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가 사랑한 선비 6

혼례의 날, 붉은 뜻

by 회안림

세종 10년, 음력 4월.


죽산안씨 종가의 정자 위로 붉은 봉황 깃발이 나부꼈다. 연홍색 비단등은 바람을 따라 잔잔히 떨렸고, 대청 마당에는 연분홍 비단이 길게 깔려 있었다. 그 위로, 왕실의 공주가 걷는 날이었다. 이날 인근의 사대부들은 모두 참석해야 했다. 그 질서에 따라 혼례를 지켜봐야 하는 한선에게는 고통스러운 날이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 무렵, 붉은 가마가 마당 끝에 이르렀다. 가마문이 조용히 열리고, 정의공주가 발을 내디뎠다. 대홍장삼 위에 정교한 봉황과 원앙이 수 놓인 활옷을 입고, 하얀 얼굴은 진주 장식의 붉은 부채로 가려져 있었다. 부채 위에는 핀 모란과 그 주위를 나는 나비가 수 놓여 곧장 하늘로 날아가버릴 듯했다.


그녀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왕녀에서 한 선비의 부인으로 낮추며 걸어 들어왔다. 안맹담은 정중히 발을 내딛으며 나아가 공주를 맞았다. 마치 한선이 즐겨 읽던 시경 속의 군자 같았다.


“부디 안으로 드십시오.”


그의 음성은 낮고 단정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선의 입술 안쪽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웃지 못했고, 울 수도 없었다. 그저 속이 비어갔다.


공주와 신랑은 붉은 자수방석에 마주 앉았다. 방석 사이에는 백로와 원앙이 수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은제 주전자와 세 개의 술잔이 가지런히 놓였다. 향좌 위엔 동자상이 좌우를 지켰다. 자손과 가정의 번영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동뢰연은 단순한 상차림이 아니었다. 이는 신랑과 신부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임을 공적으로 증명하는 자리였다. 신분의 높낮이를 떠나, 인간으로서 평등한 자격을 선언하는 의식이었다.


그 모든 장면마다 한선은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부드러운 공기가, 그녀의 심장 위를 칼날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자리였을 것을...’


손등을 말아 쥐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 손은 마치 무너지는 마음을 봉합하려는 듯 떨리고 있었다. 공주는 부채를 접고 조용히 몸을 굽혔다. 공주의 두 번 절은 자신의 지위를 스스로 낮추고, 신랑을 부군으로 받아들이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안맹담도 가만히 일어나 깊은 읍을 올렸다. 그 정성에 보답하겠다는 신랑의 맹세였다. 두 사람의 동작 하나하나가 진행될 때마다 한선의 숨이 멎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손을 치맛자락 안으로 감추었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손톱의 아픔조차 감각되지 않았다. 단지 울지 않으려, 부서지지 않으려 애쓸 뿐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서 이 혼례가 멈춰지기를.


은제 주전자에서 술이 따랐다. 첫 잔은 안맹담이 공주에게 건넸고, 두 번째 잔은 공주가 그에게 돌려주었다. 마지막 잔을 맞들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삶을 한 잔씩 나누어 마시는 약속이었다. 술이란 곧 몸과 마음을 나누어 공동운명이 되는 서약이었다. 공주의 눈동자가 맹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맹담도 공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세 번째 잔이 비워지고,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함께 고개를 숙였다.


한선의 얼굴은 마침내 창백해졌다. 마지막 잔이 마셔지는 순간, 조용히 일어났다. 그녀의 무너지는 마음처럼 하늘은 끝내 무너져주지 않았다.. 그녀는 매화나무 아래로 걸어 들어갔다. 등이 비추지 않는 그늘 속에 선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따라, 난 왜 이리도 초라한고...”


자신의 옹졸한 마음때문에 그 초라함은 더했다. 낯선 실연의 슬픔은 시경을 좋아하는 규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었다. 수 백개의 죽산의 연등이 흔들리는 한켠에서 분홍빛 연서도, 노래도 없이 한 규수의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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