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종의 별들이 흩뿌려진 시공의 바다 한가운데, 현옥은 홀로 떠 있었다.
무수한 기억의 파편들이 별이 되어 맴돌고 있었다.
그곳은 이름도 장소도 잊힌 시간의 틈.
현실과 허무 사이에 놓인, 잔영(殘影)의 바다였다.
현옥은 기억들의 행간을 고요한 흐름 속에서 유영했다.
시간은 넘실거렸으며, 하늘은 사라졌음에도 별은 떠 있었다.
그 별들은 작고 따스한 빛을 품은 정결한 조각이었고,
아무 말 없이 노래하듯 속삭였다.
별빛 하나를 스칠 때마다, 그 안에는 심종사 한 사람의 기억이 있었다.
고통과 희생, 빛과 이름이 실처럼 얽혀 있었고,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평생을 품은 뜻이 마지막 빛으로 승화된 순간들이었다.
그 심종의 바다 가운데 스승님의 별ㅣ마지막 순간도 샛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현옥아... 심종의 숨결이 흐르게 하라. 심종이 너와 함께 하리라.'
그때—
은빛의 결들이 일렁였다.
심종의 별들이 하나둘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낯선 기운이 결계를 흔들었고, 침입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종의 바다는 숨을 죽였다.
공간은 찢기듯 열렸고, 주술칼 하나가 틈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첫 번째 술사의 주술칼이 기류를 찢으며 현옥에게 쇄도해갔다.
은월도가 날을 세우며 “챵—” 하고 부딪쳤다.
현옥의 정신체는 서늘한 눈빛을 머금고. 숨도 들이쉬지 않았다.
몸을 틀고, 광휘가 반원을 그렸다.
형체가 베인 술사의 염체는 쩍 하는 파열음을 내며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숨을 쉬지 않았다.
그 어떤 공기와도, 어떤 세계와도, 더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파바밧——”
좌우에서 두 기류가 피빛의 띠를 이루며 휘몰아쳤다.
현옥은 허리를 꺾어 은월도의 광휘를 퍼뜨리며 반격했다.
“콰아앙——”
공간은 울리며 갈라졌고, 기류술사들의 육화된 어둠은 그 틈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숨 돌릴 틈은 없었다.
셋이 동시에 다가왔다.
하늘, 대지, 정면. 붉은 주술의 살의가 시공을 찢고,
눈부신 광휘와 충돌했다.
빛은 파열되었고,
그녀의 검은 세 방향의 살의를 동시에 끊어냈다.
툭, 툭, 툭——
허공에 흩뿌려진 것은 핏방울이 아닌, 검은 살의의 잔해였다.
그 순간, 여섯명의 술사들은 전심전력의 주술을 펼쳤다.
자신들의 영혼을 주술신장들에게 던져주며
현옥을 향해 모든 공력을 쏟아부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이름도, 그 생도, 그 존재도 잊은 채. 광휘와 신장 주술이 충돌했다.
“쿠쿠쿠쿵——”
광휘가 터졌고 빛의 파편이 휘몰아쳤다.
현옥의 은월도가 터져나가며 화현한 신장들과 함께 폭사해 사라졌다.
현옥의 정신체도 크게 흔들리며 폭사된 흔적을 남겼다.
정신체의 그녀도, 육신의 그녀도 동시에 울컥 선혈을 토해냈다.
그 순간.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사각.
소리조차 없는 어둠속에서 조선 최고의 술사가 형체를 드러냈다.
그는 마치 미끼에 걸린 먹잇감을 마침내 손에 넣은 사냥꾼처럼 신궁을 당겼다.
검붉은 살이 그의 시위를 떠나 빛의 속도로 현옥을 덮쳤다.
현옥은 붓을 들어 휘두를 사이도 순식간에 심장이 관통되었다.
붓은 “툭…” 소리를 내며 그녀의 손을 빠져 나갔다.
무릎이 꺾였다.
등줄기가 구부러졌으며, 그녀의 눈꺼풀은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 어떤 비명도 없이, 파열이 시작되었다.
“투투둣——”
그녀의 정신체는 파편처럼 부서져 내렸다,
그녀의 삶은 파편이 되어 빛의 기억으로 흩어졌다.
심종의 바다는 그 빛을 머금은 채,
잠시 눈물처럼 일렁였다.
유달산 자락 비처.
현옥의 육신은 여전히 단정히 앉아 있었다.
담담하게 피빛을 머금은 입술...
눈은 감겨 있었고, 손엔 붓이 들려 있었다.
마치, 아직 끝나지 않은 예식의 마지막 자세처럼.
순간 미세한 진동이 터졌다.
방 안의 결계가 무너지며 파열하였다.
바람도 들지 않던 실내,
그녀의 심장에 깃들었던 박동이,
쿵-하는 마지막 울림을 끝으로 멈췄다.
잠시 후,
그녀가 든 붓이 힘없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툭...
그리고, 그녀의 눈가에 아주 작은,
이름 없는 빛방울 하나가 맺혔다.
마치 이 세상에 미처 다 건네지 못한 말 하나처럼...
이 세상의 끝에서 떠도는 기억의 이슬이었다.
그 눈물은 끝내 흘러내리지 못한 채,
그녀의 감긴 눈가에 머물렀다.
방 안은 무너지는 소리조차 없이 가라앉았다.
단 한 번의 울림도 없이.
그 이후 더 이상 심종의 바다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