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갓 바위 부처님을 뵈러 갔다.
가슴에 간절함이 넘치는 순간이 오면 빈 그릇을 들고 엎드려 가득 채워 주십사 욕심을 낸다.
아들놈이 고3이 되니 엄마의 욕심은 넘쳐나고 아이에 대한 마음은 비워내지 못한 번민으로 어지럽다. 연필을 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다잡으며 고군분투하는 아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나의 갈증과 아들의 힘겨움을 끌어안고 팔공산 갓 바위를 올랐다.
마음의 중앙에서 깃발처럼 휘날리는 욕심을 주저앉게 하소서. 아니, 깃발이 휘날리지 않을 만큼 채워주소서. 무엇이 진짜 바람인지 알 수 없는 갈등의 중심에서 그래도 마음에 낀 골마지는 조금 씻어 낼 수 있길 바라며 한 발 한 발 내디뎌본다.
경사진 비탈길을 오르는 길에 이따금 소복이 쌓인 돌탑을 보았다. 간절함을 안고 이 계단을 오르는 이들이 그 맘을 끌어모아 탑을 올렸을 것이니 그 탑은 이미 부처였을 것이다. 인류가 석기를 들고 세상에 맞섰을 때부터 시작된 기복의 신앙이 역사를 타고 넘어 지금 여기 소박한 돌탑으로 모아진다. 탑은 작은 돌 서너 개로 쌓아 올린 낮은 모양인데 빼뚤빼뚤 올려진 모습이 참 예뻤다. 나는 이런 정형화되지 않은 작은 것들에 더 눈이 간다. 잘 가꿔진 화단의 꽃보다 봄 햇살에 시멘트 틈을 뚫고 나온 노란 민들레에 눈길이 가고, 넓은 강을 가로지르는 높고 웅장한 다리보다 좁은 냇가에 무심히 놓인 몇 개의 돌다리가 더 사랑스럽다. 그런 것들을 볼 때 나는 아름다움이란 것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게 되는 것 같다.
정상으로 뻗어 올려진 계단을 오르며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몇 번이나 멈춰 쉬었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오르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여기에 오르는 모든 이들의 소원을 풀어놓으면 태산처럼 높아 오를 이가 없겠구나 싶었다. 잠시 쉬며 산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바람에 반짝 거리며 솨아아~ 바닷소리를 내는 나무와 산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 4월의 햇살이 흩어지는 하늘이 그제야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목적지만 생각하며 오를 땐 보지 못한 것들이 한숨 내뱉고 멈춰 서니 비로소 눈에 담겼다. 단박에 피로가 가시는 것 같다.
사는 모습도 다르지 않으리라. 어느 날 삶의 무게가 느껴지면 잠시 숨을 고르고 내가 찍은 발자국을 톺아보는 쉼이 필요하지 않을까. 바람을 맞으며 내가 밟고 온 계단을 다시 마주해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보며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부처님 발아래 삼배를 하고 아들의 마음이 평안해지길, 나의 욕심이 주저앉기를 기도했다.
목적이 같은 장소에 운집한 사람들은 같은 표정으로 집단 감염이 된다. 병원의 침울함과 공항의 설렘, 카페에서 부딪치는 편안한 미소가 의도하지 않아도 전염되는 것처럼 여기 두 손을 모은 이들의 얼굴엔 어떤 경건함이 먹물처럼 번져가는 듯했다.
이런 엄숙함이 깨어질까 조심히 일어나 오늘 내가 올라온 길을 굽어본다.
수평으로 난 여러 개의 길이 보였다. 계단으로 잘 다져진 수직의 길보다 수평으로 뻗은 길이 훨씬 더 많았다. 아무의 흔적이 없는 미지의 곳이라도 걸어가는 순간 그곳은 길이 된다. 그리고 그 길로 걸어갈 때 숲의 반짝거림을 훨씬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떤 길을 원하며 살아왔을까. 낮은 길을 걸으면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그곳에 무엇이 있건 그저 꼭대기를 갈망하며 수직으로 기어올라 정상에 닿는 꿈을 꾸었다.
아이의 힘겨움을 보면서도 사나운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내가 가보지 못했던 정상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나. 세상에 길이 그토록이나 많음에도 한 길만 걸으며 남들과 같은 꿈을 꾸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이 아니었을까 마음이 무겁다.
갓 바위에 오를 때 짊어지고 갔던 욕심을 부처님 앞에 쏟아 내고 그럼에도 차마 버리지 못한 놈들을 다시 욱여넣고 돌아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는 일은 그래도 수월했다. 함께 간 이들과 여유 있게 웃으며 내려오는데 A선배가 자꾸 허리를 숙인다. 유심히 보니 내려오는 내내 계단의 작은 돌조각을 주워서 치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산길에서 굴러 떨어진 돌조각들이 계단 위에 하나씩 떨어져 있었다. "어르신들 미끄러질까 봐" 무심히 내뱉는 그녀의 팔목에 열개의 구슬이 꿰어진 동그란 묵주가 빛을 낸다. 내가 믿는 종교에 기대 오직 나의 빈 그릇이 채워지기만 바랬던 나는 심장이 찌릿해지며 따뜻한 피가 온몸을 순환하는 느낌이 들었다. 종교의 궁극이 이념을 뛰어넘는 인간의 사랑이라면 나는 오늘 그 사랑을 배우고 간다.
중학교 한문 시간에 '삼인행' 이란 글을 배운 적 있다. "세 사람이 가는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중에 선한 자를 가려 그를 따르고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 나의 잘못을 고친다"
유독 이 글귀가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는 동안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삼인행의 교훈을 읽어왔다.
오늘 나의 스승이 된 이는 A선배였다.
욕심을 다 버리고 오진 못했지만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알게 된 오늘 , 아들에게 왠지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