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기생하는 법

이모가 날 키웠다

by 코기토

IMF 이후, 집안은 내려앉았다.

아빠는 일하지 않았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돌보며

“우린 괜찮아.”라고 중얼댔다.


어쩌면, 엄마는 오히려 기뻤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바깥세상 대신

오롯이 자기 곁에 머물게 되었으니.


아빠는 사업을 일으키겠다며

많은 돈을 빌렸고,

“언젠간 다 갚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 “언젠가”는, 끝내 오지 않았다.


두 번의 실패 후, 그들은 더는 일하지 않았다.

대신 외할머니와 이모에게 기생하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연금 일부를 떼어

내 학비를 대주었고,

이모는 사과 한 박스를 팔아

내 참고서를 사줬다.


등록금도, 교복도, 기숙사비도

엄마 대신 이모가 냈다.


나는 그 집에 얹혀사는 손녀였지만,

정작 딸처럼 대해준 건 이모였다.


엄마는 늘 아빠 옆에 있었고,

아빠는 늘 TV 앞에 있었다.

나는 유난히 바닥을 끄는 이모의 슬리퍼 소리를

세상에서 가장 안심되는 소리로 여겼다.


항상 밤이면 내 방 불을 켜주고,

내가 잘 자는지 살펴봐줬다.

엄마는 단 한 번도

“힘들었지?”

“괜찮아?”라고 묻지 않았다.


그 말을 처음 해준 사람도,

역시 이모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혼자서 오래 잘 버텼지만

이모가 우는 걸 보면

꼭 함께 울게 되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누군가’로 대해준 사람.

이모는 그렇게,

엄마 노릇까지 대신해주고 있었다.


아빠는 수험서를 사주는 이모에게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마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 옆에서

“그래도 우리가 부모인데.”라고 덧붙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이

분노였는지, 체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절대 저 사람들처럼 살지 않겠다.

그렇게 마음속에

처음으로 나만의 원칙 하나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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