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유달산
방대한 자료조사 결과
워런트 하나가 잡혔다.
상고시대부터 구한말로 이어지는 서사축으로
유교 심종 정명사의 이야기이다.
유달산(鍮達山)의 지명 유래와 신화적 의의
전남 목포시를 굽어보는 유달산(228m)은 노령산맥의 끝자락에 위치하며, 예부터 영혼의 길목이라는 전설적 의미가 담겨온 산이다. 전설에 따르면 유달산은 본래 「영달산」 즉 “영혼이 거쳐 가는 산”으로 불렸다. 해돋이 무렵 산봉우리가 햇빛에 반사되어 마치 쇠가 녹아내리는 듯 황금빛이 도는 모습에서, 놋쇠 鍮(구리)가 *「펼쳐진다(達)」*는 뜻의 한자를 써서 鍮達山이라 이름 붙였다. 이후 구한말 유배에서 풀려난 유학자 무정 정만조(儒達亭匠)가 산상 시회를 열자 이에 자극된 지방 유림이 이곳에 **儒達亭(유달정)**을 세울 것을 결의하였고, 자연히 산 이름도 유교적 의미의 儒達山으로 바뀌었다. 즉, 유달산(鍮達山)이라는 이름에는 “쇠구슬처럼 빛나는 봉우리가 하늘에 닿는 산”이라는 자연현상적 이미지와, 나아가 “학문(儒)을 펼친 산”이라는 학문적 상징이 중첩되어 있다.
상징체계와 영혼의 길목
목포의 민속에서는 유달산이 오랜 세월 동안 죽은 이들의 영혼이 거치는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다. 전승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유달산 정상부의 **일등바위(一等岩)**에서 심판을 받은 뒤 **이등바위(二等岩)**에 머물며 결과를 기다린다고 한다. 이후 시방(時方)에 따라 세 갈래 길로 흩어지는데, 극락으로 갈 영혼은 유달산 아래 삼학도의 세 마리 학(鶴)을 타거나 고하도 섬의 용(龍)을 타고 떠난다. 용궁(龍宮)으로 가는 영혼은 유달산 거북바위에 사는 거북의 등을 타고 간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전승은 유달산과 주변 섬들이 저승으로 가는 전이 공간임을 상징한다. 즉, 삼학도의 세 마리 학과 고하도의 용머리, 유달산의 거북바위는 각각 부활과 불멸의 상징으로서 ‘천상의 탈 것’ 역할을 한다. 이를 반영해 삼학도(三鶴島)는 ‘세 마리 학이 사는 섬’이란 뜻으로, 낙조에 낡은 배를 구원의 학(鶴)으로 비유하는 경치와 전설로 잘 알려졌다.
삼학도와 주변 유적의 전설
삼학도 전설은 앞서 언급된 상징체계를 구체화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유달산의 한 장수가 바다에 떠 있던 배를 목표로 활을 쏘았는데, 뜻밖에도 세 처녀가 탄 배를 맞혀 바다에 구멍이 뚫렸다. 배가 침몰하자 세 처녀는 형체를 학(鶴)으로 바꾸어 솟아올랐고, 그 자리에 삼학도의 세 개 섬이 생겼다고 한다. 이 전설은 죽은 이의 영혼을 구원하는 새가 세 섬으로 환생했다는 점에서, 유달산 설화의 ‘영혼 수송체계’를 뒷받침한다. 실제로 삼학도라는 이름 자체가 학(鶴)과 밀접하여, 세 개의 섬이 학의 형상으로 보인다는 전해오는 설화와 잘 어울린다.
유달산 중턱의 정자 이름들도 이러한 학(鶴) 신화를 은연중 반영한다. 특히 **대학루(待鶴樓)**는 글자 그대로 ‘학을 기다리는 누각’이다. 유달산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조망하면 산자락과 섬들이 마치 학이 날개짓하는 형상처럼 보이는데, 그 정취를 기려 학을 기다린다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유달산에서 내려다본 고하도는 반달 모양이지만, 마치 용(龍)이 바다에서 승천하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현재는 ‘용오름길’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학(鶴)과 용(龍)은 유달산 일대의 핵심 상징이다. (이 외에도 유달산에는 유선각(儒仙閣)·관운각(觀雲閣) 등 신선(仙)과 천문(雲)을 뜻하는 정자가 다수 배치되어, 전설 속 선인무림적 분위기를 더한다.)
지역 신화의 대서사 구상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 유달산과 그 주변은 고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통합된 신화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먼 옛날 마한 시기부터, 유달산은 토착민에게 산신(山神)이자 죽은 영혼을 인도하는 관문이었다. 산 정상의 바위들은 고대 제사 흔적으로 남은 고인돌(高人돌) 같은 자연 유적으로 여겨졌고, 그 곳에 올랐던 이들은 앞에서 볼짱처럼 부처 또는 선인(仙人)을 만났을 것이다. 삼학도의 전설이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라도, 세 개의 작은 섬은 이미 태양 아래 빛나는 바위로 보였을 터이며 사람들은 이를 ‘저승의 세 기둥’ 또는 ‘영혼을 달래는 세 목각’으로 여겼을 것이다.
중세 이래 불교·유교가 함께 융합되면서 유달산 신앙은 더욱 복합적인 양상을 띠었다. 영혼을 다스리는 부처님(玉井, 옥정)과 선인전설(유선각) 및 세 학 전설이 공존하며, 이곳은 영혼의 천도와 성현의 성지를 아우르는 산이 되었다. 구한말 충절의 후예로 불리는 학자들이 산중에 유달정을 짓고 의식을 베풀며 산을 ‘儒達山’으로 격상시킨 것도 이런 맥락이다.
조선조 시대, 특히 임진왜란 때는 유달산이 실제 역사적 무대가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이 노적봉(露積峰)에 군량 미끼를 쌓아두는 작전을 구상하여 왜군을 속였다고 한다. 산의 바위와 굴곡들은 영토를 수호하는 전략적 힘의 상징으로 되살아났다. 이후에도 조선 말·현대 초기까지 유달산은 학문과 예술의 피난처이자 치유의 공간으로 이어졌다(예: 1947년 양동교회 건축 시 유달산 돌을 썼으며,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도 이 산 아래에서 울려 퍼졌다).
결국 유달산은 고대 마한 시대의 영혼의 관문에서 조선 시대의 지혜와 항전의 무대에 이르기까지, 지역민의 삶과 상상이 집약된 신화적 대서사의 중심이다. 유달산과 삼학도·고하도·거북바위 등 일대 지형들은 마치 한 편의 서사시처럼, 산과 섬을 지나 천상으로 이어지는 영혼의 여정과 역사의 현장을 보여준다. 이러한 복합적 신화구조는 단순한 전설을 넘어, 목포 지역의 고고학·민속 자료 및 문헌 기록까지 반영된 토착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예컨대 유달산 정상부의 전설적 바위들, 산중 사찰과 정자들, 주기적으로 열리는 산제(山祭)와 배치기굿(배 띄워보내기) 같은 민속행사는 이 산이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생활과 믿음이 어우러진 성역임을 증언한다.
종합하면, 유달산은 예로부터 ‘영혼의 산’으로 불리며 바다와 산을 잇는 신비한 통로 역할을 해 왔다. 삼학도의 선녀 이야기와 대학루의 학 기다림, 고하도의 승천 용, 거북바위의 영혼 여객 같은 요소들은 서로 호응하며 목포 지역민의 우주관과 삶의 이야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다. 이처럼 마한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산신·선인·영웅담을 엮으면, 목포 유달산과 주변 지형은 **‘하늘과 인간,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하나의 대서사시 무대’**로 창조적으로 재탄생된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유달산」), 목포문화원 향토사 자료, 목포민속전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