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묻기, 나는 누구일까

by 임경미


학창시절, 나를 가장 괴롭히는 질문이 있었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자아(自我). 쉬운 한자인데도, 그 의미가 어렵고, 답이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답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면 답답함이 밀려오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내 닉네임을 만들었다. 바로 ‘미아찾기’. 행방불명된 아이를 말하는 미아가 아니라, 내 이름 끝 글자인 ‘미’자에 ‘나 아(我)’자를 붙이고, 그 답을 찾길 바라는 나의 마음을 담아 ‘찾기’를 붙여 ‘미아찾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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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화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주인공 치히로가 신의 세계에 들어가 시련을 겪는 내용이 나온다. 치히로를 도왔던 또 다른 주인공인 하쿠는 치히로에게 ‘자신의 이름을 잊으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자신의 이름을 절대 잊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쿠의 조언대로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았던 센은 유바바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해 무사히 부모님과 함께 인간세계로 돌아온다.


치히로처럼, 나도 내 이름을 잃어버렸던 시절이 있었다. 이름이 ‘나’라는 존재의 상징과 대표라면, 이름이라고 비유할 수 있는 ‘나’를 잃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는 뜻이다.


신의 세계에서 일하기 위해 계약서를 쓰는 과정에서 치히로는 본인의 원래 이름 대신 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종이에 자신의 본래 이름을 적어놓고 잊지 않았으며,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님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잃지 않았다. 현실이 녹록지 않아도 자신과 꿈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치히로와 달랐다. 그때의 나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당시 시험의 결과가 매번 실패였던 것보다 비극적인 것은 그 시간 동안 나라는 존재에 대해 외면했던 것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어땠는가. 매일 일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 일하는 나로 살아갈 뿐,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도 없었다.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떤지 관심이 없었고, 내 꿈이 무엇인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했으며, 내가 일하는 이유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목적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내 이름을, 나를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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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다시 나로 돌아왔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만큼 잃어버렸던 시간의 소중함을 간직하며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전처럼, 나에 대해 고민하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그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세분화 해 본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의 꿈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무엇이고, 왜 발생했는가.

내 생각은 진심인가.

나의 꿈과 비전은 무엇인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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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다.


그렇다면 ○○○은 누구인가.

○○○은 ‘이런’ 사람이다.


지금 나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이런’에 대한 정의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다시 시작하니, 조바심도 난다. ‘빨리 답을 찾아야 된다’는 생각과 ‘이것이 답일까’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그러나 그 모든 조바심과 의심을 뒤로 하고 나는 꾸준히, 그저 답을 찾아갈 뿐이다. 언젠가는 내 닉네임인 ‘미아찾기’가 ‘미아찾음’이 되고, 센이 치히로라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무사히 인간세계로 돌아온 것처럼, 나도 온전한 내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나의 이름은 내 세계의 입장권이자, 온전한 내 세계 그 자체이다.



(사진: 픽사베이의 게르트 알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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