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하는 내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심호흡을 하며 엄마에게 내 감정을 전달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감정이 목소리에 실리고, 이를 고스란히 밖으로 드러났다.
지난번 엄마와 통화를 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냥 좋게 말하면 되지, 왜 자꾸 짜증을 내.
엄마에게 욱하고 나니 이럴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후회가 재빨리 찾아왔다.
그래,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어느덧 내 마음도 조금 괜찮아져서는 엄마와의 전화를 끊을 무렵에는 안정된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 원래처럼 TV를 보고 있던 행위로 돌아가려는 나를 남편이 붙잡았다. 통화하는 동안 그는 무슨 일이 생기고 있음을 감지했고, 화면을 봤다가, 나를 봤다가 하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던 터였다.
그가 통화내용을 궁금해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었음에도 말하고 싶지 않아서 TV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걱정 혹은 호기심이 나를 붙잡았다. 왜, 무슨 일 있으시대?
나는 별것 아니라며, 말하고 싶지 않다고 남편의 궁금증을 차단하려는 했지만, 궁금한 것은 못 참는 남편의 계속되는 추궁에 결국, 입을 열었다. 열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을.
아니, 그러니까….
그렇게 엄마와의 짧은 통화가 다시 재생되고, 긴 심호흡과 함께 가라앉혔던 불쾌한 감정이 다시 일렁이기 시작했다. 엄마와의 대화를 남편에게 전할수록 억울함이 떠오르고, 짜증이 올라오고,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도 함께 올라왔다.
결국 온갖 생각과 감정이 뒤엉켜 이야기가 끝으로 향할 때는 언성이 한층 높아지고, 얼굴은 붉어진 뒤였다.
아, 괜히 말했어. 괜찮았었는데.
다시 말하고 나니까 생생하게 짜증이 나버리잖아.
남편이 내 편을 들어줘도 화의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엄마를 어떻게 이해할까,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엄마는 왜 나에게만 이러는 걸까 하는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빙빙 돌았다.
하, 반항을 할까. 절대 연락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이란 게 이렇게 튄다. 말이 반복될수록 생각이 더해지고, 없던 감정도 생겨나면서 아주 작은 문제가 큰 문제가 되고, 가벼운 대처법이 번거로운 대처법이 되기도 한다. 마음에 부당함과 부담감이 점점 커져서 답이 아닌 것을 답인 양 착각하고 현명하지 못한 것을 방법이랍시고 찾아낸다. 열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을 괜히 열어서는.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왜 그러냐고 묻는 남편의 말에 그냥 엄마와 논쟁 아닌 논쟁이 있었는데, 별거 아니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라는 말로 딱 잘라 냈다면 어땠을까. 전화를 끊고 나서 겪었던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않고, 보다 평온하게 넘어가지 않았을까.
화를 반복할수록 화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생각해보면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살다 보면 참 억울한 일도 많고, 이해되지 않는 일도 많아서, 회사 다닐 때의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내 편에게 죽- 전화를 돌리고는 했었다.
세상에, 있잖아. 내가 방금 어떤 일이 있었냐면….
그렇게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구구절절 일러바쳤을 때, 참 착한 그들은 네가 진짜 속상했겠다는 말로 나를 위로했지만, 그 과정 끝에 나는 여전히 분했고 원망스러웠었다. 그들이 아무리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줘도, 말을 하며 재생된 부당한 상황은 여전히 불쾌한 감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이, 화라는 감정 앞에서는 적용되지 않는구나 싶었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될 수 있어도, 적어도 분노라는 감정은 나눠봤자 줄어들지 않았으니. 오히려 나누면 나눌수록 어제의 일이 오늘처럼 생생하게 느껴졌고, 점점 더 몸집을 키웠으며, 그런 과정에서 마주한 나의 짜증 나는 현실은 더 짜증을 유발할 뿐이었다.
아픈 기억, 화나는 기억은 그래서 빨리 떨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좋은 거라고, 이리저리 불쾌한 상황을 옮기면서 자꾸 그때를 상기시키지 않으면 조금은 더 평온한 상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가짜 평온이든, 화의 불씨를 대강 덮어놓은 어설픈 상태이든. 그래서 언젠가 다시 화의 불씨에 커지는 상황이 오더라도 지금은 연습을 해봐야겠다. 화를 자꾸 재생산하지 않는 연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