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매거진>은 골치 아픈 일 말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야. 한 번 들어볼래?
오늘은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려면 거울을 봐야 하잖아. 그런데 거울을 볼 땐 의도적으로 예쁜 표정을 짓고 예쁜 각도로 비친 나를 본대.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실제보다 자기 자신을 더 예쁘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친구가 몇 걸음 떨어져서 우연히 찍은 내 사진에는 나라고 생각지 못한, 나를 닮았으나 훨씬 못생긴 누군가가 찍혀있는 거지.
그래서 셀카모드로 설정하고 내 표정을 확인하며 찍어야 겨우 조금 마음에 들고, 필터 카메라로 얼굴을 좀 화사하게 해 줘야 백열등 아래에서 거울로 보던 나와 좀 비슷해 보여. 하지만 사실은 나도 알걸. 그런 애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하.
주민등록증에 넣는, 나를 나라고 인증하는 사진조차, 전문가가 한껏 갸름하고 또렷하고 환하게 만들어주는 마당에
셀카 정도야 내 기분 좋을 용으로 다소 나와 달라도 저 예쁜 애가 나구나, 하며 만족해하는 게 뭐가 그리 나쁜가 싶지만.
사실 나쁜 게 아니라 부끄러운 거더라.
휴대폰 기본 카메라가 너무 적나라해서 필터 카메라를 써서 사진을 찍었어. 여러 장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골라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하니, 혹시 내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실물이랑 많이 다르네,라고 할까 봐 부끄러운 거야. 나도 가끔 사진으로 보고 얘 못 본 새 예뻐졌네,라고 생각하다가 실제로 만나고서 아니네,라고 생각한 적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기본 카메라로도 만족스러운 뒷모습 사진으로 프로필을 바꾸곤 했어.
그런데 거기서 조금 더 나이를 먹으니까, 남들이 뭐라 하든 뭔 상관이야, 하면서 앞모습이든 옆모습이든 뒷모습이든 기본 카메라든 필터 카메라든 신경 안 쓰고 마구 올리게 되었어. 다른 사람들이 내 프로필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걸 이젠 알기 때문이지. 사실 한 번 보고 슥 지나갈 뿐이잖아. 내 프사에 진심으로 관심 있는 오직 한 사람, 나,를 위해 내가 봐서 기분 좋을 사진들을 올릴려고 해.
나는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생기던 시기를 신나게 즐긴 터라, 놀러 갈 때나 평소 때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게 그렇게까지 어색하진 않는데,
요즘 아이들은 모델이 따로 없더라.
어린이집에서부터 알림장에 넣을 사진을 '찍히는' 일에 하도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여기 서봐, 하면 바로 포즈를 잡더라고. 귀여워라.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좀 덜 하긴 한데, 그래도 가끔 담임 선생님이 사진을 찍어주시거든. 반 아이들 모두 멋진 모델들이야.
휴대폰에 탑재된 카메라 기능이 발전해서 참 좋은 점은 언제든지 기억하고 싶은 찰나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야.
산길을 걸으며 상쾌한 기분이 들 때, 찰칵,
해가 지며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에 마음을 빼앗겼을 때도, 찰칵,
잔디밭에서 공을 던지고 주우며 깔깔거릴 때도, 찰칵,
순간을 저장하면 다시 볼 때마다 언제든 그때의 그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더라고.
여행지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그 당시를 즐기지 못한다면 그것도 안 됐지만,
특별한 기분이 들 때 잽싸게 휴대폰을 꺼내들 수 있다면 나만의 일기장 같은 기분으로 사진첩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아.
나는 카카오톡 외에는 별다른 SNS를 안 하기 때문에 찍은 사진은 오롯이 내 사진첩에 보관하는데,
기분에 따라 휴대폰 배경화면을 자주 바꿔. 내가 가장 많이 보는 곳이니까.
주위에서 누가 결혼한다 그러면 배경화면을 신혼여행 사진으로 바꾸고,
기분이 처진다 싶으면 바닷가에 놀러 간 사진으로,
요즘 좀 게으르다 싶으면 온 가족이 함께 김장하는 사진으로 바꿔.
그럼 예전의 좋은 기억들을 꺼내서 지금의 나를 또 기분 좋게 만들 수 있거든.
많은 경험들을 일회용이 아닌 재활용 할 수 있는 건 고마운 사진 기술 덕분인 듯 해.
지금의 내 휴대폰 배경화면은 캠핑장 사진이야. 당분간 캠핑하는 기분을 느끼며 살려고.
넌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편이야?
혹시 사진첩에 동물 사진이 가득 있어?
오늘은 파란 하늘에 뜬 하얀 구름 사진을 찍으며 한껏 말랑해져 보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