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효용과 마음의 크기

by 임경미


조카가 설날이라고 선물을 준비해왔다. 이모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박혀있는 A4 파일철 하나와 명함 크기의 무언가 2개를 담아서.


파일철이야 용도가 뻔하니 호기심이 동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명함 크기의 무언가였다. 소의 탈을 뒤집어쓴 캐릭터가 프린트되어 있고, 종이는 아무래도 닳지 말라는 의도인 듯 아니면 종이니까 물에 젖지 말라는 의미인 듯 투명 테이프를 잔뜩 두르고 있었다.


이건 뭐지?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으니 답이 나오지 않아 왠지 볼록해 보이는 가운데 부분을 꾸욱 눌러보았다.

음, 폭신한 듯 폭신하지 않은 듯, 안으로 살짝 들어갔다 나오는 모양새도 그렇고, 손으로 누를 때마다 삭,삭 소리가 나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안에 무언가를 넣었나 보다. 그런 뒤 그 내용물이 빠지지 않도록 테이프를 칭칭 둘렀나 싶었다.


-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문득 책상 한켠에 놓인 조카의 선물을 다시 발견한 뒤 폭신한데 덜 폭신거리는 그 무언가를 주물럭거리다 이 안에 든 게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젤린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 그 안에 든 정체를 밝혀내고자 하는 의지가 발동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을 놓치면 먹을 수 있는 걸 못 먹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안에 들어있는 것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테이프 틈새를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던 칼을 집어 들고, 조카의 선물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손쉽게, 그러나 배를 가르듯 조심조심, 되도록 조금만.

하지만 절반 정도를 갈라도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결국 한 면을 다 가르고 나서야 안에 든 것을 꺼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것은 바로….

막 접어놓은

비.닐. 뭉.치.였다.


만약 제대로 접었다면 폭신거리는 느낌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덜했을 비닐봉지를 제멋대로 접어 넣음으로써 소리도 나고 쿠션감도 생겼으리라.


인지부조화가 생겼다. 본래 비닐봉지란 무엇을 담거나 아니면 김장김치를 덮거나 하는 용도로 쓰이지 않던가? 그런데 이 녀석은 어쩌다 이 모양을 하고 종이 속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부조화를 조화 상태로 바꾸기 위해 물음표를 붙여가며 비닐조각을 손가락 사이에서 움직여봤다.




약 10년 전. 지금의 조카가 핏덩어리로 세상 빛을 봤을 무렵, 조카의 작은 손가락으로는 쥐기도 힘든 토끼 모양 딸랑이를 만들어주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주지 않아서 4, 5년이 지나고 둘째 조카가 태어날 무렵 딸랑이가 완성됐다.

결국 완성된 게 어디냐만은 이모표 핸드메이드 딸랑이는 모양새가 제법 괴상했다. 귀의 위치도, 눈의 위치도, 얼굴의 형태도 모두 비대칭이었던 못난이 딸랑이. 그런데도 나는 만족스러워서 아직 제 몸도 가누기 힘든 둘째 조카에게 ‘이거 봐. 네 거야’하고 자랑스럽게 건넸더랬다.

둘째 조카는 알 수 없는 표정이었고, 첫째 조카의 표정은 보지 않았으니 모르겠다. 받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것을 받을 뻔 했던 사람은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거기에 내 마음이 있었다는 것.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 내 자식은 아니지만, 아기가 태어나서 그런 건지, 피가 반만 섞인 가족도 가족이라서 그랬는지. 여하튼 하고 싶었고, 주고 싶어서 서툴게 딸랑이를 만들었었다.

마냥 기쁘고, 그냥 소중한 너를 무조건 사랑해.

이 마음은 첫째 조카에게도, 둘째 조카에게도 동일했다. 다만 부지런하지 못함이 누군가에게는 마음만, 누군가에는 괴상한 형태의 딸랑이에 담겨 전달되었을 뿐. 바느질 솜씨는 서툴지만, 마음만은 진심이었던 그때의 내 마음이 언젠가는 조카들에게도 전달될 날이 오겠지.


아마 조카의 마음도 그때의 내 마음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보면, 저 놀이는 또래에서 유행하는 것 일테고, 유행 정도 아니어도 친구들과 즐겼던 것 일테고, 그렇다는 건 조카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 일테고. 유쾌하고 즐거운 것 일테고.

그리고 내 마음에 드는 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은 아무에게나 향하는 것은 아니니까.

맛있는 것을 먹으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먹고 싶고, 좋은 곳을 가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고 싶어지는 것처럼, 내게 즐겁고 좋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고 싶었던 마음에 작은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장난감을 만들지 않았을까.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눌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번거로움도 감내하며 서툴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은 장난감. 내 나이가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데, 비닐이 안에 들어있는 장난감을 선물로 받다니.

올해 10살이 되는 조카는 이모의 취향을 이렇게 모른다. 이모는 비닐이 들어간 장난감보다는 종이가 빵빵하게 채워진 가방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그래. 시인하자면 취향을 몰랐던 건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세상 쓸데없는 선물에 자꾸 웃음이 난다.

아니, 세상 쓸데없다는 말은 취소다. 남들보다 더 좋고 다른 사람보다 더 소중하니까, 그런 사람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고 싶은 조카의 마음이 담겼기에 장난감은 버리기 힘든 것이 되어버렸고, 그것은 이미 비닐조각이 든 종이라는 것을 넘어선 의미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음은 때론 이렇게 서툴게 전달된다. 내가 좋아하는 방법대로,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그리고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대로.

아니, 때론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자주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왕왕 서툴게 전달되고, 그래서 서툴게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서툴러도 서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툰 와중에도 최선을 다해 최선이기를.


조카가 준 작은 선물을 두 손가락으로 가만히 눌러본다.

공기가 작은 공간에서 빠져나왔다가 들어가고 이리저리 옮겨가며 느껴지는 촉감이, 종이가 구겨졌다가 퍼지는 소리가 제법 좋다.


장난감의 배를 가르지 못했으면 이해하지 못했을 조카의 마음을 이제야 받는다. 다시 야무지게 테이프로 붙여둬야겠다. 아마도 이 선물은 한동안 버리지 못하겠지. 그것이 조카의 마음을 받는 내 최선이니까.


(사진 출처: 픽사베이의 이벳 팡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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