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낭만적이고 싶어서

by 임경미


‘낭만’하면 가수 최백호 님이 부른 <낭만에 대하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하고 끝나는 노래에 진한 여운이 남는다.

낭만이란, ‘다시 못 올 것’이고, ‘잃어버린 것’이라고 나 역시 동의했다.


몇 년 전, 옥정호의 연무(煙霧)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을 마치고 혈혈단신으로 옥정호를 찾았을 때, 그때 홀로 겪어야 했던 추위와 짙은 어둠과 오랜 기다림과 공포는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꼬박 날을 샌 탓에 잔뜩 피곤해진 몸으로 귀가할 때, 하나 앞에 있는 신호등을 보고 멈춰선 바람에 신호위반 딱지까지 끊긴 터라, 만약 다시 간다면 만반의 준비를 해서, 일행도 섭외해서 가겠다고 단서까지 달았다.


그리고 또 한번은 가을 산사를 보고 싶어 무작정 핸들을 돌려 절을 찾았을 때, 트렌치코트에 힐을 신고 홀로 걷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워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무슨 마음의 바람이었는지 대웅전 불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부처님과 눈싸움을 하는 내 모습을, 절을 올리고 있던 불자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탓에 서둘러 대웅전을 빠져나왔던 기억도 있다.



그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그때는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할 수 없기에 다시 못 올 것들. 게다가 겁 없고 무모했거나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칠 때면 ‘그 시절 나의 낭만이었지’ 하며 말끝을 흐리고는 했다.

그리고 누군가 지금 다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럴 수 있겠노라 말할 자신이 없어서 주춤하고 만다. 그건 낭만의 시대에나 가능한 이야기지, 지금은 무슨.

지금은 낭만의 시대가 아님을, 나에게 낭만이 없음을 자각하며, 낭만이란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흉내낼 수 없는 영역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머나먼 곳에 있음을 깨닫는다. 낭만의 카테고리에 담긴 이야기들을 돌아보면, 결국 낭만은 동경하는 것.


참 한결같은 낭만 취향.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보며 그들의 삶이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신문에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가배, 블란서의 양장,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나의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혹시 아오. 내가 그날 밤 귀하에게 들킨 게 내 낭만이었을지.” 했던 고애신(김태리 분)의 대사.

점점 주권을 빼앗기는 조국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사대부 여성의 온실 속 화초 같은 삶을 거부하고 기꺼이 총을 들며 목숨을 내놓았던 마음, 정체가 탄로 나면 위험한 상황임을 뻔히 알면서도 동지 혹은 사랑이라 부르고 싶은 누군가에게 정체를 들켜버리고 싶은 마음. 거기에서 나는 악몽 같은 시절에도 존재했을 낭만을 느꼈다.


그리고 또 낭만 하나.


“그대는 나아가시오. 난 한 걸음 물러나니.”라는 대사와 함께 일본군 총알을 온몸으로 막으며 죽길 선택한 유진 초이(이병헌 분). 사랑하는 이의 목숨과 대의를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결단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낭만을 떠올렸다.




낭만이란, 쉽지 않고 간단하지도 않다.

불안정했지만 그렇기에 꿈이 있었던 시절,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부족한 줄 몰랐던 시절, 몰랐지만 그랬기에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아갔던 시절, 부족했지만 채울 것이 있어서 설렜던 시절. 돌아보면 초라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그런 시절에, 더 풍요롭고 꿈에 가까워진 삶을 그리는 것 자체가 낭만이었다.

낭만의 시절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연대를 도모할 수 있었고, 인생 업그레이드를 위해 잠시 추락하기를(누군가의 눈엔 그렇게 보였을) 선택할 수 있었고, 이런저런 잣대를 들이대며 주춤하기보다 ‘못 먹어도 고’라는 각오로 시도할 수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건 낭만이 아니라 ‘객기’일 뿐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꿈을 좇는 모습이, 불이익이 오더라도 불의에 참지 않고 연대하는 모습이, 아무 계획도 없이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모습이, 자신의 신조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모습이, 사소하게는 타인을 위해 열정을 쏟아붓는 모습이 마냥 좋게 보일 리는 없다.


낭만의 카테고리에 담긴 이야기들이란, 좋게 보면 낭만이고, 나쁘게 보면 현실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는 사람의 객기라고 보이기에 충분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이제야 하게 된 건 어쩌면 다행인 것 같다. 만약 그때 깨달았다면 객기 부리지 말고 잠자코 있어 하며 나를 달랬을지 모르니까.


그렇다면 낭만을 꿈꾸고 낭만 속에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겠구나. 그래서 이만큼 나이를 먹고 보니, 아직까지 철이 들지 않은 어른처럼 보이기는 싫어서, 이제는 꿈보다는 현실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시행착오보다는 안정이라는 단어가 더 좋아져서, 부족함보다는 풍요로움을 추구하고 싶어져서 낭만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토록 추구했던 안정된 삶 속에서 나는 그것을 얻은 대가로 낭만이라는 단어를 없애버리기로 계약을 맺었는지도 모른다. 안정 속에서 낭만은 점점 사라지고, 익숙함이 커질수록 낭만이라는 단어는 낯설어진다.


그러나 고애신과 유진 초이의 삶이 이미 끝난 지금도 문득 그들이 생각나고, 그들의 낭만적인 삶을 추억한다. 그들은 낭만적인 삶을 살았고, 낭만 그 자체였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고, 예전의 나에 비해서도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지금 내 인생에 낭만이 남아있을까. 어떤 것들을 낭만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고, 훗날 낭만이었다고 회상할 무언가를 찾아봐도 후보군에 들어오는 것도 없다. 적어도 내가 여태껏 생각했던 종류의 낭만이라면, 지금은 낭만이 아닌 그냥 현실일 뿐이고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그래도 낭만을 꿈꿨던 사람인데 이렇게 쉽게 낭만을 없애버릴 수 있었을까 싶어 한참을 고민해보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 오늘의 낭만을 찾다가 문득 찾아오는 미시감에 덜컥 우울해져버렸다. 그리곤 더욱 낯설어질 낭만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늘어진 채 혼잣말하듯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지금 내 삶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것 같아. 아무리 찾아봐도 낭만적인 것들이 떠오르지 않아.”

내 말이 끝나자 이어지는 남편의 말.


“돌아보면 이 순간을 낭만적이었다고 회상할 때가 올지도 몰라. 우리가 지금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 네가 작가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시간조차도 말이야.”



과연 그럴까. 작가가 되겠다며 도전하고 노력하는 일상이, 건강해지겠다며 산에 오르는 주말이,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들이, 혹은 마라상궈에 빠져있은 요즘 입맛이나 자유여행을 가겠다고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요즘의 일상까지도. 언젠가 모두 낭만이 되어있을까.


그래, 그럴 수 있지.

지금 낭만이라 말하는 것들을 했을 때의 나는, 그것들이 낭만적인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으니까. 낭만적인 사람으로 살고 싶어 선택한 일들이 아니었으니까. 고애신의 삶도, 젊은 시절을 그리는 누군가의 노래도 모두 낭만을 꿈꾸고 바라며 산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다만 그때는 그런 선택을 하고 싶었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낭만을 추구하지 않았지만 먼 훗날에 낭만이라고 칭할 수 있음은, 그 시절을 특별하게 보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그때와는 달라진 미래의 내가 과거에 박혀있던 낭만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바꿔본다.

그렇다면 고애신의 삶 같지 않아도, 더 큰 이상(理想)을 위해 현실을 포기하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히 낭만적이니까. 오늘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오늘 써 내려간 문장 하나에, 오늘 내디딘 발걸음 하나에 낭만이 녹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낭만이 지금보다 더 철없던 시절의 객기가 될지, 미래의 기반이 될지는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겠지. 그러나 지금 당장의 안심은, 나의 낭만은 거창하지 않아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 다시 못 올 거라고 잃어버릴 것이라고 언젠가는 추억하게 될 것들과 지금 이 순간 함께하고 있다는 것.


낭만은 그렇게 여전히 오늘의 일상에 평범한 듯 녹아있다.



(이미지 by Olle August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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