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을 바꿀 수 없다

그러려니 전략 사용하기

by 임경미

마음의 그릇을 키운답시고, 이 책 저 책 읽다가 만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문장이 있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 나를 괴롭게 하는 문제 상황에 대한 책임 역시 나에게 있다.”


이 말인즉슨 앞차가 무리하게 끼어들어 사고의 위험을 초래했거나, 불쾌한 일로 인해 화가 난 상황에서도 내 문제이고, 내 책임이라는 말인가.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거나 친구와 오해가 생겨 다투게 된 것도, 애인과 트러블이 생긴 것도 모두 내 문제란 말일까. 도대체 왜?


만약 저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보통 어떻게 반응할까. 상대 운전자가 예의 바르게 운전하길 바랄 것이고, 친구가 오해했던 마음을 풀고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랄 것이고, 애인이 내게 와서 사과하며 나를 달래주길 바라지 않을까.




내 마음은 네 마음이 아닌 내 마음이기에, 어떤 상황이 생기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고, 나를 이해해줬으면 싶은 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나의 노력이 없다는 것, 그러니까 내 마음이 괜찮아지기 위해 내가 아닌 상대방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가 생기면 ‘저 사람의 행동은 잘못된 건데. 이렇게 행동하면 좋겠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남이 바뀌길 원했고,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교정하듯 상대를 바꾸려 했다. 이는 곧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모두 그것을 개선하는 방법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있다는 의미였다.

양말을 뒤집어 벗는 남편에게 제대로 벗어놓을 것을 요구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자녀에게 친절하게 말하라고 요구하고, 까칠하게 대하는 직장 상사가 자신을 친절히 대해주길 바라는 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들이 내가 바라는 대로 해주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 아니던가. 내가 내 마음, 내 행동을 마음껏 조절하는 것도 힘든데, 남의 말과 행동을 내 뜻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그것은 초능력을 가진 자가 부리는 마법 같은 기적이 아닐까.


이 진리(?)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문제 상황이 찾아올 때마다 아주 본능적으로, 습관적으로 행동했다.

상대가 문제 상황을 고치지 않으니 나를 괴롭게 만드는 문제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내 신경을 자극했고,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아니게 됐다. 눈에 뻔히 보이는 이 연쇄작용을 끊어내지 못하고 매번 번뇌와 고통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무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바로 문제 상황이 해결되거나 문제 상황이 생기지 않게 되는 것.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 혹은 타인의 의지와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어느 누구도 변하려 들지 않는다면 문제가 절대 해결될 수 없다.

그러니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번째 방법이다. 문제 상황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 이 방법은 문제의 해결 방법을 나에게서 찾는 것이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 이름하여 ‘그러려니’ 작전.

양말을 뒤집어 벗어도, 누군가가 툴툴거리며 말해도, 앞차가 난폭 운전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반응하지 않으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나를 괴롭히지도 않게 된다.


그러려니 방법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관심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내 뜻대로 해주길 바라고, 조언이라는 명목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내가 남을 바꿀 수 있다는 욕심이 이렇게 나를 괴롭히고, 상대마저 괴롭히니까.


세상엔 내가 남을 바꿀 의무도, 남이 나를 바꿀 권리도 없다. 내가 나를 쉽게 바꾸지 못하듯, 남을 바꾸는 것 역시 어렵다.

그러니 남이 무엇을 해서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을 비우고, 내 마음을 바꿔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 더 빠른 해결 방법이다. 그러려니 하며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어느 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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