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매거진>은 골치 아픈 일 말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야. 한 번 들어볼래?
오늘은 다이어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
난 다이어리라고 하면 일기를 쓰는 것보다는 일정표를 관리하거나 있었던 일을 짤막히 기록하며 스티커도 붙이고 영화표도 붙이고, 뭐 이런 게 먼저 떠오르는데
여학생이었다면 한 번쯤은 해보았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때문이겠지.
나도 새해 초에는 다꾸에 한창 열을 올리다가 몇 달이 지나면 흐지부지 되어 서랍 깊은 곳에 넣어놓고서는,
한참 뒤에 여기저기 뒤지다가 앞은 화려하고 뒤는 깨끗한 다이어리를 발견하곤 했어.
이제와 생각하면 P 성향인 나는 다이어리를 플래너로 쓰기보다는 그냥 추억 기록용으로 쓰는 게 적절했는데,
그 당시 잡지에서 '똑똑한 플래너 쓰는 방법' 요런 기사를 보고서 또 신나게 따라 하다가 금세 흥미를 잃곤 했지.
그 후 네이버 블로그가 등장했는데 지금처럼 홍보를 위한 가짜 광장이 아닌 찐 블로거들이 모인 리얼 광장이었던 시절이 있었거든.
그때는 블로거별로 특징이 잘 나타나는 일기류의 수필이 인기가 있었어.
나 또한 빠질 수 없어서 일상, 영화, 독서, 여행, 음악 등의 카테고리로 블로그 꾸미기에 돌입했지.
결과는?
다꾸랑 비슷. 한때 열정적으로 썼지만 나를 공개된 곳에 기록한다는 걸 크게 고민하지 않고 시작한 거라.
불특정 다수도 보지만 내 지인도 보는 공간에서 나를 어디까지 드러내야 할지 헷갈리더라고.
기분에 따라 전체공개 했다가, 친구공개로 바꿨다가, 비공개로 감췄다가 하다 보니
그것마저도 피곤해서 찰나의 내 청춘이 작게 담긴 그곳은 현재 모두 비공개중이야. 하하.
그러다가,
최근 들어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다꾸, 불특정 다수에게 뽐내기 위한 블꾸말고
내 속마음을 진실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작은 Peko 수첩을 붙잡고 떠오르는 대로 마구 쓰기 시작했어.
수첩 하나를 채우고 보니 어느새 나 자신이 바뀌어 있는 거야.
아팠던 마음이 치유되었고, 강해졌고, 꾸미지 않은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챌 수 있었어.
무려 40대가 되고서야 말이야.
너무 늦은 거 아닐까? 난 이렇게 긴 인생을 낭비한 걸까? 싶었지만
어쩌면 평생 이걸 알지도 못하고 죽었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
내가 나를 속이는 줄 조차도 몰라서, 그냥 그렇게 계속 살 수도 있었는데
작은 Peko 수첩 덕분에 지금에서라도 알게 되었으니 늦은 게 아니라 오히려 행운인거지.
지금도 계속 일기를 쓰면서 어렵게 찾은 나 자신을 잊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
토해내는 느낌은 그때 다 해서 지금은 톤 다운되었긴 하지만
여튼 일기는 꾸준히 쓰는 게 핵심이더라고.
뭘 쓰든 간에 일단 '쓴다'는게 그 효과를 발휘하게 하더라고.
아무리 대단한 문장도 한 달에 한번 쓰면 나에게 울림을 주지 못하고,
별거 아니라도 매일 쓰면 내 마음이 가벼워져.
초등학교 때 일기를 왜 매일 쓰라고 했는지 그 의미를 40대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네. :)
넌 인스타나 X로 인생의 기록을 남기고 있니?
아님 과거는 추억으로 남기고 현재에 충실한 편이니?
오늘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진실이 가득 찬 일기를 쓰고서 쫙쫙 찢으며 한껏 말랑해져 보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