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 하울 Mar 02. 2023

껌씹으며 계단을 내려오지 못하는 여자.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친구.

그녀에게 정가를 주고 물건을 산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디를 가도 깎아 달라는 말이 버릇처럼 입에 붙었다. 절대로 깎아줄 수 없다는 곳에서도 악착같이 붙어서 천원이라도 깎아야 돌아서 나왔다. 징징대기도 하고 가진 돈이 없다고 하소연 하기도 한다. 덕분에 내 물건값도 깎고 나오지만 가끔 낯 부끄러울 때가 있다. 물건값을 깎을 수 없으면 뭐라도 덤으로 받아야 직성이 풀렸다.


언제는 백화점에서 아들 바지 두 장을 샀었다. 계산을 하려는데 그녀는 카드를 손에 쥐고 애잔한 눈으로 판매원을 바라봤다.

"깍아주이소"

직원은 이미 세일이 된 상품이라 더이상 할인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럼 양말이라도 하나 끼아주이소" 하며 버티고 섰다.  아, 부끄럽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직원이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물티슈 2개를 건낸다.

"고객님, 그럼 이거라도 드릴까요?" 그제야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쇼핑백을 건내받고 나섰다.


지난주엔 아들의 과외 선생님을 구했다고 했다.  차분하고 실력도 있어보인다며 만족해했다. 나는 잘됐다며 과외비는 얼마냐고 물었다.

"얼마 부르길래 5만원 깍아 주이소 했지"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깎았냐고 했더니, '우리 사는 꼴을 봐라. 이 아파트 단지에 우리 집이 평수가 젤 작다. 선생님이 과외비 깎아주면 아들 열심히 하라고 더 다그치겠노라'. 그랬더니 어린 선생님이 두리번 훑어보며 깎아줬다나? 헐, 과외비까지 후려쳤다는 소리에 기가 막혔지만 그것도 특화된 재능이려니 웃어넘겼다.


무조건 '깎아주이소'가 입에 붙은 그녀가 어제는 쇼파를 바꿔야겠다며 함께 가서 고르자고 했다. 가구몰을 한참을 뱅뱅 돌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쇼파를 발견했다. 그리고 흥정이 시작되었다.

"깎아주이소"

턱없는 가격을 제시하며 무조건 깎아달라는 그녀에게 가구점 사장님은 일단 안된다는 말로 선을 긋고 현재 자신의 경제 상황이 얼마나 안좋은지,  얼마나 할인이 많이된 상품인지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그런 소릴랑은 귓등으로도 안듣는 그녀또한 자신의 경제 사정이 얼마나 안좋은지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쇼파를 사이에 두고 닟짝 두꺼운 선수 둘이 마주앉아 서로 죽겠다며 한탄을 하는 꼴이 우스웠다. 한참을 지리한 공방이 계속되다 결국 접점을 찾았는지 천천 일어섰다. 현금을 주는 조건으로 조금 더 할인 받는걸로 끝냈단다. 대단하다.대단해.


잔금을 치르기 위해 ATM기계를 찾아 들어갔다. 계좌번호를 꾹꾹 누르는 그녀에게 쇼파는 맘에 드냐고 물었더니 맘에 쏙 든다며 좋아한다. 그러더니 내가 말을 걸어서 헷갈린다며 손가락이 공중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혀를 차며 문밖으로 나와 잠시 서성거렸을때 갑자기 ATM 유리문이 확 열리며 그녀가 소리쳤다.

"클났다 !!! "

"왜, 왜 뭔데?" 깜짝 놀라 물었다.

" 클났다. 130만원 보내야 되는데 정신이 없어가 130원 보냈뿟다.  수수료가 750원이나 나갔네."

미친 지지배.


수수료 750원을 날린 그녀는 운전하는 내내 투덜거렸다. 세상에 이런 모지리가 어딨노. 띨띨하게 750원을 날리다니. 한참을 자기 비하에 빠졌던 그녀가 뜬금없이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다. 날라간 750원 생각에 빠져 집 가는 방향을 잃고 엉뚱한 거리에서 헤메고 있었다.


에이구 인간아~ 깎는건 국가대표처럼 그렇게도 잘하면서 어쩜 그렇게 멀티가 안되냐!  껌 씹으며 계단 내려오는게 그렇게 어렵디?

한 번에 두가지 일은 절대 못하는 웬수 같은  친구야  정신똑바로 차리고 살자꾸나!!! 

작가의 이전글 나쁜 놈, 이상한 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