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수박이 터지던 날

고3 여학생들의 일탈 일기

by 진주

달뫼마을의 5월은 이미 여름이었다. 7월이면, 마치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지글지글 얹힌 기분이었다. 더위보다도 벗어나고픈 마음이 먼저 끓어오른다. 게다가 3학년 교실은 전쟁터였다. 매미는 미친 듯 울고, 선풍기는 헐떡이며 돌고, 우리 반 52명은 땀을 뻘뻘 흘리며 책상에 볼펜을 찍었다.

영어 선생님의 “윙윙윙~” 하는 목소리는 여느 날처럼 모기 소리처럼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때, 복도에서 전해진 한 마디가 파문처럼 번졌다.

“야, 보충수업 폐지됐대!”

“우리도 드디어 해방이래!”

자율화 바람이 우리 학교까지 도착한 순간이었다. 두발 자유화에 이어 보충수업까지 사라진다니, 반은 들떴지만 반은 불안했다. 우리는 그 시절을 ‘숨 막히는 자율화’라 불렀다.

그날 오후, 우리는 결심했다.

“우리, 일탈하자. 당당하게!”

동네 깨복쟁이 친구 7명. 우리 마을 뒷산은 달님처럼 둥근 덕림산, 그 아래가 달뫼마을이다. 겨우 한 명이 지나갈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 친구들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해가 뉘엿 넘어갈 때까지 우리는 골목에서 고무줄놀이, 오자미 던지기를 하며 놀았다.

사춘기가 시작되자 골목은 좁아지고, 우리 아지트는 친구 집 뒷방으로 옮겨졌다. 창밖으론 펌프와 장독대, 빨랫줄이 보였다. 좁지만 자유로운 그 공간에서, 우리는 명작과 명화를 접했고, 팝송이 감수성을 깨웠다. 크리스마스이브엔 종교 이야기를 하다 “우리 우정에 금 가겠다”며 웃으며 멈췄다. 경음악 속 수학 문제를 풀다 슬쩍 만화책으로 머리를 식히기도 했다. 그 뒷방은, 어른이 되기 직전, 우리 일곱 공주가 세상과 손잡던 작은 궁궐이었다. 우리는 “세상 좀 아는 언니들”이 되어갔다.

‘달뫼마을 7 공주’

누가 붙여 준 것도 아닌데, 우리끼리 그렇게 불렀다.

일탈의 날, 7월 31일. 머리를 짧게 자르고 청바지에 반소매 티, 굽 있는 샌들을 신은 우리는 스스로를 감탄하며 무궁화호에 올랐다. 열차 안에서 수다는 끊이지 않았다. 교회 오빠, 영어 선생님, 도시락 반찬까지… 창밖으로 산과 들판이 휙휙 지나갔다. 그 속도로 불안도 멀어지는 듯했다.

능주역에 내려 황톳길을 걸어 영벽정에 도착했다. 도시락을 풀자 수박이 등장했다.

“칼로 자르지 말고, 손으로 깨자!”

“간다!”

푸슉—! 수박이 시원한 폭탄처럼 갈라졌다. 빨간 속살이 드러나자 비명과 폭소가 동시에 터졌다. 손끝마다 수박물이 뚝뚝 흘렀고, 파리까지 덩달아 몰려왔다. 그날 우리는 수박처럼 통쾌하게, 달콤하게 터졌다. 누군가는 씨를 뱉다 웃고, 누군가는 껍질을 부채 삼아 ‘벌레 나가!’를 외쳤다. 시냇가 버드나무 아래 기댄 채 “우리도 곧 어른이네?”라며 웃었다.

한 명이 일어서자, 줄줄이 일어나 기찻길 옆에 섰다. 쥐똥나무 뒤에서 얼굴만 보이게 줄 맞춰 찍은 사진은 지금도 내 책상 위에 있다.

그날 이후 40년. 여름방학이면 우리는 다시 모인다. 서울, 인천, 광주, 부산, 제주에서 마음을 싣고 온다. 메뉴는 달라져도 그 수박 같은 웃음은 여전하다. 사진 속 얼굴들은 내 인생의 여름을 지키고 있다.

계절이 몇 번을 돌아도 그날의 열기와 웃음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우정도, 인생도, 그날의 일탈도 이제는 익숙한 일상처럼 우리 곁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 시절의 웃음은 ‘환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어났다. 여름이면 우리는 다시, 달뫼마을의 꿈 많은 소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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