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 굳이 몸 컨디션이라고 구분해 말했지만, 몸이 아닌 마음의 컨디션 역시 그다지 좋지 않다. 요즘엔 나의 컨디션은 좋지 않다. 몸도 마음도 모두.
참 오래 끌고 왔다. 이럴 때는 없던 참을성이 생기는 건지, 둔감해지는 건지, 인내심의 한계라고 짜증 내고 화내고 할 것도 없이 질질, 이 상태를 끌고 왔다. 나라고 생각했던 내가, 낯설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어젯밤 잠이 들기 전 계획 하나를 세웠고, 오늘 아침엔 그 계획과 함께라는 것.
내일 아침엔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아닌, 색다른 일상을 보내보자고. 크게 다르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조금이라도 변화를 줘 보자고. 이 계획이 오늘의 나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마침 오늘은 계획을 실천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아침 8시면 부스럭거리며 소음을 만들어내는 남편이 없었으니,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함께 있는 것이 익숙했던 그 환경부터 말끔히 변해 있었다.
모처럼 고요한 기척에 눈을 뜨고 자리에 앉았다. 나 물 좀 줘.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고 말했을 나였지만, 물시중 들어줄 남편이 없으니 간밤 뻐근해진 몸을 좀비처럼 움직이며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셨다. 시작이 좋다.
자, 이제 책을 읽어볼까? 한 달 전쯤 구매해서 책장에 고스란히 꽂아둔 책이, 오늘따라 눈에 들어온다. 나태주 시인의 《봄이다, 살아보자》.
봄이 오면 여린 잎이 자라고, 연분홍 꽃이 피고, 물은 연한 회색으로 바뀌는 변화가 시작되겠지. 겨우내 먼지 낀 유리창이어도 봄이 왔음을 알아차리기엔 손색이 없을 터였다. 그렇게 봄을 마주하기 위해 긴 겨울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먼지 패거리들을 닦아내고 책장에 꽂힌 책을 꺼내 들었다.
봄이다, 살아보자
그래, 봄이다, 살아보자.
봄이 아니었어도 난 살아있었지만, 어쩌면 죽은 사람처럼 살았을 수도 있는 지난 시절을 청산하고, 봄이니까 살아보자고, 봄은 살아가기에 충분한 계절이라고, 새봄을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이 계절을 잘 보낼 것이라고, 희끄무레하고 탁한 잿빛의 하늘을 바라보며, 아직은 겨울과 다를 바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책은 제목으로 이미 제 역할이 다했구나. 아직 풍경은 봄이 아닌데, 봄을 꿈꾸고, 삶을 기대하게 만들었으니.
문득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 있는 내 원고를 바라본다. 춥지 않은 계절에 쓴 글이지만, 읽는 내내 글이 춥다. 글에 온기를 더하고 싶어서 자꾸 들여다보니 퇴고는 끝이 없고, 멈춤이 반복된다.
‘온기가 필요해. 따스한 봄볕이 필요해.’
어젯밤 평소와는 다른 하루를 보내보자고 계획했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책상을 청소하고, 빨래를 돌리고, 책을 꺼내 읽었다.
이쯤되면 루틴대로 마셔야 할 커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지만 오늘은 토피넛 향이 가득한 달콤한 라테를 마실 거다. 그것도 따뜻한 걸로. 나에겐 온기가 필요했으니까.
몸을 분주하게 움직여 커피 한 잔을 만들어내고 한 모금 조심스럽게 들이킨다. 따뜻한 커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 다음 장기 어딘가로 퍼지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매일 아침 얼음이 가득 담긴 커피를 마시며, 그 커피 한 모금이 잠들어 있던 장기를 깨울 때의 느낌을 나는 좋아했다. 그리고 익숙했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따뜻한 커피가 내 몸을 타고 내려가고, 따뜻한 커피를 선택하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을 느끼고 있다.
차가운 커피만 마신 사람은 따뜻한 커피가 몸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알지 못할 것이고, 따뜻한 커피만 마신 사람은 차가운 커피가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을 알지 못하겠지. 그래서 어느 것이 내게 더 좋은 것인지, 어떤 것을 내가 더 선호하는지도 알지 못하겠지.
그래서였을까. 오늘은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보자고 결심한 것이.
‘이게 나야, 나는 이게 좋아, 나는 저런 걸 싫어해’라고 규정했던 모습에서 벗어나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내가 나를 아는 것이 좋고, 루틴이 있는 것도 좋지만, 어느샌가 그 자체가 족쇄가 되어 나를 얽매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어느샌가 나에게 찾아온 삶의 권태를 매끄럽게 끊어내기 위해서?
작가는 ‘봄이다, 살아보자’ 했다. 내가 생각한 봄은 찬란하게 빛나는, 생의 기운이 완연한 봄이었지만, 오늘 내 창밖의 봄은 뿌옇고, 탁하고, 어둡고, 스산하다.
봄이 낯설다. 나의 오늘 하루가 낯선 것처럼. 요즘의 내가 낯선 것처럼. 하지만 이마저도 곧 익숙해질 풍경임을 나는 안다. 먹구름이 밀려오고, 낙엽이 바람을 따라 승천하고,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몇 번 흔들어대면, 어김없이 한두 방울 투둑 투둑 빗방울이 떨어지고, 저 빗방울을 머금고 잠들어 있던 생명이 싹을 틔울 것이다. 그러면 낯선 봄의 풍경은 어느덧 익숙해지고, 그보다 더 익숙한 봄의 풍경이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낯선 나의 하루도, 그 과정에 만난 낯선 나도 언젠가는 익숙해지고 당연해지겠지. 그러면 또 나는 또다시 낯선 모습의 나를 찾고 낯선 오늘을 살아봐야겠다. 봄이 아니어도, 난 살아갈 것이니까.
Q. 오늘 나를 음직이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마음속 간직한 바람은 무엇인가요?
(사진 출처: 픽사베이의 퍼블릭도메인사진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