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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미 May 11. 2023

당신의 꿈을 사세요?

등단을 포기하다


매년 1월 2일, 신문지면은 기쁨과 축하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지난해 공모를 마친 신춘문예 당선작과 당선 소감이 일제히 지면에 실리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신춘문예 당선을 통해 등단하려는 많은 사람은 고배를 마시고, 아주 일부는 ‘등단’이라는 달콤한 성취의 열매를 맞본다.     


나도 소수가 아닌 다수로서 탈락의 아픔을 맛봤고, 봄이면 다시 찾아오는 등단 기회를 잡기 위해 공모전 공고를 기웃거렸다. 신춘문예 이후 시작되는 문예지 시즌. 그래도 잘 썼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골라 응모하고, 결과를 기다리길 한참.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고, 낯선 음성이, “안녕하세요. 여기 ○○입니다.” 할 때 마음이 부푼다. 혹시 내가…?


표절이나 중복 공모 같은 몇 가지 내용 확인을 마치면 최종심 단계. 최종심에서 뽑힌 사람에게만 연락한다기에 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낯설지만 낯익은 번호가 다시 한번 휴대전화에 찍을 때 속으로 환호성을 지른다.      


“축하합니다. 당선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싶어서 노력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은 기쁨에 도취에서 지인에게 자랑하고, 당선 소감과 프로필과 사진을 보내야 하니 서둘러 메일을 확인한다. 그런데 메일을 읽어내려가던 눈에 들어오는 어떤 문장.


“당선자는 ○년 치 구독을 하셔야 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구독을 하지 않으면 당선이 취소된다는 말. 얼마 되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금액일 수 있는 구독료는 내야 등단할 수 있다는 게 의아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비슷한 글이 이미 여러 번 올라와 있다.


어떤 곳은 상패 제작비 명목으로 몇십만 원을 달라고 하고, 어떤 곳은 등단 비용으로 백만 원이 넘는 금액을 요구하고, 어떤 곳은 등단하려면 책을 수십 권에서 수백 권을 사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곳은 몇 년 치 구독료를 미리 내야 한다고 하고.

그러면서 하는 말은, 돈 들여 등단시켰는데 다른 곳으로 이탈하면 손해다, 글을 올릴 지면을 확보해주겠다, 우리는 무슨 돈이 있어서 매년 이런 행사를 하겠나 같은 말들.

작품이 좋아 선정했으면 구독 여부와 상관없이 당선시켜야 하는데, 등단 비용은 아니라면서 구독해야 당선 자격을 주겠다는 말장난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걸까.     


그래도 몇 년 치 구독은 그나마 나은 편이네. 하며, 한참을 고민했다. 솔직히 등단이라는, 문인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가지고 싶었으니까. 꾸준히 글을 쓰고 싶고, 권위 있는 곳에서 글 잘 쓴다는 인정도 받고, 문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인데, 그 대가가 이런 거라니. ‘공모전 당선=등단’이라는 등식 어딘가엔 이상야릇한 온갖 속셈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내가 경험한 현실이었다.     


꿈을 이루고 싶으세요? 그러면 꿈을 돈으로 사세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가령 노력이나 시간 같은,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건 동의하지만 어느샌가 그 외의 무언가가 있어야 꿈을 더 쉽게 이룰 수 있고, 더 빨리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꿈을 사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세상, 사회인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종류의 말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책 내고 싶으세요? 몇 천만 원 가져오면 책 내드릴게요 하는 사이트를 왕왕 목격했고, 투고를 할 때면 몇 백만 원 주면 책을 만들어준다던가 계약 조건으로 저자가 몇 백 권을 사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등단하고 싶으면 정기구독을 하면 되고, 책을 내고 싶으면 돈을 몇 백에서 몇 천만 원 들이면 되고, 한때는 아이돌 연습생이 되고 싶으면 월 몇 백 씩 수업비를 내야 한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고. 그나마도 없으면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을 받고 일하며 경력을 쌓아야 하고.     


한때 논란이 된 열정페이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현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꿈꾸는 청춘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는데, 돈을 벌 기회는 돈이 없으면 잡지 못하니, 꿈꾸는 돈 없는 청춘들은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유예하고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마찬가지. 그저 글을 쓰며 먹고 살고 싶은 건데, 작가가 되고 싶은 건데. 꿈꾸는 마음에 돈 냄새를 맡고 사업의 가능성만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나는, 꿈을 위해 순수하게 노력하는 마음들이 저런 상술에 오염될까 봐, 상처 입을까 봐 두렵다.     


너무 화가 났다. 젊음에, 초년생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기존의 시스템에, 그리고 그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나약함에. 이런 경험을 하며 사회의 쓴맛을 본 사람들이 입게 될 마음의 상처에.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결국, 메일을 보냈다.     

“(나는 안녕하지 못하지만) 안녕하세요. 숙고 끝에 등단을 포기한다는 말씀을 전하려 메일을 씁니다.”  

   

내 마음속에 꿈틀거렸던 생각들과 유혹들. ‘등단이라는 명함이 얼마나 그럴싸해 보이는데, 모르는 사람은 대단하다 할 텐데, 어쩌면 이것이 내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고, 또 다른 가능성의 길을 열어줄지도 모르는데.’ 하는. 마음을 쉽게 잡아먹을 것 같았던 유혹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돈으로 인정을 샀다며 내게 실망할까 두려워서, 언젠가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상황에 타협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낄 순간이 두려워, 등단을 포기했다. 내가 두려운 건 등단하지 못해서 감내해야 할 노력의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욕망하는 것을 얻었다는 부끄러움이니까.     


짧은 시간, ○○님. 이런 호칭을 들어 행복했던 감정은 언젠가 떳떳하게 다시 느낄 수 있길 바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등단을 포기했다고 내 꿈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니까. 내 방식대로,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의 길을 걸으며 꿈을 이뤄나가야지!     



(이미지 출처: Pixabay, 0fjd125gk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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