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 나는 꽃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한 마당에 피어난 두 개의 기억

by 진주

베란다 창문을 여는 순간, 바람결에 스며든 짙은 제라늄 향이 코끝을 스친다. 그 향은 오래된 기억의 문을 두드린다.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마당 화단이 펼쳐진다.

마당 햇빛 잘 드는 곳에 화분을 올려놓은 화단엔 제라늄 꽃으로 가득 채웠고, 바람이 불면 작은 마당은 은은한 향기로 환해졌다. 엄마는 시든 잎을 떼어내고 화분을 햇빛 따라 옮기셨다. 꽃잎에 물 한 방울이라도 묻을까 조심스레 물을 주던 손길은 늘 섬세했다.

 엄마는 새벽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일하셨다. 내 기억 속 그분은 언제나 부지런했다. 잠을 빼고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던 순간은 제라늄 앞에 앉아 있을 때였다. 그 꽃은 작은 안식이었다. 고단한 하루를 조용히 감싸 안는 위로였다. 엄마는 꽃을 기른다기보다 대화를 나누듯 돌보셨고, 그 모습은 내게 가장 평화로운 장면으로 남아 있다. 계절이 바뀌어도 화분마다 분홍, 주홍, 진홍의 얼굴들이 웃고 있었다.

 나는 그 곁에서 제라늄을 바라보곤 했다. 화려한 꽃보다 투박한 잎과 낯설고 진한 향이 먼저 다가왔다. 어린 나는 그 향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것은 집 안을 지켜주는 깊은 숨결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놀랐다. 내가 제라늄을 기억하는 동안, 엄마는 선인장을 먼저 떠올리고 계셨던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이 서서 한여름이면 노란 꽃을 피우던 선인장.

 “그게 참 인상 깊었지.”
 “너는 내가 좋아하는 꽃이 제라늄이라고 기억하는구나.”

 엄마와 나의 기억은 이렇게 서로 다른 얼굴로 피어 있었다.

나는 제라늄을 떠올렸지만, 엄마는 선인장을 먼저 기억하고 계셨다. 제라늄의 향기와 빛깔, 두터운 잎들은 따뜻한 손길과 잘 어울렸으나 강인한 삶과는 쉽게 겹쳐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스스로를 가장 닮은 선인장을 마음속에 품고 계셨다. 물 한 방울 없이도 버티며, 가시 속에서 해마다 꽃을 피워내는 선인장. 그 강인함 속에 숨어 있던 부드러움, 바로 그 두 얼굴이 엄마였음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 진한 향도, 투박한 잎도 더는 낯설지 않다. 햇빛과 바람이 스치던 그 자리에서, 나는 제라늄과 선인장을 통해 삶을 배운다. 부드러움과 강인함, 그 두 얼굴이 결국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얼굴 속에서, 나는 늘 엄마를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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