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깐이의 여름날

달 뫼 마을 삼총사의 오래된 약속

by 진주

비행기가 김해공항에 내렸다. Y와 E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부산-김해 경전선, 부산 사상역에서 경남 김해 가야대역까지 경량전철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낙동강이 펼쳐진다. 태백 황지에서 시작된 물줄기처럼, 돌부리에 부딪히며 길을 찾아 흘러온 우리의 시간도 그 강물 같았다. 그 시간의 시작점은 달 뫼였다.

달 뫼에 부는 바람. Y와 E, 그리고 나는 ‘달 뫼 마을 삼총사’였다. 달이 뜨는 덕림산 자락, 우리 동네 이름은 월산동이었다. 겨울에도 얼지 않던 옹달샘. 단풍나무들이 빙 둘러선 작은 연못, 연못 가운데엔 조그만 흙섬, 흙섬엔 개미 가족이 살았다. 봄이면 치맛자락이 바람을 타고 펄럭였다. 양말은 벗어던지고 들풀을 담요 삼아 맨발로 쑥을 캐러 다녔다. “구름 잡자!” 하늘을 향해 뛰어다니던 덕림산 언덕. 햇살은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고, 바람은 웃음소리를 등에 업고 지나갔다. 우리는 흙길 위에 꿈을 실었다. “나는 선생님이 될 거야.” “나는 간호사가 될래.” “나는 수녀님이 되고 싶어.” 그리고 꼭꼭 약속했다. “만약 셋 중 누가 같은 사람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은 셋 다 포기하자!” 세상에 우리만 있는 듯 진지했다. 그 어린 맹세는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장맛비와 포옹 – 깜보 E. 고등학교 2학년, 장맛비가 하늘을 찢듯 퍼붓던 날이었다. 우리는 매일 40분씩 걸어 함께 등교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E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계를 보는 손목이 점점 바빠졌다. “지각하겠다.”는 생각에 먼저 길을 나섰다. 학교 운동장 끝에서 시작된 축대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둥글게 돌아 150미터가량 이어졌다. 좁은 도로와 맞닿는 구간, 왕복 2차선, 인도는 거의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차와 학생들로 엉켜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우산도 필요 없었다. 옷자락은 젖고, 신발은 흙물로 질퍽거렸다.

겨우 도착해 가방을 놓고, 우산을 꽂으려던 순간—“진주야! 진주 왔어?”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 뒤돌아보았다. 생쥐처럼 달라붙은 젖은 머리카락. 흰 블라우스는 젖어 몸에 착 달라붙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숨은 들쑥날쑥했다. E가 서 있었다. “살았구나.” 그 말과 함께 나를 와락 안았다. 그제야 들은 이야기. 축대가 무너졌단다. 학생 둘이 깔렸단다. E는 나를 찾으러 온 거였다. 폭우를 뚫고, 숨 가쁘게, 달려온 거였다. 그날의 포옹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걸 말해주었다. 진짜 친구는, 가장 먼저 걱정하는 사람,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 E는 내 깜보였다. ‘깜보’란, 가장 가까운 짝꿍 같은 존재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 걱정이 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그날의 체온이 떠오른다. 우산보다 따뜻했던 그 팔, 그 날숨. 그날 이후, E는 내 삶의 가장 단단한 우산이 되었다.

영원한 깜보.png

스물일곱의 기도 – 깜보 Y. 스물일곱, 무언가를 결정하기엔 이르고, 무언가를 놓치기엔 찬란한 나이. “나,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해.” Y는 담담히 말했다. 나는 웃었다. “기도해 줄게.” 입꼬리는 올렸지만, 눈물은 곧 터질 것 같았다. 말로는 담담했지만, 가슴 안쪽은 저렸다. 무엇이 슬펐을까.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우리의 시간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 Y는 나의 또 다른 깜보였다. 깜보, 그 말은 꼭 어린 장난 같은 단어만은 아니다. 비를 뚫고 달려오는 친구가 있다면, 이별 앞에 조용히 기도해 주는 친구도 있다.

Y는 그런 친구였다. 곁에서 말없이 마음을 읽는 사람. 슬픔을 함께 견디는 사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성당에 가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다. Y는 신부님을 모시고 오셨다. 오래 엇갈렸던 가족 간의 마음을 풀듯, 아버지는 영세를 받으셨다. 그 순간, 나는 옆에서 조용히 숨을 삼켰고 Y는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다. 그 침묵, 그 기도, 그 시간. 지금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울린다. “미용 배운 게 수녀님들께 쓰일 줄 몰랐지?” Y는 그렇게 웃었다. 방글라데시 파견을 준비하며 영어를 배우고, 대학원도 다닌다. 그녀는 ‘세상을 위해 사는 삶’을 택했고, 나는 그 선택 앞에서 울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자랑스러워한다. 그녀가 내 친구라는 것, 그녀가 깜보라는 것. 이젠 세상의 깜보가 되어 기도하고, 돌보고, 살아간다. 나는 그저, 그녀의 걸음을 지켜보며 마음 깊이 기도할 뿐이다. 그 길이 멀지라도 외롭지 않기를, 그 삶이 고되더라도 의미로 가득하기를.


한 몸, 세 마음. 열 살 즈음부터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들이 시간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Y는 수녀가 되어 만인의 친구가 되었고, E는 정년을 앞두고도 아이들과 웃음을 나누는 교사로 살아간다. 나는 아버지의 바람처럼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자세로 34년 교사로 일한 뒤 간호사로 다시 걷고 있다. 나이는 들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걱정하고, 안부를 묻고, 마음의 비가 내릴 때면 가장 먼저 우산을 펴는 사람들이다. 삶의 고비마다 그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주는, 진짜 친구들. 깜보라는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달 뫼는 기억 속에서 여전히 빛난다. 지금도 골목길 어귀에 서면, 쑥 캐던 봄날, 장맛비 속 그 포옹, 수녀가 되겠다던 Y의 눈빛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깜보로 살아간다. 언제든 부르면 달려올, 영원한 깜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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