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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미 Feb 28. 2023

글쓰기 즐거운 환경 만들기

팁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소한

학창시절,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하기 전의 내 모습을 기억하는가? 책상을 정리하고, 공부할 책을 꽂아두고, 스탠드 조명을 켜고, 형광펜과 색색깔 펜이 담긴 필통을 오른쪽 모서리에 놓고, 그리고 각종 용도에 맞게 제작된 메모지와 플래그잇을 세팅해둔다. 음료 한 잔과 휴지, 이어폰까지 준비하면 공부 준비 끝.


이 경건한 준비시간은 가히 10분 넘게 걸린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공부할 때 얼마나 오랜 시간을 유지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사전작업을 얼마나 철저히 했느냐에 달린다. 갑자기 필요한 걸 찾다가 없으면 그것을 위해 시선을 옮기는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의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면 다시 집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10분 이상 앉아 공부를 했다면 얼마나 다행이었겠냐만은, 오래가지 못하는 집중력을 조금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찾는 무언가가 없어서 중단되는 불상사는 막아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부할 때보다 집중력이 높긴 하지만, 이 습관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만약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아서 글 쓰는 행위 자체가 낯설다면 글쓰기에 즐거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글쓰기를 시작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여기서 미리 말해두자면 사람의 성향에 따라 효과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는 것.) 글 쓰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함으로써 글쓰기를 기다리게 만들고 즐거운 행위로 인식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내게 글쓰기 좋은 환경은 대강 이런 것들이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지만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적절한 음량의 음악, 활용하기에 부담감이 적은 도구들, 정신의 각성을 위한 커피 한 잔과 집중을 유지하기 좋은 적당한 수준의 온도. 생각을 적어둘 수 있는 메모지, 당이 떨어질 때 필요한 사탕 한두 개와 물 한 잔. 이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하며 나는 글 쓰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몸과 마음이 글쓰기 모드로 전환된다.


그중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꼽으라면 바로,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도구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더욱 좋아하는 나는, 커서 깜박이는 하얀 화면보다 조금 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종이를 선호한다. 종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쓰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달까.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면, 좋아하는 노트(줄이 그어져 있든, 모눈종이든 상관없이)를 준비하고, 그 위에 일필휘지할 수 있는 ‘펜’을 고른다. 꼭 펜을 집어드는 이유가 있다. 연필은 시간이 오래되면 글자의 경계가 흐트러지고, 볼펜은 간혹 똥이 나오니, 잉크가 일정하게 나오고 글씨가 선명하게 써지는 펜이 좋다. 그 고른 잉크를 보고 있으면 글을 쓰며 생각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달까.     


펜을 고를 때 중요한 건 필기감이다. 부드럽지만 너무 부드럽지 않고 내 손에 알맞은 두께의 펜. 그래서 글씨를 쓸 때 필기감이 좋은 것을 찾아야 한다. 거칠거칠한 펜은 생각의 흐름대로 쓰기엔 속도가 더디고 마찰력이 강해서 한바탕 글을 쓰고 나면 팔이 시큰거리며 통증이 찾아온다. 이를 글쓰기의 훈장처럼 여기는 것도 물론 좋지만, 고통은 마음에 은은한 저항감의 씨앗을 뿌리니, 내일의 즐거운 글쓰기를 위해 너무 거친 펜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너무 미끄러운 펜을 고르게 되면 저 먼저 나아가려는 펜을 컨트롤 하는 데 힘을 쓰게 되니 그것 역시 마땅치 않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갖춰야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예를 들어 요가를 배우려면 요가복을 먼저 사고, 등산을 하려면 등산화와 등산복을 먼저 사는 사람이라면, 즐거운 글쓰기 세계에 들어서기 전에 문방구를 찾아가 보자. 혹은 글쓰기 침체기에 있다면 기분을 전환할 겸 또 문방구를 찾아가 보자. 그곳에서 나만의 소중한 생각을 품어줄, 마음에 꼭 드는 노트를 구입하고, 내 손 크기에 꼭 맞고 필기감이 좋은 펜을 골라보는 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퇴고할 때를 대비한 다른 색깔의 펜도 준비해 둘 것. 틀렸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예를 들면 빨강 같은) 눈에 잘 띄는,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색을 고르는 것이 좋다. 초록도 다 같은 초록이 아니고, 파랑도 다 같은 파랑이 아니다. 회사별로 채도도, 명도도 다르므로 내 취향에 맞는 것을 아주 정성껏 골라보길 바란다.


시간과 공을 들여 고른, 내 마음에 꼭 드는 그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홀로 채워야 하는 글쓰기 시간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색,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펜으로, 내 마음에 드는 예쁜 디자인의 종이 위에서 한바탕 신나게 노는 오늘의 유쾌한 경험이 내일의 글쓰기도 즐겁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미지 출처: Piyapong Saydaung,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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