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
요즘 책을 출간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엔 책이 유명한 사람이나 소위 말하는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누구나 원하면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출판 방식이 다양해진 것도 작가라는 타이틀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일조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언젠가 책 한 권이라도 내야지.’ 이런 생각은 비단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책을 내고 싶다는 말을 열에 서너 번은 듣거든요.
왜 사람들은 책을 출간하고, 글을 쓰려는 걸까요? 멋있어서? 괜찮아 보여서? 돈은 적게 드는 반면 있어 보여서?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만한 명함이 필요해서?
물론 이런 이유로 출간을 희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그리고 책을 내야 하는 이유가 말입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안네 프랭크의 《안네의 일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이 책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쓰인 책입니다. 전쟁 중이라는 혼란하고 황폐하고 삶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썼습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종과 나비》는 락트인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유명 잡지사 편집자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왼쪽 눈꺼풀을 깜박이며 철자를 받아적게 해서 쓴 책입니다. 눈의 깜박임으로 글을 썼다니 믿기시나요?
그들이 이렇게까지 글을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꼭 써야 했던 이유가 말입니다.
우리는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먹고 살려면, 즉 일을 하려면 글을 써야 합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글쓰기는 필수입니다.
우선 취업에 성공하려면 자기소개서부터 통과되어야 합니다. 글쓰기 필요성은 여기서부터 부각을 드러냅니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글쓰기는 계속됩니다. 기획안, 보고서, 결재서류, 심지어 메신저까지. 이만하면 일할 때 글쓰기는 필수입니다. 그럼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획안이나 보고서 같은 거 작성 안 하는데, 라고요. 물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에도 글쓰기 능력은 필요합니다. 글의 범위를 말하기까지 확대해보면 말입니다. 글을 쓰지 않은 곳에서도 말은 하며 일을 합니다. 업무 내용을 인수인계하기 위해,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말은 필수입니다.
말과 글쓰기는 전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방법은 동일합니다. 언어를 매개로 생각을 주고받는 행위라는 것 말입니다. 생각을 오류없이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 중언부언하지 않고 필요한 내용과 핵심 위주로 전달하는 능력.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우리는 말을 잘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글쓰기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개하는 방법을 익히게 됩니다. 결국 말을 하려면, 말을 잘하려면 글쓰기는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다시 회사로 돌아와 볼까요.
만약 우리가 글쓰기를 꾸준히 해왔다면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을지도 모릅니다. 자리를 분석해서 결과를 도출하고, 문서의 성격에 맞게 서류를 작성하고, 요약하고 적확한 단어로 풀어내는 일을 남들보다 탁월하게 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물론 이런 능력은 글을 쓸 때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이자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도 글쓰기는 필요합니다. 지금부터는 글을 쓰며 깨달은 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나를 알기 위해선 글을 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글을 쓰면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나’라는 존재로 살지만, 그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 역시 아직도 자신에 대해 오해하거나 모르는 것들이 많다는 느낌을 받고 삽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내 생각과 감정 같은 것을 진지하고 깊이 있게 생각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시간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도 한몫했습니다.
매번 글쓰기 수업을 통해 만난 사람에게 묻습니다.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가족 혹은 지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나요?”
첫 번째 대답은 시원치 않고, 두 번째 대답은 반반으로 갈립니다. 제가 말을 이어가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거리다 이내 숙연한 표정을 짓고 저를 쳐다봅니다.
“저는 제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은 기억하지만, 지금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는 몰랐습니다. 먹는 거야 대단한 거 아니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어떤 행동을 하면 친구가 좋아하고, 어떤 말을 싫어하는지는 잘 알고 행동했지만, 나는 어떤 행동을 싫어하는지, 어떤 말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선 잘 몰랐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샌가 주변 사람들에겐 한없이 맞춰주면서 정작 내 생각과 마음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타인에겐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자신에겐 무관심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이 일을 무엇을 위해 하는지도 모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친구와 가족, 주변 사람의 마음이나 취향은 잘 알지만, 내 마음이나 취향은 어떤지 알고 있나요?
내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으면 왜 그런지, 왜 어떤 상황을 못 견디게 불편해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되려 하는지 대답할 수 있나요?
나의 소명이나 비전 같은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내린 적은 얼마나 있었나요?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할 수 없다면 그런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보다 더 깊이 나를 알고 인정하는 시간이 말입니다.
글쓰기는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글을 쓰면서 묵은 사건을 돌아보고, 그때의 감정과 생각이 어땠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설령 그것이 글 쓰는 순간의 나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나에 대해 알 수 있게 합니다. 착각하는 나 자신이든, 진짜 나이든 지금보다 더 많이 나에 대해 깨닫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재취업하기엔 나이가 있었으니 일반 회사에선 뽑아주지 않을 테고, 공무원은 내가 시험을 잘 보면 될 수 있겠거니 싶어 도전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원하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내린 결정을 3년 넘게 끌고 갔습니다. 물론 결과는 낙방이었죠. 그동안 저는 감정적으로 피폐해졌고, 어느덧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왜 살아야 되나 싶었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죽기엔 억울하니까 뭐라도 해보자. 오기 같은 마음이 생겨난 그 순간 떠오른 게 바로 글 쓰는 것, 책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책 한 권 내보자 했던 어린 시절의 생각이 다시 마음속에 피어난 것입니다.
그때부터 매일 글을 썼고,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었습니다. 나란 사람이 이렇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걸 원하는지, 내가 바라는 삶은 무엇인지, 묶여 있는 마음의 멍에 같은 것들도. 글을 쓰며 하나씩 마주하고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는 깊이 파고 들어가는 행위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모두 마음의 광부가 되어, 잠깐 머릿속으로 생각한 정도나 가볍게 대화하는 정도로 떠올릴 수 없는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끄집어내게 만듭니다. 그렇게 깊게, 깊게 파고 들어갔을 때 꽁꽁 싸매어 있던 진짜 내 마음과 생각을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나를 잘 알고 싶다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솔직하게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 답을 글로 적고, 문장의 꼬리를 물고 다시 나를 끄집어내고. 글을 쓰고 난 뒤 문장 속에 담긴 미처 몰랐던 나의 모습을 다시 마주해보세요. 하나둘씩 모르고 지나쳤던 나를 알게 된다면,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을 인정하게 되고, 나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깊어질수록 나는 조금씩 행복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