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x 산책

by 시옷

<말랑말랑 매거진>은 골치 아픈 일 말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야. 한 번 들어볼래?



오늘은 산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


나는 운동에는 관심이나 흥미가 부족한 편인데, 딱 하나 걷기는 참 좋아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운동 같은 느낌으로 해보려고 운동장을 걷거나, 러닝머신 위를 걸어본 적이 있는데 그것들은 쉽게 지루해지더라.

그래서 운동이라는 생각 없이 동네를 걸어봤는데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신호등에서 쉬기도 하고, 동네 산책이라고 생각하니 여기저기 구경하는 게 꽤 재밌더라고.

그 후로 동네 산책은 틈 날 때마다 하는 좋은 취미가 되었어.


새로운 가게가 생겼네, 화단에 꽃을 새로 심었네, 간판 디자인이 바뀌었네,

구석구석 틀린그림찾기를 하다 보면 우리 동네를 더욱 유심히 보게 돼.

이런 예쁜 공간이 있었다니, 저런 편리함도 있었구나, 하며 우리 동네를 더 사랑하게 되기도 하지.


본격 산책 모드일 땐 당연히 운동화가 제일 편하지만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책할 땐 구두도 좋고, 슬리퍼도 좋아.

시간이 넉넉할 땐 두세 시간도 걷지만

며칠분을 몰아서 걷는 것보다는 매일 일이십 분이라도 걷는 게 확실히 좋더라고.

요즘 나 좀 짜증이 늘었나 싶을 땐 산책을 몇 번 패스했을 때였고,

아무리 피곤해도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면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기도 했어.


지난 주말엔 바닷가 근처로 가족여행을 갔었는데, 가족들이 다 잠든 이른 아침에 혼자 바닷가 산책을 해봤어.

공기도 상쾌하고, 풍경도 아름답고,

낯선 곳을 산책하는 시간만큼은 확실히 일상과 구분된 느낌이 들어서 새롭더라.


신랑이랑 결혼 전에 데이트할 때는 수변공원 같은 곳에서 산책을 꽤 했거든?

그런데 알고 보니 다리가 아파서 오래 못 걷는 사람이었더라고.

데이트한다고 나름 참고 맞춰준 거였어 :)

요즘은 나 홀로 걷기를 즐겨하기 때문에 오히려 잘된 거라 생각해.

나에게 산책은 여럿이 수다 떨며 하는 것보다는 혼자서 하는 게 진품이고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되라구.


난 혼자 산책을 하면서 때에 따라 오디오북이나 유튜브 영상을 듣기도 하고 그냥 멍 때리며 걷기도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걸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복잡한 머릿속이 정연하게 정리된 경험이 있어.

이거다, 싶어서 길 가다 멈춰서 잊기 전에 메모한 적도 있고.

그래서 가끔 감정이 혼란스럽게 휘몰아칠 때 일부러 하염없이 걷기도 해.

산책은 거의 대답을 줘.


예전에 아이를 낳고 나서 신생아 시절에 집에만 갇혀 있다가,

드디어 아기띠를 하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더운 계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에 안 가본 골목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산책했어.

아기가 귀엽다고 말 거는 주민들의 다정함부터, 오래된 골목을 탐험하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지.

지금은 더 이상 그 동네에 살지 않지만 가끔씩 그쪽으로 가면 일부러 골목길을 찾아가곤 해.

이젠 훌쩍 커버린 아이와 단둘이 나눴던 따뜻한 기억이 몽글몽글 살아나서 그리운 마음이 들어.


넌 바람이 따뜻한 봄날, 날리는 꽃잎 아래서 산책해 본 적이 있니?

혹시 좋아하는 사람과 팔짱 끼고 산책하는 걸 좋아해?


오늘은 낯선 거리를 산책하면서 한껏 말랑해져 보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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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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