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방, 그 좁은 무대 위 배우

by 진주

​해 질 녘, 좁은 거실 방으로 비스듬히 드리우는 햇살은 세상의 모든 미세한 먼지까지 드러낸다. 그 빛은 어르신의 작은 방 전체를 덮는 무대 조명이 되고, 방 안에 갇힌 시간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한다.

​어르신의 거실 방은 정리되지 않은 창고 같다. 바닥에 깔린 이불, 나뒹구는 음식과 그릇, 입다 벗어놓은 옷, 오래된 장롱까지, 모든 것이 제멋대로 자리 잡은 채, 시간의 무게와 삶의 흔적을 드러낸다. 벽에 붙은 낡은 벽지와, 그 아래 켜켜이 쌓인 오래된 물건들, 쓰임새를 잃은 기념품과 빛바랜 사진, 유행이 지난 모자들까지. 딸은 매번 숨 막힌다며 정리하자고 하지만, 어르신은 단 하나도 허락하지 않는다. 저 물건들은 어르신의 존재 증명서이자, 잃어버린 과거의 화려했던 순간을 붙잡고 있는 닻이다. 그것들을 치우는 순간, 어르신 자신마저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 같아 필사적으로 사수하는 듯하다.

​딸이 출근 전에 챙겨놓은 음식이 담긴 반찬통들은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어르신이 드신 후 그대로 놓아둔 빈 그릇이 얌전히 기다린다. 딸이 퇴근하면 비로소 움직일 풍경이다. 모녀의 삶은 이 좁은 공간에서 정해진 각본처럼 반복된다. 딸의 출근은 어머니의 하루치 생존을, 딸의 퇴근은 어머니의 하루치 흔적 정리를 의미한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어르신의 외출이다. 비록 마당 대신 방 안에서의 움직임이지만, 어르신은 매일 아침 새 옷과 몇 안 되는 액세서리로 자신을 꾸민다. 마치 조명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배우처럼. 겉보기엔 노쇠하고 지친 몸이지만,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는 손길은 여전히 섬세하다. 그 작은 거실 방은 어르신이 매일 오르는 삶의 무대다. 바깥세상에서 잃어버린 자존과 품위를, 이 좁은 방 안에서 옷가지와 물건들을 통해 힘겹게 복원하려는 처절한 몸짓처럼 보인다.

​딸이 어머니를 위해 침대를 들이려던 일 년간의 긴 다툼. "이것을 버려야 저것이 들어온다"는 딸의 합리적 논리 앞에서, "이것들을 버리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르신의 비합리적 생존 논리는 결국 승리했다. 딸의 지극한 효심이 어머니의 강고한 고독과 집착을 이기지 못한 풍경이다.

​오늘도 어르신은 기어서 화장실로 향한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느린 움직임 속에, 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인연의 끈에 매달린 노모의 모습이 묻어난다.

​창가 햇살은 그 모든 풍경을 좁은 거실 방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아들로 인한 크고 아픈 상처, 그리고 딸의 헌신으로 유지되는 고요하고도 위태로운 현재. 이 모녀의 삶에는 끊어낼 수 없는 진한 인연의 무게가 햇살만큼이나 무겁게 짓누른다. 침대 하나 들일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물건들로 가득 찬 좁은 거실 방. 그곳이 바로 한 어머니의 황혼(黃昏)이 깃든 풍경이다.

​나는 이 집의 문턱을 넘지 않고, 이 풍경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한 생애가 쌓아 올린, 혹은 무너뜨린 고유한 삶의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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