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 리니지 2
15년 전쯤 나는 RPG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남자친구도 없었고 일만 하며 살던 시절. 시간만 나면 PC방으로 갔었다.
리니지 2 광고를 보고 게임세상이 너무 예쁜 그래픽들과 그보다 더 예쁜 캐릭터에 빠져서 시작하게 되었다.
게임초보였던 나도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시작해도 될 만큼 게임 속에서 자세히 가르쳐주었고, 레벨을 올리기도 쉬웠다.
레벨이 점점 올라갈수록 레벨업이 잘 안 되었고, 장비도 좋아야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한창 리니지 1로 현질을 하다 폭망 한 사람들 이야기와, 게임 속에서 생긴 악감정을 현실에서 풀어버리는 일명 현피 떠서 사고가 생기기도 하고 그런 때였다.
리니지 1은 돈이 되지만, 2는 돈이 안 되는 게임이라 조금 더 안전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여성유저들이 많았다.
레벨업을 하고 싶어 꽤나 많이 투자를 했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만렙을 찍었다.
게임 속에서도 나는 하고 싶은 캐릭터가 많았다. 나이트부터 비숍, 플핏, 궁수..
본캐는 나이트로 시작해서 부캐인 궁수도 만렙을 찍기까지 참 열심히도 했다.
당시 만렙이 65였던가 78이었던가..
만렙이 되는 동안 게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파티사냥을 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자주 보는 캐릭터들과는 베프 수준이 된다.
그러나 역시 게임 속에서도 혼자보다는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캐릭터를 키우기에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다.
그리하여 혈맹이라는 집단에 가입을 한다.
혈맹들끼리 우열을 가리기 위해 싸움을 하는데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선 중세시대 장군들처럼 지휘하는 대장들이 필요하다.
총 군주 아래 직업별로 군주들을 뽑는다. 나는 여성유저로서 당당히 궁수단 군주를 맡게 되었다. 우리 혈맹에 여자군주는 내가 유일무이였다. 내가 놀던 서버에서 1,2위를 다투는 혈맹이었다.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지 ㅋㅋㅋㅋㅋㅋㅋ
이 공성전을 하는 날엔 긴장감마저 든다. 혈맹원 대부분이 참석을 하여 똘똘 뭉쳐서 승리해야 한다.
마치 내가 진짜 장군이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완전 멋있다.
총군주의 지휘와 전략이 중요하다.
현실과 같이 게임 속에서도 전쟁 전에는 총 군주와 각 군주들이 전략회의를 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부끄러워 인사도 못하던 내가 마이크를 통해 지휘하고 소통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파티사냥보다 공성전 같은 큰 싸움을 나는 더 좋아했다. 역시 나는 장군감인가... ㅎㅎ
그렇게 마이크로 대화해도 편해진 혈맹사람들과 몇 년을 게임을 하다 보니 얼굴도 모르는 그들이 학창 시절 친구들만큼이나 친하고 편해졌다.
현모에 처음 참석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총 군주 오빠의 집으로 혈맹원들이 모였다.
나도 대전까지 차를 끌고 가서 식구들 (혈맹원)을 만났다.
너무 궁금했던 캐릭터들과 실제의 모습이 닮은 사람도 있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온라인에서 소통을 하던 사람을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리니지 2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혈맹원 동생과 자주 만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찔끔아 보고 싶어 ㅠㅠ)
그때 알게 된 언니와 형부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카톡을 한다.
얼굴은 딱 한번 보았고, 게임을 끊은 지 15년도 넘었는데 언니는 명절, 내 생일, 크리스마스 등등 인사를 건네야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먼저 카톡을 한다.
내가 결혼을 했을 때도, 임신을 했을 때도, 출산을 했을 때도...
참 고마운 인연이다. 언니도 더 이상 게임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의 군주였던 나를 기억한다고 했다.
게임에서 스스로 손을 뗀 것은 아마도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진 내 삶의 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끔 그때를 생각하곤 한다. 그 속에서 나의 캐릭터는 늙지 않은 채 그대로 그 레벨일 것이다.
만렙이 풀려도 몇 번이 풀렸을 시간 동안 나의 '미르 아프로디테'는 잘 지내는지 궁금해진다.
한 때 게임에 열광했던 내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게임 속 세상에서 완벽했던 나의 페르소나가 부쩍 그리워지는 요즘인 까닭은 한 해가 저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를 따르던 수많았던 혈맹원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들은 여전히 게임을 하고 있을까...
문득 게임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 줄 요약 : 게임도 잘하면 좋은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