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은 공간을 나눈다.
나눈다는 것은 분리하는 것이고 보호하는 것이며 독립하는 것이다.
담은 그 높낮이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높이 솟은 담은 금 지고 소유며 단절이다. 고층건물, 고급주택을 둘러싼 담은 견고하고 분명해서 위협적이다.
수학에서 도형의 높이는 공식에 대입하여 정확한 값을 구하지만 나는 사물의 높이를 심리적 위압감으로 계산한다. 도시의 하늘을 수직으로 뚫고 나가는 마천루를 올려보거나 화려한 샹들리에가 높이 걸린 웅장한 건물의 천장 아래 섰을 때 느껴지는 소심함이 그 건물의 값이다. 높은 담장을 바라볼 때 그런 소심함과 거리감이 생기면서 금지의 영역을 새삼 가늠하게 된다.
반면, 낮은 것은 소박하고 다정하다.
낮은 대문, 낮은 지붕, 그것을 둘러싼 낮은 담은 경계를 풀고 정답다.
나의 시골 마을은 모두 고만고만한 형편에 고만고만하게 낮은 지붕 아래 살면서 낮은 담을 두르고 살았다. 이웃과 마주한 담은 이어져서 골목을 만들고 골목은 작은 이야기와 전설을 만들었다. 마을의 담은 대부분 낮고 허술했는데 어쩌다 금복주 병이나 초록색 칠성 사이다 병이 뾰족이 깨져서 담 위로 올라가 앉았다. 질서 없이 올라온 파편들이 말없이 허공을 노려보아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 건 낮게 주저앉은 담의 생김새 때문이었을 것이다. 깨어진 유리조각을 무기처럼 들고 있던 담벼락이 제 역할을 잘하였는지 문득 궁금하다.
담은 이야기를 담아서 기억한다.
'영이랑 철수는 얼레리 꼴레리래요' 어린것들의 시기 어린 마음이 한 귀퉁이에 부끄럽게 끄적대 있고 어제 싸운 친구의 이름 옆에 병신, 호박, 똥꼬처럼 총천연색 욕이 삐뚜루 적혀있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회색의 시멘트벽은 늘 낙서 금지와 소변금지를 이름표처럼 달고 살았다. 낙서금지는 금지가 아닌 허락을 부르고 소변금지는 달이 없는 어느 밤에 몰래 누군가의 화장실이 되고 마는 아이러니한 일상을 반복하며 담장은 모든 이야기를 담아서 기억하는 것이다.
낮은 담은 생명을 품는다. 오래된 담벼락의 가슴엔 보드란 청태가 뿌리를 내리고 발 밑엔 땅을 짚고 일어선 한 뼘의 들풀이 오종종 히 늘어섰다. 햇볕이 쏟아지면 온기를 담아 간직했다가 가슴에 품은 모든 것들에게 아낌없이 건넨다. 그리고 기를 쓰고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던 호박넝쿨과 동네의 심심한 조무래기들의 엉덩이에 제가 품은 온기를 기꺼이 퍼주며 홀로 섰다. 생명을 품은 따뜻한 담을 지고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로 한 나절을 보냈다.
낮은 담은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길게 빼면 마당의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빨래는 얼마큼 말라서 바람에 흔들리는지, 들마루에 널린 고추랑 무말랭이가 꼬들꼬들 잘 말라가는지, 7년을 키웠다는 그 집 개 백구가 일없이 땅을 파는지, 두 발을 모으고 잠을 자는지 담은 마당을 보여주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머리가 덥수룩하고 말이 없던 친구네 오빠는 교복 입은 수정언니 집을 매일 힐끗거렸고 담 너머로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목덜미까지 빨개지던 촌스런 그 얼굴이 담 위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마당에 흔했던 채송화, 나팔꽃, 도라지꽃과 마루 밑에 뒹굴던 새마을 모자, 거름실은 리어카와 플라스틱 양동이가 부동자세로 서 있는 샘터의 풍경은 새로울 것도 없어, 낮은 담 너머는 늘 평온하고 잠잠한 시간이 흘러갔다. 담은 낮으므로 더없이 다정스러웠다.
다정히 낮은 담 위로 인정이 소란스럽게 오간다.
낡은 소쿠리에 금방 부쳐낸 김치적이 김을 내고 노란 옥수수가 담을 넘어 건네 지면 소쿠리 한 귀퉁이에 수다도 한 움큼 실려 갔다 온다. 날이 어둑해지면 밥상을 펴고 흙장난에 빠진 나를 부르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담을 넘었고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한 앞집 아저씨가 부르던 노랫소리도 담을 넘었다. 아저씨가 부르는 '하숙생'은 아줌마가 외치는 '아이고 지겨워' 하는 잔소리에 눌려서 중간중간 끊어졌고 나는 왜 인생은 나그넷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을 타고 온 동네를 넘나들었고 우리는 모두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풀고 인정을 나누었다. 아무것도 가릴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낮은 담은 도시로 나오면 철갑을 두른 듯 경계가 삼엄하다. 더 이상 소쿠리는 단위를 넘지 못했고 소변과 낙서는 감히 높은 담에 대들지 못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엔 담이 없다. 대신 모두를 감시하는 카메라가 높이 걸리고 골목에서 사라진 아이들은 층층이 매트를 깔고 침묵을 강요받는다. 담이 사라진 곳은 사람의 교류가 더 잦아야 하건만 세월은 낮은 담장 대신 마음에 높은 담을 쌓게 하는가. 오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마주친 사람들은 그저 503호 805호로만 기억할 뿐 인정과 관심은 되려 피곤하고 귀찮을 뿐이다. 서로의 영역은 침범하지 말아야 하고 소통하지 않아도 피해받지 않으면 상관없다.
인정 대신 경계만 꼿꼿하다.
나는 너무 높은 담이 낯설고 담이 없는 아파트가 쌀쌀맞다.
초록의 이끼가 듬성거리고 낙서가 꼬물거리는 허술한 담 위로 소박한 이야기가 넘나들던 낮은 담이 그래서 오늘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