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진을 찍고

by 임경미

한 사람이 사진을 찍는다. 기차가 강물 위를 건너갈 때. 강물 위에 해의 밝은 기운이 은빛으로 일렁거릴 때. 노을이 하늘을 제 마음대로 물들일 때. 강물의 가장자리가 얼어붙어 있을 때. 행인이 옷깃을 여미며 다리 위를 건널 때.

그 사람의 화면 속엔 어떤 장면이 담겼을까. 문득 그가 바라보는 화면 속 풍경이 궁금해졌다.

그처럼 나도 사진을 찍었다. 자주는 아니었다. 가끔, 어쩌다가. 사진을 찍히는 것보다는 사진을 찍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서 어떤 순간을 피사체 삼아 가끔 사진을 찍고는 했다.


내 피사체는 흘러가는 시간의 한 조각, 변하는 계절의 한 풍경, 점점 온도를 잃어가는 음식의 처음과 렌즈를 잔뜩 의식하며 동작을 멈추고 서 있는 누군가의 찰나였다.




나는 왜 사진을 찍었을까. 그는 왜 그 순간 휴대전화를 들어 카메라를 작동시켰을까. 나처럼 그도, 흘러가는 지금 이 순간의 무언가를 잊고 싶지 않아서 사진을 찍은 것일까.


하루 24시간. 그 시간 속 어딘가에서 잊어버리고 싶은 사건을 접하거나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만난다.

굳이 그 중 분류를 하자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내가 지금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담아,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노력이라도 해봐야지. 그래서 각도를 바꾸고, 거리를 조정해가며 사진을 찍고는 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을 위해 쏟아붓는 노력의 시간. 길게는 5초쯤이었다.


5초는 하루 86,400초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순간이다. 물론 그래서이진 않겠지만, 시간이 더 흐르고 사진첩을 뒤적거리면 사진 속 순간은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어딘가 축소되었거나 왜곡된 느낌.

아마도 내가 쏟아부은 노력의 시간이 지극히 일부여서, 너무나 짧아서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래, 그럴 리 없다. 다섯 개의 감각 중 오직 하나의 감각으로 그때 그 상황을 마주해서 그런 것이겠지.

결국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장면을 더 풍요롭게 마주하기 위해 맞는지 틀린지 명확하지 않은 기억의 힘을 빌려본다. 하나의 감각에 의존해야 했던 기억은 또 다른 감각이 더해지자 입체적으로 된다.


그 사람은 오늘 찍은 이 순간을 다른 순간에 마주하며 무엇을 떠올릴까.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는 평범한 이유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사진 속 순간이 다른 시간에 같은 장면으로 부활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건 사진을 마주한 순간, 오늘의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것. 그리고 오늘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가끔은 힘이 되고, 기쁨이 되고, 배움이 된다는 것.

이것이 그가 사진을 찍고, 지금 내가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유이지 않을까.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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