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짜증을 내셨을까

이해가 힘든 나를 위해

by 임경미

길어진 밤이 위세를 한창 펼치고 있을 무렵, 휴대전화에 마미라고 저장된 발신인이 찍혔다. 야심한 시각에 울리는 전화벨은 왠지 불안감을 불러일으켜서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걱정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너는 왜 엄마한테 전화도 안 하니?


맙소사, 전화를 받기 전 불안감은 내 예상이 아닌 다른 성격의 일이 발생할 것을 감지한 것이었을까.


아, 엄마. 요즘 좀 바빴어. 미안.

- 너희는 진짜 무심해. 이렇게 연락을 자주 안 해서, 엄마가 무슨 일이 생겨도 알겠냐고.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래, 갑자기.

- 무슨 일이 있긴 뭐가 있어. 너희가 전화를 하도 안 하니까 그렇지.


그렇게 짧게 나눈 대화에는 유의미한 정보가 별로 없었기에 전화를 끊은 나는 여러 개의 물음표를 마주해야 했다.

엄마는 왜 내게 화를 냈을까. 어디가 아픈 건가. 사기라도 당했나. 아니면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을까.

엄마의 상황을 파악해보려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이렇다 할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이 지속될수록 아무리 그래도 자초지종을 말해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엄마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 쌓일 뿐.


전화는 이미 끊겼지만, 감정은 그 시간에서 죽~ 이어졌다.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점점 화가 났다. 이런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나.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없는데도 이해해야 하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종종, 자주 일어나기 마련이고, 나는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이해하지 않는 것으로 대응하고는 했다.

당당하게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 칼치기를 하며 무리하게 끼어들거나 난폭하게 운전하는 사람들, 아주 어린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는 사람들. 말로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게, 이해 영역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왜 이해해야 하지?

그래서 나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엄마는 지금 화가 나 있구나, 저 사람은 급하게 운전을 하고 있구나 라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그러했음을 알고 있는 것일 뿐.




나는 왜 더는 이해하길 포기하고, 그냥 알고 있기로 했을까. 어쩌면 이해하는 것에 쏟아붓는 노력이 싫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 그런 것의 의미를 찾고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타인의 마음을 해석하는 일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알아차리는 것보다 배로 힘들고 배로 시간이 들고, 배로 틀릴 확률이 높아질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가정. 어쩌면 이해 가능한 영역은 사랑의 크기가 더 크고, 상대를 향한 마음이 더 클 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 멀리에 있는 누군가보다 내 주변 누군가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 더 쉽게 이해되니까. 설령 그것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너를 이해할 이유를 찾는 노력을 하게 되니까.

이렇게 나는 이해하길 포기하는 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면서도, 그렇다고 엄마에 대한 나의 마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것도 아니었기에 엄마와의 통화를 곱씹었다.

엄마는 지금 내게 불만을 느꼈다.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만인지, 다른 어떤 것에 이미 화가 나 있고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 행위에 그 화가 덧씌워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엄마의 마음이 평온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엄마의 평온하지 않은 마음이 나에게도 전달되어 전화를 끊고 나서 순간 화가 났다는 것.


무책임하게, 엄마의 평온하지 않은 상태가 나에게 조금 언짢은 방법으로 전달된 일이 발생했고, 나는 그 이면을 더 파헤치는 것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메시지에 더 집중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좀 더 자주 전화를 하는 것으로.


그러면 언젠가 굳이 파헤치고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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