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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영철 Dec 04. 2021

21세기 귀족(23)

고대 로마의 토지사상(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와 키케로(i))

당신은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 믿는가?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합법적으로 착취하는 제도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는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폭력적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신분제도는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부동산제도'라는 이름으로.

 
  
  

- 프롤로그 -


 

지금까지의 카카오톡 브런치의 가장 큰 방향성과, 필자의 <21세기 귀족>의 방향성이 다소간 다를 것이다. 허나 브런치를 애독하는 독자들 중에 필시 깊은 학구열과 경제적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이 글을 올리는 바이다. 이 글 <21세기 귀족>은 필자가 지난 3년 간 개인적으로 연구해온 결과물이다. 


당신도 이 <21세기 귀족>을 통해, 오늘날의 부동산 기득권층이 꼭꼭 숨겨왔던 역사를 발견하길 바란다.






- 본문(23) : 고대 로마의 토지사상(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와 키케로(i)) - 


기원전 1세기


 앞서 확인했듯 서양문명에서 지주가 국방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뚜렷하게 얕아져 간 시점은 바로 이 시대의 로마로부터 시작하였다. “실질적인 대규모 토지집중”이 시작된 시기도 바로 기원전 1세기 중엽이다.[1] 동맹시 전쟁(기원전 91~87년)과 같은 속주들의 반란, 토지몰수에 대한 에트루리아의 봉기, 심지어 로마 내에서의 무장봉기, 기원전 60년경 카이사르-폼페이우스-크라수스 삼두정치의 성립, 내전기 그리고 마침내 카이사르의 승리를 도운 지지자들까지, 이 모든 사건의 기저에는 부동산양극화 문제가 있었다.


오늘날 이탈리아 로마에 세워진 카이사르 동상(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Julius-Caesar-Roman-ruler.)


 비상한 두뇌 혹은 민중을 위한 따뜻한 가슴, 어쩌면 둘 다 가지고 있는 카이사르는 일찍이 그 문제에 접근하였다. 기원전 59년에 집정관에 취임하자 토지재분배 법안을 제출하였는데, 당연히 “명예를 소중히 여기던 원로원 의원들은 반대”했다.[2] 그들에게 명예와 토지 재산은 거의 동의어였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통해서도 토지 재산의 감소를 명예의 감소와 동일시 여겼던 로마 대지주들의 사고방식이 여실히 드러난다. 시간이 흐른 후 내전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민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야심가들이 내세운 농지정책은 빈민구제가 아니라 패배한 정적들의 사유지와 재산을 빼앗아 휘하의 군사들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3]

 

카이사르가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의 핵심은 바로 이것에 있었다. 첫째로, 지난 수백 년간 로마 정부는 군역을 이행하고 제대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보상을 해주지 않았지 않았던 정책은 지금까지도 달라짐 없었지만, 달라진 것은 그 제대한 사람들의 경제력이다. 옛적에 제대한 조상들보다 지금 제대한 인민들이 ‘수백 년 간 심화된 토지양극화로 가난해졌기 때문에’ 경제적 인센티브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로, 이에 따라 카이사르가 농지개혁의 필요성과 정치적 지지자들에 대한 보답을 결합시킨 아이디어 즉, 숙적을 없앰으로 획득하는 토지 등의 전리품을 지지자들에게 나누어줄 것을 제시하자 자연스레 그 군사들이 이에 매우 긍정적으로 응했다. 


종합하자면, 토지를 포함한 사유재산제도로 인해 토지양극화와 이에 따른 빈곤 문제가 명백하게 표면으로 올라온 상황에서, 인민과 군사들의 가장 가려운 부분을 전략적으로 시원하게 긁어주었기에 그는 서양사 최강 대제국의 1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부하들이 그의 뒤를 따라 “용감하게” 싸웠음은 두 말 할 것도 없다.[4] 카이사르는 너무 자신의 부하들만 챙겨주어서, 오랫동안 그의 아군이었던 안토니우스는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에게 전리품으로써의 토지를 나눠주지 않은 것 때문에 반감을 갖게 되고 그를 공격하기도 했을 정도였다.[5]


한편 내전 중에 어느 의원은 노예를 해방시켜서 전투력을 증강시키자는 의견을 내놓았는데, 많은 동료 의원들이 동의했음에도 小카토는 법과 정의에 어긋난다고 반대했던 사건이 흥미롭다.[6] 로마의 지주귀족들이 가난한 시민뿐만 아니라 노예마저도 전쟁에 끌고 나가고 싶어 했던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기어코 공적으로도 표출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야심가들의 계획으로 인해 토지 재산에 손실을 입을 것을 우려한 지주귀족들은 어떠한 논리로 그들과 맞섰을까. 여러 명 살필 필요 없을 것 같다. 당시의 최고 정치사상가이자, 여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언론인이자, 로마 부동산의 최상위 노른자위 땅인 팔라티노 언덕의 부동산 소유자이자, 철학자이자, 지주귀족들의 대변인이었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43)와 그의 두 저서인 『법률론(De Legibus)』과 『의무론(De Officiis)』에 주목해보자. 


키케로 조각상.(photo : AUGURMM.)


먼저 그가 약 기원전 52년경에 집필했던 『법률론』의 집필 배경 및 시점이 매우 흥미롭다. 그 시점은 불법으로 500유게라를 초과하는 토지에 대해서는 몰수하여 서민에게 나눠줌으로써 자작농을 키우려 하고, 특히 폼페이우스의 지휘 하에서 5년 이상 군복무를 한 군인에게는 우선을 두는 토지개혁안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통과시켰던 기원전 59년 이후이면서, 동시에 폼페이우스가 원로원파로 돌아선 이후 그 둘의 동맹이 깨어지고 민중파와 원로파의 최종적 승패를 결정지을 내전 발발의 직전의 시기였다. 즉, 키케로로서는 원로원과 지주와 귀족들이 간절하게 현행 법률과 토지제도를 유지하기를 바라며 그 당위성을 설파하고 싶었던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보다 11년 전인 기원전 63년에 집정관으로서, 카이사르가 고안하고 룰루스가 발의했던 토지개혁법(lex agraria of Rullus)을 막아낸 화려한 전적이 있다. 심지어 그 법은 대지주가 자신의 토지를 매각하고자 하는 자의적 의사가 있어야 그 땅을 국가가 매입하여 빈민이나 군인에게 나누어주게 하는 법안이어서 그다지 자신을 포함한 지주귀족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법률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허나 집필 시점에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로마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력(武力)을 카이사르가 손에 쥐고 토지개혁을 실시하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저 저서에서나마 가상의 인물의 입을 빌려 아래와 같이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마르쿠스: 무릇 법률이란 자연본성의 위력이고, 현명한 인간의 지성이자 이성이며, 정의와 불의의 척도네. (중략) 최고법은 여하한 성문법도 생기기 이전에, 심지어 어떤 도시국가도 성립되기 이전에 아주 오랜 세월 전에 먼저 생겨났네.[7]


마르쿠스: 그러므로 인간에게 신과 연합된 점이 있다면 그 첫째는 이성의 연합일세. 이성보다 훌륭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인간에게도 신에게도 이성이 있어서 하는 말일세. 그들 사이에는 이성이, 아니 둘 사이에는 바른 이성이 공통되네. 그것이 법률이기도 하다면 우리 인간들은 법률로도 신들과 결속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일세. 따라서 둘 사이에는 법률의 공유가 있고 정의의 공유가 있네.[8]


마르쿠스: 그래서 현자들은 최초 최후의 법률은 이치에 따라서 만사를 강제하거나 금지하는 신의 지성이라고 말해왔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신들이 인류에게 준 법률은 의당히 칭송을 받아야 하는 것일세.[9]


마르쿠스: 인민이 위해가 되는 무엇을 비록 법률로서 채택했다고 할지라도, 그런 법률은 어떤 이유로도 인민에게 법률이 될 수 없네.[10]


1.6.19에서 키케로는 법률은 시대와 성문 여부와 국가성립여부를 초월하여, 태고성과 절대성과 이성을 전제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대표적인 자연법사상가답게 특히 이성에 대해 언급하는 1.7.23에서는 신과 인간의 연결고리이자 공통점이라고 강조하며 이것이 곧 법률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이성으로 만드러진 법률은 무언가를 실행하거나 ‘금지하는’ 신의 지성이라고 말한다. 과연 어떤 것이 금지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까. 바로 인민(키케로는 필자가 본문에서 쓰는 ‘영세한 인민’이 아니라 로마인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는 법률이다.[11] 즉 위처럼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토지재분배에 관한 법이다.


이어지는 아래의 대목에서 키케로의 당대 정세에 관한 그의 생각, 그리고 그의 법률관(法律觀)을 투영한 당대 정세에 대한 그의 생각과 평가를 매우 노골적으로 알 수 있다.


마르쿠스 : (중략) 인민이 위해가 되는 무엇을 비록 법률로서 채택했다고 할지라도, 그런 법률은 어떤 이유로도 인민에게 법률이 될 수 없네.[12]


(전략)

마르쿠스: 그럼 자넨 티티우스법들이나 아풀레이우스법들은 법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퀸투스: 물론입니다. 나는 리비우스법들도 법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르쿠스: 그래서 그것들은 원로원의 단 한 문장으로 일시에 폐지되고 말 정도였는데 그게 옳았지. (후략)

퀸투스: 그러니까 형님은 법률이라면 결코 폐지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문하는 셈이군요.

마르쿠스: 그래. (후략)[13]


첫 번째로 언급되는 티티우스법(lex Titiana)이란 기원전 99년에 호민관 섹스투스 티티우스(Sextus Titius)가 인민을 위한 농지개혁안을 담은 법률이다. 두 번째 아풀레이우스법(lex Apuleiae)은 기원전 100년에 루시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Lucius Apuleiae Saturninus)가 토지재분배와 곡물가격 통제에 관해 제안한 법률이다. 세 번째 리비우스법(leges Livius)은 기원전 91년에 호민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Marcus Livius Drusus)가 이탈리아 거주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면 그 대신 그들이 점유하고 있던 공유지를 반납하여 빈민들에게 할당할 것을 제안한 법률이다. 


당연히 위 모든 법들이 모두 원로원파에 의해 좌절되었다. 고로 키케로가 이 대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되겠다. ‘참된 법률이라면 폐지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애당초 법률이 아니었다. 제정될 정도로 옳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고, 손해를 끼치는 법이므로 금지되는 것이 옳았다.’ 


종합적으로 키케로는 명백히 그리고 전적으로 토지개혁의 역사를 아니꼬운 시각으로 보고 있었으며 당시 진행 중이던 야심가들의 토지개혁적 시도를 위 대화를 통해 에둘러 비판했던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던, 기원전 2세기 초중반에 카토가 농지규모법에 대하여 “잔인한 법”이라고 평한 것과 정확히 동일한 맥락의 법사상이 엿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기원전 1세기의 로마, 부동산제도를 둘러싼 격변의 시기를 살펴보았다.


(1) 부동산 양극화가, 로마 역사상 최대 규모의 내전과 카이사르라는 전무후무한 인물을 탄생시킨 결정적 배경이었음을 확인하였다. 그 부동산양극화의 문제는 옛적 올바르고, 정의롭고, 평등했던 토지사상을 잃어버림에서 시작되었다.


(2) 카이사르와 같은 인물들에 반해, 키케로처럼 막대한 부동산을 보유한 자들의 극심한 반대와 그 논리를 살펴보았다. 수 세기전, 토지는 모든 사람들이 공평히 누려야 하고, 토지를 많이 가진 자들은 더 많은 공적 부담을 져야 한다고 믿었던 로마 선조들이라면 절대 납득할 수 없는 논리들이었다.  



References


[1] 임웅, “문헌사료를 통해서 본 로마의 colonus”, 「사총」55(2002), 312쪽.

[2] Plutarch/이성규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II』(현대지성사, 2000), 1313쪽. 원문은 Plutarch, Caesar.

[3] 김진경, 김봉철, 최자영, 백경옥, 송문현, 오흥식, 차전환, 김경현, 신미숙, 최혜영,『서양고대사강의』(한울아카데미, 2008), 446~447쪽.

[4] Plutarch/이성규 옮김, 전게서, 1316쪽. 원문은 Plutarch, Caesar.

[5] 상게서, 1720쪽. 원문은 Plutarch, Antonius.

[6] 상게서, 1442쪽. 원문은 Plutarch, Cato.

[7] Cicero/성염 옮김, 『법률론』(한길사, 2007.), 1.6.19.

[8] 상게서, 1.7.23.

[9] 상게서, 2.4.8.

[10] 상게서, 2.5.13.

[11] 상게서, 2.5.13.

[12] 상게서, 2.5.13.

[13] 상게서, 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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