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x 출근길

by 시옷

<말랑말랑 매거진>은 골치 아픈 일 말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야. 한 번 들어볼래?



오늘은 출근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


나는 또래들보다 취업을 늦게 해서 사실 출근길을 고대했었어.

동네에서 회사 사무실 같이 생긴 건물만 봐도 아, 출근하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하며 누군지도 모를 그들을 부러워했지.


드디어 취업을 하고 첫 출근을 앞둔 전날. 아직도 생각나네.

첫날부터 지각이라도 하지 않을까, 모르는 동네에 첫발을 내디딘 나는 전날에 사무실까지 출근길을 알아두려고 지도를 보고 열심히 찾아갔었어.


찐 첫 출근길은 생각이 나지도 않을 정도로 두근두근 했나 봐. 설레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했던.

그때는 빨리 이 두근거리는 마음이 없어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

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알았지. 두근거리는 마음이 있던 때가 좋았다는 걸 :)


나는 '출근이란 자고로 상사보다 일찍 해야 한다'는 가정교육을 받은 터라 정시 출근시간보다 한참 일찍 출근했는데, 출근하자마자 책상정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출근하는 사람들한테 인사도 하고 그랬지.


그런데 아이를 낳고, 어린이집을 보내고 출근을 해야 하다 보니 9시 되기 직전에 도착하 되었어.

아이가 어린이집에 일찍 가면 혼자 뿐이고 거기 있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기니까 최대한 늦게 보내고 싶은 거지.

어떻게 보면 월급은 똑같이 받는데 회사에 있는 시간은 적으니 효율적인 출근길이다, 싶을 수도 있지만 돌이켜 보니 그게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어.

누구 눈치 보느라 빨리 출근하는 시간은 진짜 불필요지만,

내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없이 출근하자마자 일, 일 끝나자마자 퇴근, 이렇게 사니 내가 말라가더라고.

물론 나만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오로지 나 혼자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은 중요한 거더라.

물론 업무 중간에든 집에서든 못 하라는 법은 없지만, 그때는 시시때때로 나를 찾는 이들이 많으니 '오로지 나 혼자'가 잘 안 되더라고. 나에겐 업무시작 전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었어.


휴직을 하고 복직을 하니 사정상 긴 시간을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사무실 도착시간도 좀 이른데. 아주 쾌적해. 짧은 시간 동안 9시까지 출근할 때보다 더 쾌적해. 물론 한 시간 정도 덜 자 되지만.

왜인가 하니 일단 대중교통 출발시간은 딱 정해져 있으니까 출근을 못 미뤄. 자차로 출근할 땐 9시 간당간당할 때까지 미뤘다가 출근하곤 했는데 이제 그렇게 못 해.

대중교통도 내 자리가 확보되는 곳이다 보니까 긴 호흡으로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음악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 놀러 가는 기분이야.

그리고 도착시간이 좀 일러서, 날씨가 좋을 땐 동네를 산책하다가 들어가기도 하고, 춥거나 더울 땐 사무실에 일찍 가서 이것저것 나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서 좋아.

업무시간 전엔 전화도 안 울리고, 상사도 날 안 불러.

경험해 보니 좋더라고, 매일매일 느끼는 여유가.


그렇지만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잖아. 그래서 팀원들한테는 9시보다 빨리오라고 하지 않아. 학교종처럼 9시에 벨이 울리는 거도 아니고, 나 혼자 뭐 하다 보면 9시가 지났는지, 누가 언제 왔는지 인식도 잘 안 돼.

9시가 됐을 때 자리에 있으면 잘 왔나 보다 하지.

그리고 나도 9시 땡 출근 할 수밖에 없던 기간이 있었고, 이젠 개인적인 상황이 좀 달라져서 일찍 가는 것 뿐이고. 사실 출근시간 보다 중요한 게 업무를 대하는 태도인 건 우리도 알잖아.

그리고 전엔 구 눈치 보느라 일찍 출근한 거고, 지금은 내 필요로 일찍 출근하는 거니까 의미가 많이 다르지.


물론 출근길이 아무리 쾌적해졌다 한들, 퇴근길이 조금 더 좋은 건 회사원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


넌 회사랑 집이 가까워서 걸어 다닐 수 있니?

아님 긴 시간 운전하며 출근해야 하니?

오늘은 평소 출근하던 루트가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출근하면서 한껏 말랑해져 보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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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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