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직이라 죄송합니다.

그래서, 서비스직이란 무엇일까

by 코기토


어릴 적부터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질리도록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질리도록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 반증의 실체가 아닐까?


살아보니, 직업에는 높고 낮음이 분명히 있었다.

슬프지만, 그렇다.


물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편협하고 좁은 시각이다.”

당신의 말이 맞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직업이 곧 너는 아니다.”

“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해도, 그게 너의 인생 실패는 아니다.”


그 말들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하루 24시간 중, 10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보낸다.

씻고, 자고, 먹는 시간을 빼면

내가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일하는 나’로 존재한다.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어떤 공간에 머물며, 무슨 일을 하는지가 사람의 말투, 인내심, 표정, 감정 반응을 만든다.

나는 동료와 가족보다 직장 사람들과 더 오래 시간을 보내고스스로를 돌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직업에 투자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것이 나다.

직업은 곧 내가 된다.

나에게는 그렇다.


나는 서비스직에서 대략 15년 정도 근무했다.

실제로 일한 시간의 총량을 따지면 더 오래되었지만,

햇수로 따지면 그렇다.


그런데 문득, 서비스직이 뭘까?

글을 쓰다가 너무 당연하게 써온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검색해봤다.


‘일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


그렇다면—대부분의 직업이 결국 서비스직 아닌가?

병원도, 학교도, 변호사도, 프리랜서도 결국 ‘누군가를 위한 무언가를 제공’한다.

그런데 왜 어떤 일은 당당하고,

어떤 일은 웃으며 “죄송합니다”를 반복해야 하는 걸까?


또 서비스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명확한 기준이란 것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할 수 있다기에 폄하 받고

불평할거면 그 직업이 안맞는거 아니냐고 쉽게 말을 듣는다.


이 시리즈는 그 이야기다.

내가 왜 웃고, 언제 화가 나며,

무슨 말에 가장 상처받는지.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왜 아직도 이 일을 계속하는지.


나처럼 하루를 사람들 사이에서 버텨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은 덜 외로운 문장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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