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라 전기(鍮達 傳奇) #8 심종의 길

by 회안림

유달산 중턱의 암자.
한때 경전과 주련으로 가득하던 이곳은 이제 단 하나—고요만이 머물러 있었다.
도유사의 육신은 여전히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붓을 쥔 손은 마치 방금 글을 멈춘 듯, 고요한 침묵을 품고 있었다.
그의 등 뒤, 석벽에 걸린 작은 등불 하나만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정적을 깨며 낯선 발소리가 스며들었다.
바닥을 타고 울리는 발자국은 점점 가까워졌고, 어둠 속에서 나타난 자들은 정안조의 그림자들이었다.
말이 없고, 눈빛이 얼음 같았다.
그들은 군사도, 선비도 아니었다. 오직 정안조의 명령으로만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흑철의 칼을 꺼냈다.
빛조차 반사하지 않는 칼날이 조용히,

그러나 냉혹하게 도유사의 어깨 부위를 향해 들어갔다.
찰나.
칼끝이 육신을 파고들며 핏줄기가 치솟았다.
피는 문사복을 타고 흘러내렸고, 그중 몇 방울은 붓끝을 타고 떨어졌다.

그 순간, 허무의 공간에서 싸우고 있던 도유사의 정신체가 크게 흔들렸다.
어깨가 떨렸고, 눈동자 안에는 번갯불 같은 고통이 스쳐갔다.
하지만 그는 고통을 끊어냈다.
본체가 공격받고 있음을 감지한 그는, 스스로 감각의 연결을 잘라내었다.
모든 감각을 정신체로 회수하며, 다시 전심전력으로 허무를 상대했다.

‘끝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은 나 외에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뎌지는 육신, 느려지는 심장.
그러나 의지만은 더 깊고 단단해졌다.
붓끝에 실린 그의 정신은 허무의 중심을 뚫고 있었다.


바깥에서 정안조의 목소리가 석벽을 타고 울렸다.

“도유사! 아직도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이냐?
돌아오면 목숨은 살려주마.”

그 말투엔 조롱이 섞여 있었다.
심종이란 이름에 대한 열등감, 뿌리 깊은 질투.
그것이 그의 언어에 독처럼 밴 것이었다.

“너도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서두르라.”

그 말은 칼보다 날카로웠지만, 도유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붓은 여전히 흐르지 않는 허공에 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선택한 것이었다.
살아남는 대신, 싸우는 길을.
심종의 이름으로, 예악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는 몸이 아닌 붓으로 싸우는 자였다.
그리고 그 붓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마지막 결을 그려가고 있었다.

유달산 능선을 타고 바람이 내렸다.
싸늘하고 서늘했다.
그러나 정안조의 눈빛은 그보다 더 차가웠다.
푸른 관복 위에 검은 도포를 걸치고, 채찍처럼 붓을 쥔 그는 암자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의 주위엔 술객, 밀명을 지닌 자들이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안조는 비웃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리석은 도유사여….”

심복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감, 계속 이대로면… 지혈시킬까요?”

정안조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말했다.
“놔두라. 곧 굴복할 것이다.”

그는 한 손을 들어 암자를 가리켰다.
정안조는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내뱉었다.
“오늘, 도를 품은 자의 자존을 꺾고, 이 땅의 예악을 끝낼 것이다.”

마치 자신을 납득시키듯, 오래된 원한을 씹듯.
주위는 고요해졌다. 누구도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 정안조는 한 걸음 더 암자 쪽으로 더 다가섰다.

“도유사! 이젠 정말 돌아오라.
돌아오면, 목숨을 구해주겠다.”

하지만 도유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붓은 여전히 허공에 결을 그리고 있었고,
그 붓끝에서 번지는 선은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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