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는 자
2003년 11월 대전엑스포 과학공원 국제회의장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10주년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단상 뒤 높이 걸려 있었다.
세이는 부여박물관을 대표해서 전시회 소개자료 발표를 하게 되었다.
중국패널의 딴지가 계속되다 보니
전시회 소개인지 학술토론인지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 향로는 북위~북제 계열 박산향로와 유사한 형식 구조를 보입니다.
하지만 봉황이 향로의 최상단에 용이 가장 밑바닥에 위치하는 조형은
의도적인 배치라고 보입니다.”
중국 패널이 반박했다.
“중국에서도 그러한 배치의 조형은 일부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백제문화가 중국문화의 일부라는 강력한 증거가 아닌가요?”
세이는 속에서 뭔가 올라왔지만 자분자분 대답했다.
“형식은 빌리되, 문맥은 바꾼 거라고 보입니다.”
“어찌 되었건 중국문화라는 얘기 아니겠소?”
세이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백제는 외래 형식을 수용하면서도
그 안에 독자적 우주 질서를 해석해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봉황이 용을 타고 있는 이 구조는…
어쩌면 한반도 문명이 당대 중국 중심의 상징체계를 일부 재배열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중국패널이 동의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일본패널은 중국패널의 그런 태도가 못내 거슬렸다.
발표 내내 백제의 주조기술이 일본 것이 아니냐던
그는 중국패널이 보란 듯이 질문했다.
“그 구조를 백제가 자의적으로 조형했다면,
중국 중심 세계관의 상징 구조를 거스른 것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세이는 잠시 생각한 후 답했다.
“전복이라기보단, 변형된 해석입니다.
당시 백제 왕실은 외래 양식을 수용하되
자국의 미술적 언어로 변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자기화된 조형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표가 끝나고 세이가 자리에 돌아오자
이선빈이 바보처럼 웃으며 소리 없는 물개박수를 쳤다.
세이도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 보였다.
이선빈이 세이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네 설명대로라면…
삼한의 문명이 중국 문명을 상징적으로 아래에 둔 거네.
우리나라가 중국을 밟고 선진국이 된 것 같은 건가?”
세이는 웃었다.
“이선빈, 너무 이선빈 식으로 바보 해석하는 거 아니냐?”
둘은 투닥거리며 건물을 나섰다.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인파에 떠밀려 가던 둘은
어쩔 수 없이 어깨동무하기로 했다.
부여의 하늘 위에 솜사탕 같은 구름도
바람에 떠밀려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