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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하울 Apr 29. 2022

밥그릇에 지혜가 들어있다.

                                 

                                                            출처: 헬스조선

마트에 싱싱한 전복이 흔하다.

임금님 진상품으로 바쳐지던 시절이야 바스러질 듯 흐려진 역사책에나 그려져 흘러갔다 쳐도 고운 보자기에 싸여 선물로 주고받으며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흔한 것이 어디 전복뿐이랴. 어느 때 노르웨이 강가를 힘차게 거슬러 올라갔던 연어가 그렇고 대서양 한 자락에 잠영하던 바닷가재가 그렇다. 태국에서 건너온 새우와 러시아에서 들어온 코다리는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어쩌자고 그들의 생전엔 들어도 못 본 나라에서 그 싱싱함을 자랑한다. 신기한 세상이다. 우리 할머니가 들었다면 필시 "기맥히게 좋은 시상이지, 암만!" 감탄사를 연발할 것이고 청자 한 개비를 맛깔나게 태우시려나. 우리에게 싱싱함이란 것은 마당에서 금방 잘라낸 푸릇한 정구지나, 드레스 밑단처럼 꼬글꼬글한 연한 상추를 가리키는 것이고 뙤약볕에 황홀한 부끄러움을 뒤집어쓴 채 레드벨벳처럼 익어가던 딸기와 억세게 버텨준 대공에 악착같이 매달려있던 옥수수 따위를 갓 수확했을 때 부르는 말이었다. 내 고향 작은 마을은 사철 땅의 축복이 큰 곳이었지만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터라 생선이란 것이 귀했으므로 그저 생선은 생선이었지 채소나 과일처럼 싱싱함이란 단어를 붙여 불러 본 적은 없던 것 같다.               

읍내에서 가장 큰 중앙 시장 안에 생선가게가 몇 군데 있었다. 들머리에 들어서면 벌써 비릿하고 쿰쿰한 냄새가 둥둥 떠다녔고 눈알이 흐리멍덩하고 소금에 절인 납작한 고등어나, 갑작스러운 자신의 죽음이 기가 막힌 지 입을 벌리고 얼어버린 동태 따위가 나무상자 위에 포개져 누워있었다. 시장은 하수처리가 잘되지 않은 탓에 비가 오지 않아도 늘 질척거렸고 겨울엔 진창에 찍힌 신발 자국이 그대로 얼어붙어 울퉁불퉁했다.      

시골의 겨울은 길고 매서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했던 것 같다. "할머니 밖에 춰유?" 그러면 할머니도 늘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춰!! 남산에 까치가 시 마리나 얼어 죽었댜. 아주 대단햐" 남산에 까치가 얼어 죽게 추운 날 할머니는 고무 털신 안에 누빈 버선을 신고 시장을 돌았고 언 생선을 쿡쿡 찌르며 싸고 많이 주는 놈을 골랐다. 그런 날 저녁상에 꽁치구이가 올랐다. 기름에 노릇하게 구워진 대여섯 마리의 꽁치는 굵은소금에 절여져 짭짤하고, 고소했다. 젓가락이 쉴 새 없이 꽁치의 살점을 파고들어 헤집어질 때마다 "워째 비린걸 저렇게 환장을 하고 밹히는겨" 질색을 하시던 할머니는 말간 동치미 속의 맵싸한 고추를 크게 베어 무신다. 꽁치는 대가리와 척추 같은 가시만 빼고 눈알까지 사라져 버렸다. 그다지 간식거리도 없고 특별한 것 없이 늘 비슷한 나물이나 김치 종류가 상에 오르던 시절 기름에 구워진 생선은 충분히 특별한 반찬이었다. 그러나 생선은 구이보다 조림이 더 자주 상에 올랐다. 무를 숭덩숭덩 썰어 냄비에 깔고 어슷 썬 고등어를 올려 집 간장 양념을 부어 자박자박 조려낸 생선은 내 입엔 느끼하고 비렸다. "무수가 달어, 무수가" 할머니 수저가 연방 물렁한 무를 뚝뚝 잘라내 밥그릇에 나르고 있어도 난 무의 어디쯤에 단맛이 들어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고, 그것이 고등어 토막을 오롯이 할아버지께 양보하는 할머니의 배려인지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코끝이 찡하게 추운 겨울 저녁에 장판이 거무스름하게 태워진 아랫목에서 온 식구가 옹기종이 둘러앉아 생선을 발라 먹는 그 시간은 왠지 별 걱정 없이 푸근하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무렵 우리 동네 읍내에 레스토랑이란 것이 들어와 처음 먹어본 생선까스는 생선의 다른 맛을 보여주는 신세계였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생선을 튀겨내 소스를 올린 것이니 굳이 넓게 보자면 그다지 특별한 요리법은 아니었다. 진정 생선의 신세계를 맛본 건 남편과 결혼을 앞두고 시댁에서 저녁을 먹을 때였다. 식탁엔 양념이 많이 발린 김치와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 두 마리가 배를 벌리고 누워있었다. 김치는 하얀 접시에 길쭉하게 썰려 먹음직스럽게 담겨있었고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갈치가 듬성듬성 들어있었다. 생선이 배춧속으로 들어간 이 조합은 내게는 참으로 세상 첨 보는 기이하고도 발칙한 풍경이었다." 이거 무봐라. 울 엄마가 만든 갈치 김친데 직인다" 남편이 게 중 두툼한 한 조각을 내 밥그릇 위에 올려놓고 어서 먹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나는 빨간 양념으로 잔뜩 버무려진 갈치 토막을 집어 입안에 넣고 호기심과 함께 씹었다. 순간 물컹한 갈치 살이 씹히면서 생선의 비릿함이 온 치아 사이사이에 눌어붙었다. '울 엄마의 직이는 김치'가 내게는 그저 직이게 비린 딱 그만큼 밖에 안 되는 희한한 음식이었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그 순간에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직이는 갈치 한 토막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최선을 다해 태연했다.     

낯설고 어색했던 음식문화는 결혼을 하고 세월이 가며 나도 모르게 익숙해지고 길들여졌다. 김장철이 되면 어느새 어머니의 갈치 김치를 기다린다. 갈치는 싱싱함이 생명이다. 은빛이 잘 도는 건강한 놈으로 골라 일일이 비늘을 긁어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자른 뒤 양념에 버무려 놨다가 배추를 치댈 때 사이사이 넣는다. 그러면 가족들은 김치가 잘 익었을 때 갈치만 골라 먹기도 했다. 어머니는 구정이 지날 때쯤 갈치 김치를 상위에 올리셨다. 잘 익은 배추는 탄산처럼 청량하면서도 깊은 맛을 냈고 갈치는 발효가 잘되어 부드러운 식감을 냈다. 나는 비로소 직이는 갈치 김치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이다.     

갈치 김치와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은 곰국이다. -( 궁합이란 것이 인륜지대사 앞에 사주팔자 음양오행의 이치를 따져 합의 양을 계산해 보는 일이라면, 나의 음식궁합이란 것은 오직 혀에서 느껴지는 맛의 조합이며 밥상에서 일어나는 기분 좋은 몸의 반응이다.).-  어머니는 봄이 오는 3월쯤 되면 사태나 도가니를 사다 곰국을 진하게 끓여 내셨는데 우리 집은 곰국을 "꽁꾹" 이라고 부른다. 꽁꾹은 뭉근하고 은근한 불의 음식이다. 센 불에서 중간 불로, 그리고 다시 약한 불로 오래 음미하듯 고아내는 기다림의 음식이다. 그렇게 오래 고아낸 뼛국물을 왠지 곰국보다 꽁꾹으로 불러주어야 어머니만의 특별한 음식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자장면보다 짜장면이 짜작짜작 짭짤한 맛을 뿜어내는 것처럼 나는 이 꽁꾹이 곰국보다 진하고 뜨겁게 느껴져 부르기 좋았다. 어머니는 가스 불에 꽁꾹을 우려내시면서 늘 '서말띠 솥' 타령을 하신다. 크은 서말띠 솥을 활활 타는 장작불 위에 올려놓고 푸우욱 과야 진한 국물이 나오는 것이라며 아파트에 솥단지와 장작불이 없음을 살짝 한탄하신다. 어머니는 종일 서서 불 조절을 하시고 기름을 걷어내며 국냄비를 지키셨고 그렇게 하루를 꼬박 가스 불로 끓여 낸 꽁꾹이 드디어 상에 올랐다. 쫑쫑 썬 대파를 듬뿍 넣고 후추를 탈탈 두 번 털어 넣은 후 소금으로 톡톡 간을 맞춘 꽁꾹에 갓 지은 밥을 말아 잘 익은 갈치 김치를 처억 올려 한 입 크게 털어 넣는다. " 아 좋다, 션하네. 꽁꾹이 지대로 따리 졌데이" 추임새를 넣어가며 그릇째 들고 국물을 훌훌 마시다 보면 온몸이 후끈해지는 것이 한 계절을 시작하는 보약이 되었다. 식탁에 차려진 꽁꾹에 밥을 말아 김치를 올리고 한 그릇 뚝딱 먹어 치우는 가족의 모습을 보는 그 순간이 어머니의 화양연화였을까. 밥상 앞의 어머니 얼굴엔 늘 잔잔한 미소가 떠 있었고 밥 한 공기 더를 외치는 그 소리에 옅은 미소가 함박 커진다. 나는 어머니 밥상에 옹기종기 모여 갈치 김치에 뜨거운 국물을 훌훌 마시는 그 순간 매번 가슴팍 간질간질한 행복을 느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예전엔 몰랐던 마음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고, 말을 행간에 숨은 뜻을 읽어내는 영리함이 생기는 일이다. 할머니가 고등어조림의 무가 달았던 이유는 할아버지를 향한 할머니만의 사랑법이었다는 걸 나이가 들어 알게 되었고, 어머니가 한 손이 더 가는 번거로운 김치를 담고 계절마다 곰국을 끓여 내시면서 미소를 짓는 이유도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알게 되었다. 밥을 한 그릇 먹는다는 건 그래서, 그만큼의 지혜를 더하며 성숙해 가는 걸지도 모른다.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찌개 한 냄비에 수저를 들락거리며 하루를 이야기하는 풍경은 세상 가장 평범하고 세상 가장 평안하다. 이제는 무의 단맛과 칼칼한 생선조림의 맛을 알고 번거로운 갈치 김치의 레시피를 외울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행복은 뜨끈한 밥상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으며 나는 영리하게 한 살 먹는다. 내가 할머니 나이만큼, 어머니 나이만큼의 어른이 되었을 땐 또 어떤 삶의 지혜를 배우며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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