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세월을 이고 온 노모의 초상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 힘겹게 열린 문틈 사이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90도로 완벽히 굽어진 등이었다. 툭 튀어나온 척추뼈 마디마디는 그 자체로 고단했던 생의 이력을 웅변하듯 시선을 붙잡았다. 서 있는 것조차 위태로워 보이는 몸이었지만, 그 너머의 회색빛 머릿결과 맑은 눈빛은 꺾이지 않은 삶의 생명력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올해 아흔둘이 된 할머니는 척추 골절로 인해 허리가 기역 자로 굽어 있었다.
세월의 무게는 그녀의 몸을 켜켜이 짓눌렀고 이제 어르신의 물리적 반경은 침상 주위가 전부였다. 그러나 좁아진 공간과 대조적으로 할머니의 차림새는 더없이 화사했다. 머리에 쓰신 분홍빛 털모자와 정갈하게 입으신 빨간 조끼가 어찌나 귀엽고 고우신지, 굽은 등이 무색할 만큼 어르신은 생생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계셨다.
“아이 넷을 키우면서 어떻게 누워만 있나. 애를 업고 집안일을 쳐내다 보니 뼈가 무너지는 줄도 몰랐지.” 담담히 읊조리는 말씀 속에는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꺾어버린 청춘과 회한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 회한의 밑바닥에는 굽어버린 몸으로 끝내 자식들을 번듯하게 지켜냈다는 부모로서의 강인한 자부심이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어르신은 길에서 우연히 돈을 주웠던 작은 사건 하나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계셨다. 당시 남편은 “남의 것을 왜 줍느냐”며 엄하게 제지했지만, 할머니는 남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만 원짜리 세 장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며 승리의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그때는 그게 무슨 큰 횡재라도 한 것처럼 그리 좋더라고.” 그 수줍은 미소 속에는 가난했지만 서로를 보듬으며 가족의 생계를 현실적으로 지탱해 온 한 여성의 위대한 생존 방식이 담겨 있었다. 길가의 만 원짜리 세 장은 평생을 고생한 부부에게 신이 내린 소박한 상이 었을지도 모른다.
안방 벽에 걸린 국가유공자 남편의 사진을 가리키는 노모의 손끝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 원래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화장도 즐겨했던 할머니는 남편이 살아생전엔 마음껏 멋을 내지 못했다. 꾸미고 나가기라도 하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냐”며 핀잔을 주던 남편 때문이었다. 이제는 화장을 가로막는 이도 없건만, 할머니는 그 야속했던 핀잔조차 사무치게 그립다는 듯 쓸쓸한 미소를 지으셨다. 무심함 속에 숨어 있던 남편의 독점적인 애정은 이제 할머니의 삶 속에 깊은 그리움의 향기로 남아 있었다.
방문을 나서기 전, 고운 차림새가 너무 예뻐 사진을 한 장 찍어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머니의 태도가 금세 바뀌었다. 90도로 굽어 일상조차 버거웠던 허리를 당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로 힘껏 펴시며, 카메라 앞에서 소녀처럼 해사하게 웃으셨다. 사진 속 할머니는 더 이상 굽은 등의 노인이 아니었다. 고통스러운 육체를 이겨내고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당신으로 돌아가 있었다.
90도로 굽은 허리는 고단했던 삶의 기록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곧게 펴진 그 등은 어떤 풍랑에도 꺾이지 않고 가족이라는 돛을 올렸던 강인한 항해사의 긍지였다. 굽은 몸으로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는 노모의 초상은 우리에게 나직이 말을 건넨다. 삶은 비록 우리를 구부러뜨릴지언정, 그 안의 존엄과 사랑까지 꺾을 수는 없노라고. 셔터 소리와 함께 박제된 그 곧은 미소는, 그녀가 평생을 바쳐 지켜온 생의 가장 아름다운 훈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