30대 초반이 되었을 때 역시나 이번에도 드라마에서 커리어우먼인 한 여성이 럭셔리한 호텔에서 혼자 시티뷰를 즐기며 위스키 언더락을 즐겼다.
또 멋있었다. 해보고 싶었다.
위스키를 즐기지 않았으니 위스키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모른 채 마트에 가서 싸구려 마주앙을 사 와서 나름 락잔에 얼음을 넣고 언더락으로 시티뷰 같은 건 없었던 내 자취방에서..
웃겼지만 웃긴대로 해냈다.
애주가이지만 주량이 늘지도 않고 세지도 않은 나는 어쨌거나 마시려고 노력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술을 마실줄 아는것이 내겐 멋있어 보였다.
술맛을 알아서도 아니고 단지 멋 내기 위함이 전부일 때도 있었고 술보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했다. 누구를 만나든 어디에서든 술은 항상 있었다. 마치 술이 빠지면 아무도 아무 곳도 다 소용없는 것처럼.
그러나 중독되진 않았다. 술이 빠지면 안 되지만 혼자일 땐 술 생각도 안 났고 술은 혼자 마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술자리가 아닌 술을 즐기게 된 것 같다. 물론 여전히 누구와 마시느냐. 어디서 마시느냐에 따라 술맛이 달라지긴 하지만 혼자 마시는 술도 맛있을 수 있고 혼자 마시는 술자리에 오롯이 나와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술을 예전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 와인도 공부하며 마시고 위스키도 알고 마신다.
정말 좋아하게 되면 깊이 알고 싶어 지듯이 술도 마찬가지다. 그냥 마시는 술과 알고 마시는 술은 맛도 다르다. 분위기에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이 아닌 술과 나만의 시간 오롯이 둘이 마주하며 대화하듯 마시는 술이 나는 좋다.
때론 사람보다 낫기도 하며. 돈보다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쇼핑하는 즐거움과 같이 술 마시는 즐거움이 있다.
혼술을 줄기다보니 폭주나 과음을 할 일은 없다.
그저 조용히 짧은 한두 잔을 기울일 뿐. 그거면 충분하다. 그것으로도 나에겐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