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더위가 주책없이 며칠간 계속되더니 오늘은 비가 내리면서 기온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듯하다.
바람 속에 섞인 비가 서늘하게 느껴져 개켜놓은 점퍼를 다시 꺼냈다. 창밖을 내다보니 울고 있는 바람 속에 비가 섞여 우웅 소리를 내며 허공을 쓸고 있다. 비가 그치고 나면 짧은 봄 뒤로 여름이 한 발짝 더 다가오겠구나. 비는 계속 대지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뿌리를 내린 세상의 모든 것이 환호하며 맞이한다. 땅에 납작 엎드린 들풀이 으쓱으쓱 어깨춤을 추고 두 뼘씩 자라난 들꽃은 와와 손을 흔들며 비를 맞이한다고 온통 분주하다.
차 안에서 바라보는 비 내리는 풍경이 예뻐서 나는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차를 몰았다. 그래도 도로는 좀 밀리겠지 생각하며 골목 모퉁이를 빠져나올 때 건물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는 그를 보고 말았다. 두 손에 빵과 우유를 쥐고 비 오는 거리를 보고 있는 그의 앞에 허름한 리어카가 몇 개의 종이박스를 싣고 있다. 이렇게 비가 요란하니 오늘은 벌이가 신통치 않겠구나. 비 오는 어떤 날이 나에겐 낭만이지만 누군가에겐 먹고사는 일에 지장이 있는 그리 좋은 날은 아닌가 보다.
그는 우리 동네 곳곳을 돌며 빈 박스를 모으는 남자다. 장애를 가진 몸은 불편하고 체격은 자그마한데 그저 한 계절 내내 같은 옷을 입고 늦은 밤까지 열심히 동네 곳곳을 돌았다. 늘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나이를 가늠할 순 없지만 아마도 사오십은 족히 된듯하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리어카를 끌며 그의 하루에 최선을 다한다. 이따금 종이상자가 가득히 실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리어카를 끌고 휘청대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위태위태한지 괜스레 한 숨이 쉬어진다.
어느 날 좁은 골목길로 차를 몰다 진입로에 세워진 그의 리어카와 마주쳤다. 나는 부디 그가 천천히 볼일을 끝내고 리어카를 빼주길 바랬지만 웅크리고 앉아 박스를 접고 있던 그는 내 차를 발견하곤 미안한 듯 제 딴엔 빠른 걸음으로 달려온다. 그러나 불편한 몸은 날래지도, 가볍지도 못해 보고 있는 내가 다 민망스러웠다.
그가 터준 골목길을 빠져나오면서 뒤뚱대는 그 모습이 괜히 서글퍼 맘이 짠했다. 휘적거리며 걸어오던 그 얼굴 위로 어린 시절 우리에게 친절했던 절뚝발이 아저씨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저씨는 남루하기 짝이 없는 작고 허름한 가겟방에서 싸구려 아이스케키와 줄줄이 사탕, 몇십 원짜리 종이 인형 등을 팔았는데 몸이 불편해서 늘 목발을 짚고 다니는 분이셨다.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분의 한쪽 다리가 기역자로 구부러져 가슴께에 올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쩔뚝발이 아저씨'라고 불렀다. 당시 국민학생이던 내가 아저씨의 키가 작다고 생각했으니 참으로 왜소한 분이셨다. 서너 평의 작은 가겟방에 아저씨 나이만큼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던 낡은 목발이 피로한 듯 벽 구석에 기대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찢어진 장판 위에 결 좋은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목발 옆에서 졸고 있던 것처럼 느껴지던 풍경을 기억한다.
남루하기 짝이 없는 그 가겟방은 생각해보면 그다지 살만한 물건들도 없던 것 같은데 늘 우리 또래 아이들로 북적였다. 그건 아마도 짓궂은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했던 아저씨 성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철없는 어린것들의 시건방진 질문에도, 돈 한 푼 없이 찾아와 서 괜스레 아이스께끼 뚜껑을 열고 닫는 가난한 행동에도 아저씨는 그 사람 좋은 얼굴에 주름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그저 한결같이 상냥했다. 절뚝발이 아저씨 가게에 예쁜 종이 인형이 많다고 소문이 나서 10원이라도 공돈이 생기는 날엔 우리는 아저씨 가게로 달려갔고 가위로 오려서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놀다 오곤 했다. 인형을 오려낸 종이 조각이 아저씨 가겟방에 아무렇게 나뒹굴고 우리들이 제 멋데로 가게를 점령해 앉아있어도 아저씨는 그저 말없이 빗자루로 그 너저분한 방을 쓸고 또 쓸어댈 뿐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늦은 결혼을 했고 아들도 낳았다. 우리는 여전히 그 허름한 가겟방을 드나들었고 아저씨는 변함없는 미소로 우릴 반겼다. 그 짝짝이 다리로 앉아 어린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아이와 놀아주며 허름한 가게를 지켰다. 절뚝발이 아저씨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가정을 꾸려나가는 성실한 가장이었던 것 같다. 내 기억으로 아저씨의 가게가 문을 닫았던 날은 한 번도 없었고 그 성치 않는 몸으로 항상 바지런하게 움직였다. 생각해보면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얻은 아들이 얼마나 애틋했을지, 그래서 아버지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편견과 부당함에 부딪치며 살아갔을지 자식을 키우는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아저씨의 힘겨웠을 세상이 느껴지는 듯하다. 한 번쯤 다시 만나면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허리를 굽혀 안부인사를 전하고 싶지만 벌써 40여 년쯤의 기억이니 지금은 그분의 생사조차 몰라 안타깝다.
비 오는 날 구석진 자리에서 빵과 우유를 들고 한 끼를 해결하던 리어카 끄는 남자를 보고 어릴 적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던 절뚝발이 아저씨가 겹쳐 보였던 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리 친절하지 못했을 세상에 최선을 다해 부딪쳐 나가는 그들의 인생이 너무도 순하게 닮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최선이 정말 그 자신의 의지로 거친 세상에 당당히 맞서기 위함인지, 아니면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절박하고 강요된 몸부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그리 상냥하지 못했을 세상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인생을 성실함이라고 우기고 싶다. 그들의 인생 어느 한때 때깔 좋은 시절이 있었을까. 어떠하든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그의 인생을 응원한다. 지금은 생사조차 모르는 내 기억 속에 친절한 미소로 남은 절뚝발이 아저씨의 인생 또한 어린 내가 응원한다. 그들의 한결같은 성실함과 매 순간이 힘겨웠을 고단한 인생을 응원한다. 당신의 성실함은 원더풀, 원더풀이다.
이번 석가탄신일엔 그들을 위한 기도를 정성껏 올려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