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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가 되던 날

내 인생 기념비적인 날

by 그레이스웬디

남자들에게 군대 가서 축구한 이야기가 있다면, 여자들에겐 아이를 출산한 이야기가 있다.

모르는 여자들끼리도 몇 시간 만에 친해질 수 있는 우리들만의 공감 이야기.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나 출산 이야기만큼 각자의 사연이 있는 것도 없다.

그 경험은 책으로도 느낄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전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반드시 직접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이야기다.


내 인생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내가 엄마가 되던 날을 회상해본다.


난 내 인생 기념비적인 날이 당연히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과정, 따로 또 같이 가 되는 과정이니까 완전히 다른 생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결혼 하나에 인생이 통째로 바뀌어버리는 삶은 무수히 많다.

그 삶이 더 나아졌든지, 아예 폭삭 망했든지 어쩐지 이분법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 결혼이 아닐까.


출산을 하기 전에는 결혼이라는 것이 인생의 반환점이 맞았다.

하지만 진정한 인생 터닝포인트는 역시 출산이다. 결혼과는 비교가 안된다.

결혼은 엎을 수도 있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면 엎을 수 있는 일도 망설여지니까.

말 그대로 빼박인 상태에서 내 삶을 꾸려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특권이 될 수도 있고 가혹한 형벌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모든 동물들이 자기의 새끼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책임지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힘들게 책임져야 하는 동물인 것 같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하나의 또 다른 생명을 케어하기란 보통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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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1세에 아이를 출산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생기질 않았다.

병원에서 남편과 모든 검사에서 정상 소견을 보았으나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급기야 시험관 준비를 권했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아이 없이 사는 것도 편하고 좋겠다는 생각에 아이는 포기하기로 남편과 합의를 했다.

17년을 키우던 강아지를 내 새끼처럼 키우고 있던 중이었고,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골프를 치고 그늘집에서 낮술을 거하게 마시고 들어와서 실컷 자고 일어난 다음 날,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갑자기 달력을 보았다. 언제나 정확히 찾아오던 대자연이 지연되고 있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하고 테스트를 해 보았는데 명백한 두 줄.

그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믿기지 않았다는 말이 전부였다.

어리둥절하고 당황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리곤 어제 낮부터 왕창 마셔댄 술이 생각났다. '아.. 어떡해 나 술 많이 마셨는데 ㅜㅜ...'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 갑자기 닥쳤는데, 그것이 내게 주어진 시간 10달이나 된다면 두렵기 시작한다.

지식과 정보가 없었기에 더 불안하고, 알게 된 들 막말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수밖에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계획도 세울 수 없고, 처음 테스트기의 두 줄만 보고는 그저 미약한 인간이 신이 주시는 어떤 미션에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이의 심장소리를 처음 들으면서 그제야 실감을 하고, 정작 기쁨과 환희는 그때부터 시작인 것 같다.

몸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내 몸이 신기하기만 하고, 태동이라도 느끼는 날은 마법 같은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불룩 솟은 배 말고는 없는데 그 안에 아기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배 안에서 보내오는 각종 신호들로 내 몸이 전에는 한 번도 없던 반응들을 할 때는 힘겨운 싸움이 되기도 했다.


나는 노산인 데다 유산기가 있어 입원을 했었는데, 그때의 그 두려움 속에서도 아기를 지켜내고 싶었던 마음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었다.

어떤 다짐을 한 것도 아니고, 맹세를 한 것도 아닌데 당연하다는 듯이, 마치 내가 이런 마음을 원래 가지고 있었던 듯이 그렇게 나도 모르는 힘으로 견뎌냈다.

매일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또 힘겨운 일일 줄 누가 알았을까.

이런 것이 그 모성이라는 것일까? 동물적인 본능이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만삭이 되었을 때는 여행길에 차 안에서 숨 막히는 느낌을 난생처음 겪어보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숨 막히고 답답함.

배가 불러서 숨쉬기조차 힘들어 이러다가 나 정말 죽겠구나 싶은 그 공포감. 갓길도 휴게소도 쉼터도 없는 고속도로에서 얼마나 두려웠던지.


출산예정일 한 달을 앞두고 시어머니가 오셔서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기분 좋은 배부름으로 한 숨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아래가 뜨겁다.

오줌처럼 다리를 타고 뭔가가 흘러내렸다.

오줌을 지려본 적 없는데 임신하면 이런 일도 생기나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오줌 냄새가 아니었다.

그, 말로 표현할 길 없는 소독약 냄새 같기도 하고, 무튼 분명 어떤 약품의 냄새가 났다.

색깔은 물색이다. 투명한 물.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그것이 양수라는 것이다.

양수에서 그런 냄새가 난다는 게 나는 지금도 신기하다.

마치 아기를 소독해주던 물 같다는 생각. 모든 균으로부터 내 아기를 지켜주고 있었다는 생각.


양수가 터진 거라고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병원으로 가는 그 차 안은 고속도로에서 처음 느꼈던 공포와는 또 다른 공포를 주었다.

아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차 안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또다시 양수가 흐를까 봐 어기적 어기적 걸음으로 병원에 도착을 해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니 지금 출산을 할 수밖에 없단다.

'한 달이나 남아서 마음의 준비도 전혀 안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로 출산을 한다고?'

그 와중에 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지금 안 하면 안 돼요?"

간호사가 친절한 미소로 방긋 웃으며 "아이가 나올 준비가 다 된걸요? 엄마도 아이 만날 준비를 하셔야죠^^"했다. 그때까지도 내 마음은 그저 두려움이 전부였다.

"아 어떡하지... 무서운데..."

이런 생각을 아주 잠깐 했나? 그 후엔 더 이상 잡생각을 할 수도 없을 만한 진통이 찾아왔다.


생리통이 심한 나는 약도 안 먹고 잘 버티는 악바리였다. 그래서 아주 심할 때는 한 알 정도면 약발도 잘 먹히는 몸뚱이다. 그런 내가 출산의 진통을 그깟 생리통에 비유한 것은 진통에게 사과한다.

너란 놈이 얼마나 강력한지 나는 몰랐다고.

정확히 말하면 생리통과는 완전히 다른 통증이다.

생리통은 아랫배부터 허리까지 쑤시기도 하고 싸하기도 한 뭐 그런 거라면 진통은 딱 그거였다.

변비 통증. 응가가 마려워 배가 뒤틀리고 아픈데 응가가 안 나오는 그거.

그것의 오만 배쯤? 진짜 뭐 이런 기분 나쁜 통증이 다 있나 생각하다가도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그 통증에 제발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빌고 싶은 심정으로 이내 바뀌게 하는 그 지독한 통증.


시간이 그렇게 지나간 줄도 모르고 어떻게든 그 통증과 싸우는 고통. 17시간.

"선생님 제발 저 수술해주세요"를 몇 번이나 울며 외쳤던가.

그럴 때마다 자연분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고.

"야 XX야 니가 낳냐? 내가 아파 죽겠다는데 왜 니가 할 수 있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욕들을 삼키며 무통주사가 주는 고요의 시간 2시간.

그때 여자들은 이미 어른이 된다.

아직 아기를 만나지 않았지만, 그 오랜 고통을 온몸으로 겪다가 실신하기 직전 맞이하는 무통주사의 힘에 세상만사 감사함을 느끼고, 평상시에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미리 어른이 된다. 그게 엄마가 될 준비의 시간이 아닐까 신은 다 계획이 있다.


아가를 만나기 전 막판 스퍼트.

그때 여자들은 있는 힘을 다해 힘을 줘야 하므로 얼굴의 실핏줄이 다 터진다.

그리고 다음 날 본 남편의 손에는 곳곳에 멍이 들어 있었다.

얼마나 움켜쥐었으면 남자 손에 멍을 만들 수 있나. 여자들의 깊은 내면의 힘은 그토록 무서운 것이다.


그렇게 한 달 일찍 태어난 아가를 보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고 요놈 효자네."

"왜요 선생님"

"몸무게가 3,5예요. ㅎㅎㅎㅎ 한 달 더 있다가 나왔으면 엄마가 더 힘들었을 텐데, 기특하게 스스로 다 커서 빨리 나왔네요 엄마 편하라고."

그렇게 만난 내 효자 아들을 보고 나의 첫마디는 "앙~~~~ 너 왜 이렇게 못생긴 거야 ㅜㅜㅜㅜㅜㅜㅜ"

미쳤지. 그게 할 말이니?

드라마를 보면 "아가~ 엄마야, 만나서 반가워"라든가 "아가 힘들었지? 엄마 만나겠다고 힘 내줘서 고마워"

머 요따구로 말하길래 나도 준비한 말이 있었다.

"우리 까꿍이 만나서 반가워, 너무 보고 싶었단다".... 는 개뿔.

쭈굴쭈굴 빨간 애가 나올 줄 누가 알았냐며.


매일매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예뻐지는 아가를 보며, 나의 그 첫 만남 첫마디를 어찌나 후회했던지.

지금도 그렇게 말한 건 괜히 미안하다. 아이는 모를 텐데도 ㅎㅎ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되었고,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게 어떤 것인지 알아가고 있다.

어른들이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말에 백퍼 공감하면서.

내 인생 기념비 적인 날을 만들어준 내 아가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 하고 있다.

"엄마는 네가 엄마 아들이라서 행복해."

"내가 너의 엄마라는 사실이 너무 감사해"

이런 말들로 우리의 첫 만남 첫 대화를 만회하고 있다.


한 줄 요약 : 여자들에겐 출산의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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